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디아스포라의 인생살이
(본문: 벧전 1:1~2, 17.)
1. 서론: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ὰ)는 원래 ‘흩어져서 나그네처럼 사는 유대인’을 지칭하지만, 지금은 신령한 의미로 성도들이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향한 지상의 삶을 의미합니다. ‘디아스포라’와 비슷한 의미의 ‘보헤미안’(Bohemian)은 5~6세기 중부 유럽에 있었던 보헤미아 왕국이 19세기에 체코슬로바키아에 흡수된 후, ‘나라를 잃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보헤미안들은 나그네처럼 정처 없이 유랑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집시(Gipsy, Gypsy)의 삶을 살았기에 ‘보헤미안 집시’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집시’(Gypsies)는 또한 인종적으로는 ‘코카서스’ 인종의 유랑 민족을 의미합니다. 인도에서 발상하여 헝가리를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입술은 두껍고, 검은 고수머리에 피부는 갈색입니다. 성격은 쾌활하며 음악에 대한 감성이 뛰어납니다. 이들은 마도위(말을 賣買할 때 흥정을 붙이는 사람), 땜장이, 악사 등의 직종에 종사하며 냉대를 받으면서 방랑 생활을 하였습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인생 전체가 디아스포라요, 보헤미안이요, 집시의 삶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본문 말씀에 수사도 베드로는 “너희는 본도·갈라디아·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나그네’처럼 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예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성결케 되고, 성령께 순종한 선택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이 베드로 전서는 주 후 64년 로마 네로황제 박해 시초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할 때, 박해 하에 고난 속에 <디아스포라의 인생살이>를 하는 신도들을 향한 위로하기 위한 서신입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①.흩어진(διασπορὰ)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ὰ)는 ‘분산’이란 뜻인데, 신앙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향에서 타지로 이주한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이들을 “흩어진 나그네”(벧전 1:1)로 부르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영원한 고향인 천국을 사모하며, 이 세상에서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⑴.디아스포라의 역사-디아스포라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각각 멸망 당했을 때 처음 발생했습니다. 이때 앗수르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도 있었지만, 주변 나라로 도피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디아스포라는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귀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디아스포라는 대개 아시아 지역에 국한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디아스포라의 범위는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제(B.C 336-323년)는 BC. 332년경 애급에 알렉산드리아 시를 건설하고 수많은 유대인을 그곳으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이때 이주한 유대인들이 1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또 유대인들을 박해하여 마카비 혁명을 촉발하였던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는 B.C. 170년경 유대인 2천 세대를 소아시아의 리디아, 브루기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또한 1세기 후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은 B.C. 63년경 수많은 유대인 포로들을 로마로 이주시켰던 것입니다.
⑵.신약시대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거주지와 숫자-사도행전 2:9-13에는 흩어진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나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① 메소보다미아 지방의 바대, 메대, 엘람. 이 지역 유대인들은 AD. 6세기경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편찬할 정도로 유대의 신앙 규범과 전통에 충실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② 소아시아 지방의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이 지역에는 31개 유대인 공동체 마을이 있었으며, ③ 애급의 구레네 ④ 로마 ⑤ 지중해상의 섬 그레데 ⑥ 아라비아 등입니다. 이들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숫자는 로마 4만을 비롯하여, 로마 제국 전역에 400만(소아시아 100만, 아가야 마게도냐 지방 100만, 바벨론 지역 100만, 알렉산드리아 애급 지역 100만 등) 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②. 나그네(παρεπίδημος) - 이 낱말은 원래 세계 각지에 흩어진 히브리인에게 적용되었으나(창23:4, 시39:12)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본향인 천국을 그리면서 세상에서 사는 生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전서의 중심사상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벧전 2:11) "대접(待接)한다.”라는 헬라어 "필록세논"(φιόξενον)은 필로스(φόλος, 사랑)와 크노세스(ξένος, 외국인, 나그네, 손님)로 구성된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대접한다.”라는 말의 본뜻은 "나그네를 사랑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나그네(손님)를 환대(歡待)하는 것을 뜻합니다.
나그네와 관련된 단어인 ⑴.제노스(ξένος)는 여행이나 어떤 임무 수행을 위해서 여행하는 생소한 사람을 가리키며 ⑵.파로이코스(πάροικος)는 파라(παρά; 곁에, 이웃, 근처)와 오이코스(οἴκος; 집)로 구성된 합성어로 멀리 떠나 와서 거주하는 외국인을 가리키고, ⑶.파레피데모스(παρεπίδημος)는 파라(παρά; .......에게서, 변두리에)와 에피(ἐπί; 그 곳을)와 데모스(δῇμος; 백성)로 구성된 합성어로 자국인이나 친구를 멀리 떠나 온 직업이 없는 行人을 말합니다.
