
17. 니버의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4)
1). 개인 윤리: 니버는 개인은 도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가 본 개인 윤리는 '사랑'을 중심으로한 인간관계인 것이다. 개인은 형제를 위해서 희생할 수도 있고 양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양심의 소리에 괴로워서 뉘우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 대(對) 개인의 관계는 사랑과 도덕이 지배하는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의 최고 이상은 당연히 비이기심(Unselfishness)이란 것이다. 이런 '사랑'의 원형(原型)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나타낸 완전한 '사랑'(Agape)이 인간성의 궁극적인 모범인 것이다. 세계적인 기독교 윤리학자 J. C. Benett는 말하기를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웃을 향한 희생적이며, 고난 받는 사랑이 개인 윤리의 정점이며 신적인 본질이요, 그 빛 안에서 모든 우리들의 윤리적 성취가 비평되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실천가들이 점점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정화되며, 악(惡)이 없어지리라는 윤리는 하나의 기독교 낭만주의라고 니버는 말한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고, 상상력과 의지로서의 개인적 인간 존재를 강조하여, 개인을 집단이나 국가에다가 귀속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니버는 이런 경지를 이상적 개체라고 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K. Jaspers가 말한 바대로, "이것은 마치 기계의 부속품의 일부분처럼, 자기 생을 스스로 결단하고 선택할 수 없는 독자적인 인격이란 찾아 볼 수 없는 사회 전체 구성원의 단지 일성원(一成員)인 개체일 뿐이라"고 했다. 여기에 개인 윤리의 무력함과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요,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니버의 사회 윤리에서 권력의 힘을 부르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2). 사회 윤리: R. Niebuhr의 신학은 K. Barth의 말씀의 신학처럼 교리적이 아니고, 윤리적이며 역사적이다. 신학자 P. Tillich는 "미국 신학의 영광은 역사적 분야나 교리적 분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윤리학 분야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신학의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 니버의 사회 윤리 분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사회 정의(Social Jastice)의 실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Agape의 사랑은 이 역사적 현실 앞에서는 도덕적 성취를 시키는데에 미급함을 역설했다. 그 이유는 개인 대(對) 개인의 관계에서는 Agape의 사랑의 법이 비교적 높은 단계까지 실현될 수 있지만, 집단 대(對) 집단의 관계에 있어서는 '집단적 이기주의'가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사랑과 도덕의 힘이 현저하게 저하된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 백인과 흑인,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와 같은, 집단과 집단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랑이나 정의가 아니라, 이기주의라는 것이 R. Niebuhr의 사회 현실에 대한 진단이었다. 인간은 그의 이기적인 목적을 가능한 한도의 모든 자원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추구할 것임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결국 니버는 인간 관계는 '힘의 관계'로 보고 있다.(다음 계속)
2012. 7. 15.
山下연구소장: 양 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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