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被造物로서의 인간(3)
2).被造物로서의 인간: 니버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이해와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하는 반면, 피조물은 유한성을 말하는 것이다.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과 역설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초월'의 능력을 지닌 자유인의 존재인 반면, 그 생명이 자연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제약된 존재이며, 그의 기반인 창조에 의하여 설치된 한계를 넘어서는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유한한 피조물로서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니버는 성서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비판적이지 않음을 강조한다.
성서는 지음을 받은 유한한 세계, 의존적이며 우연적인 존재를 그 유한성 때문에 악하다는 전제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는 인간의 죽음, 생명의 유한성, 의존성, 불완전성이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에 속하는 것으로서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않될 사실이란 관점을 갖는다.
3). 罪人으로서의 인간: 유한성과 자유를 동시에 가진 인간 자체가 실제의 자기보다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죄인인데 이것이 교만이라고 한다. 이 교만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의 권리에 대해서 침략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 무력성, 나약성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그에게 주어진 자유가 한정된 자유임을 거부하고 자기 분수 밖에 놓인 자아로 자신을 격상시켜 생각하거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스스로에게 매달리는 것을 죄로 간주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개인적 교만을 4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가). 권력의 교만(Pride of Power): 권력의 교만은 개인이나 집단에게서 나타난다. 즉 인간은 자기 충족과 자기 전제로하는 안전을 확신하고 생명의 유한성과 의존성을 망각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창조자요 운명의 결정자로 생각하는데서 권력의 교만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니버는 권력의 교만이 2가지 형태를 가진다고 한다. ①. 사회적으로 자신의 위치가 안전선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들 개인이나 집단은 자신의 안전을 더욱 크게 하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②. 권력의 교만의 형태는 자신의 권력이 아직까지는 불안전하다고 생각하여 안전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데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고로 안전선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 노력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도 개의치 않게 되며 사회적, 경제적, 안전 유지를 위해 더 많은 권력이 요청되고, 이런 권력에 대한 욕망은 자연계에까지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권력에 대한 욕망은 물질을 지배하려는 권력보다도 인간을 지배하려는 권력에서 더욱 심화되는데 인간 사회 안에서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부정의(injustice)를 야기시키게 된다고 니버는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생에 대한 의지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며, 인간은 일차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난 후에도 자기 자신은 욕망의 존재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라고 보고 있다.
나). 知的인 교만(Intellectual Pride): 지적인 교만은 교활한 권력의 교만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지적인 교만과 권력의 교만과는 분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지적인 교만이 권력의 교만과는 조금 다른 것은 지적인 교만은 소수위 독재자들에게도, 사회의 노예계급에도 모두 나타나는 교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적인 교만은 인간이 스스로 유한한 지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자유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지식을 궁극적인 지식으로 또한 역사를 완전히 초월했다고 상상하는데서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니버는 이런 것이 이성(理性)의 교만에서도 비롯된다고 하면서 당대의 사상가들이었던 엥겔스(Engels), 마르크스(Marx), 데카르트(Descartes), 콩트(Conte) 등이 이런 지적 교만을 가졌다고 한다.
다). 도덕적 교만(The Moral Pride): 니버는 도덕저 교만의 모든 요소가 지적인 교만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즉 도덕적 교만이란 자기 의(義)로서 다른 사람들의 행위가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표준을 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사람이 자기 행위의 기준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책하는 독선적 판단에서 잘 나타난다.
곧 도덕적 교만은 부분적인 원리를 전체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모든 인간의 성취란 불안전하고 부분적이며 상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이며,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라). 靈的교만(The Spiritual Pride): 니버는 영적 교만은 도덕적 교만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영적 교만은 모든 교만 가운데 가장 궁극적이며, 이 영적 교만으로 인하여 인간은 자기를 신격화하게 되고 종교적 죄를 짓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이 영적 교만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이것은 인간 지식의 편협성이 무조건적인 선(善)과 결합되어서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요구하는데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니버에 의하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의 추구이며 또한 하나님과 인간의 자기평가 사이에서 이루어 지는 최후의 전쟁인데, 이 전쟁에서 가장 경건한 행동도 인간 교만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인간은 어느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보지만, 다른 때에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정의가 자기 정의에 보다도 가깝다고 증명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기심읋 동반한 자기 주장의 최악의 모습이 종교의 자기 주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버는 자기를 절대화하려는 영적 교만을 우상으로 단정한다고 했다. (다음 계속)
2012. 7. 8.
山下연구소장: 양 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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