3). 본론(Context):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ὰ)>라는 낱말은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흩어진’자들이라는 뜻이나, 그리스어로서는 “분산”, 또는 “씨를 뿌린다.”라는 의미의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원래 성지에 살던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불복종한 죄로(신 28:25) 바벨론으로 흩어진 자들로서, 신약시대에는 사방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다 이렇게 호칭하게 됩니다.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은 신약성서의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에서, 각지에 <흩어진 자들, diaspora>에게 보낸 서신중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약 1:1, 벧전 1:1) 여기 사용된 이 디아스포라는 위의 두 구절 외에 요한복음 7:35에만 보이는 것으로, 거의 위의 두 서신의 수신자를 가리키는 느낌을 주고 있으나,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의 험준한 고비를 말하고 있는 이름입니다. 디아스포라는 요점으로 말해서 “본국을 떠나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인들”을 지칭한 것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창12:1-4) 이렇게 시작된 이스라엘은 그대로 디아스포라의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기업의 땅으로 허락받았으나, 그곳을 떠나 애급으로 가서 430년간의 나그네의 생활을 거치었고, 그 후 가나안으로 귀환 도중에도 40년간을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北朝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 포로 생활로, 南朝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 포로로, 수난의 세월을 보내었던 것입니다. 갈대아 지방에 흩어진 이스라엘인들은 소위 포로 7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주전 586년), 일단 모국으로 귀환하였으나, 그 일부는 그 지방에 계속 머물러 산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제 (주전 320년경)와 푸톨레미 1세는 대량의 유대인들을 애급으로 이동시켰던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 수는 신약 시대에 와서 백만 명을 헤아렸다고 합니다. 또한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대제(주전 170년경)는 약 2,000호의 유대인들을 갈대아 지방에서 부르기아, 리디아, 등 소아시아로 이동시켰다고 하며, 로마의 폼페이 장군(주전 63년)은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았던 수많은 유대인을 로마로 이동시켰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강제적이며, 단체적인 이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상업, 기타의 목적으로 자진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갔었고,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옮겨 왔던 것과는 좋은 대조라고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신약시대에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는 로마 4만을 비롯하여, 로마 제국 전역에 400만(소아시아 100만, 아가야 마게도냐 지방 100만, 바벨론 지역 100만, 알렉산드리아 애급 지역 100만 등) 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금일도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산재하여 설움을 받으면서 사는 여전한 디아스포라의 민족인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디아스포라는 원래 흩어진 유대인들을 지칭했으나, 이는 점차 신령한 의미로 해석하게 되어서, 즉, 성도들이 그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면서, 세상에서 사는 생애는 임시로 머물러 사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에 관한 이런 사상의 발전은 공동서신인 야보고서와 베드로전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즉 야고보서에서는 이를 문자적인 뜻에서 사용하는 반면, 베드로전서에는 더 신령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전자는 엄격히 유대 색채로서 그 수신자가 문자대로 흩어진 유대인들인 것을 말하는 것이며, 후자의 수신자는 주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나그네’란 베드로전서의 중심사상의 하나로서, 그것은 성도들의 지상 생애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보겠으며, 하여간, 디아스포라에게는 언제나 박해와 냉대가 따라다니는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성도(聖徒)들은 그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우리들의 영원한 본향을 그리면서, 우리들의 一回的인 삶의 종말이 오는 그 순간까지, 믿음에 굳게 서면서, 동시 우리를 낳아 잔뼈가 굵게 해준 모국에 대한 감사와 한 핏줄을 이어받은 배달 민족의 긍지와 형제애로 뭉쳐서, 신앙과 성실 그리고 아름다움 및 그리움으로 점철되는 남아있는 여생이, 더욱 보람되고, ‘유종의 미’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지상 생활의 신앙생활은 교회를 중심으로, 천국의 그림자로써, 천국에 대한 예행 연습을 하는 것이며, 교회 생활에서 천국의 복된 삶을 맛보지 못하면, 장차 천국에도 복된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인생살이를 하다가 주일날이면 교회에 모이는 것을 '에클레시아'(έκκλησία)의 삶이라고 하며, 그리고 모여서 은총을 받아 세상으로 흩어져 ‘에클레시아'에서 받은 은혜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디아스포라'의 인생살이를 말하며, 이 '에클레시아'의 삶과 '디아스포라'의 삶의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질 때, 건전한 신앙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4). 결론: 역사적 정황은 다르지만, 베드로가 박해하에 있는 성도들에게, “흩어져서…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라고 합니다. 나그네와 같은 짧은 인생을 육신의 정욕대로 아무렇게 살지 말고, 인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고 선악 간에 판단 받을 날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매일매일 순간순간 조심스럽게 두려움으로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행위(업적)에 따라서 공정하게 판결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 모시고 있으니,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은 늘 두려움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나그네(放浪-exile)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 각자가 어떤 종적(업적)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어떤 업적을 남기고 나그네의 삶을 마치겠는가를 심각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고난의 유산인 괴로운 인생살이일지라도 인종하면서 살아갈 때, 주님께서 가호의 손길을 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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