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0. 마가의 인간 됨됨이

solomong 2024. 11. 15. 11:19

10. 마가의 인간 됨됨이

(본문: 벧전 5:13)

1). 서론 : 프랜시스 베이컨은 세상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다이아몬드, 철광석 그리고 사람의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은 "인간 됨됨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올바른 가정교육과 성장 과정에서 쌓은 오랜 단련을 통하여 쌓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성이 갖추어진 '된 사람'은 남에게는 후대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준엄한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마가의 인간 됨됨이를 성서 말씀 속에서 추려 보니, 홀어머니 슬하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면서, 그것도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기에 고생에 대한 인종의 미덕이 부족했으나, 돈독한 신앙의 어머니 ‘마리아’의 지극정성과 훌륭한 외삼촌 바나바의 충고, 그리고 바울과 베드로를 통한 와신상담의 준엄한 신앙훈련을 통해서 주님의 종으로써의 끝내 성공적인 인품과 아름다운 생애를 보냈다고 하겠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종들에게는 “마가의 인간 됨됨이”가 他山之石의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 ①. 마가의 가정환경 - ⑴. 이름-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며, ‘요한’은 유대 식의 이름입니다. (행 12:12) ⑵. 부모-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별세하고, 어머니(마리아) 편모슬하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공로자였다고 합니다. (롬 16:6) ⑶. 집-그의 집은 예루살렘 교회가 모인 그 유명한 <마가의 다락방> 집의 주인이었으며,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오순절 교회’가 탄생한 곳이었습니다.

 

이 ‘마가의 다락방’은 곧 초대교회의 요람이요, 예루살렘 교회의 터전이었습니다. 그 후 제자들은 계속 이 집에서 모이였으며(행 1:13, 눅 22:12),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2번이나 제자들을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요 20:19-20, 26-28) 이로 보아서, 마가는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호화롭게 성장했다고 보겠습니다.

 

②. 마가의 인간관계 - 마가는 비록 이류의 인물에 지나지 않으나, 주님의 훌륭한 종들이었던 바나바, 바울, 베드로와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나바의 생질이었으며(골 4:10), 바울과는 제1차 전도 여행 시 동행자이었으나. 호강스럽게 자라난 마가로서는 전도 여행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도중하차로, 바울의 노여움을 사서 제2차 전도 여행 시는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행 13:13, 행 15:36-40)

 

그때 마가는 바울과 결별하고 외삼촌 ‘바나바’(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동생)를 따라서 ‘구브로’로 건너갔습니다. (행 15:39)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으므로(행 4:36), 마가는 外家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고, 바울을 떠나 공적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약 10여 년 이후 다시 바울과 화해하고, 마가는 바울의 로마 옥중생활에 같이 있으면서 바울을 섬겼으며(골 4:10, 몬 24), 그리고 수년 후에 바울의 제2차 투옥 때에는 바울을 떠나 소아시아 지방에 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나의 일에 유익한 자”로 높이 평가하면서 마가를 디모데에게 데리고 오기를 부탁하였습니다. (딤후 4:11) 이는 바울의 마가에 대한 신뢰감이라고 하겠으며, 이와 같은 兩者의 융화에는 마가가 성장하면서, 인품과 사명감이 돋보이는 외삼촌 바나바의 충언과 자신의 실수에 대한 깊은 회오에 찬 반성이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복음의 견지에서 볼 때, 私感에 연연하지 않는 바울의 숭고한 삶의 태도와 마지막 순교 직전에 좋은 결말을 짓고 가려는 바울 사랑의 심정에, 마가는 한층 더 신앙과 인품이 성숙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마가의 베드로와의 인간관계인데,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호칭했는데(벧전 5:13) 이 “내 아들”이라고 한 것은 물론 영적인 의미로서 베드로가 세례를 주었거나, 그를 성직으로 맡기게 했다는 뜻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도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했음-딤전 1:2) 초대교회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고 베드로가 그 교회의 지도자였으므로 마가와의 친분이 두터웠을 것이고, 그 시기는 물론 바울이 마가를 알기 훨씬 이전이었습니다.

 

많은 외증들은 마가가 로마에서 베드로의 “통역자”(ἑρμηνευτῂς)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복음 선교를 위해서는 아람어와 헬라어가 필요했고, 베드로 자신이 이런 2가지 말을 쓸 수 있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문자적인 통역자란 이해도 있기는 하나, 베드로의 정신을 알기 쉬운 말로 말하는 것, 베드로의 설교한 것을 책으로 재생시키는 것, 혹은 단순한 추종자 등으로 이해가 됩니다.

 

③. 마가의 공생애 - 마가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 자라나면서 ‘에비 없는 자식’이라 귀엽게 양육을 받았다고 보겠습니다. 그것도 가산이 부유한 처지라, 응석받이로 성장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어머니 마리아의 신앙이 두터웠으므로 별스러운 고통 없이 유년, 소년, 청년 시절을 어머니 사랑 속에서 신앙생활을 배우면서 성장했다고 하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가롯, 유다와 산헤드린 공회원에 의해서 잡히시자,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에, <“한 청년이 벗은 몸으로 베 홑이불을 두르고 도망쳤다.”>는 이 말씀의 주인공은 ‘마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회상에 근거해서 일러 준 것을 마가가 기록한 것으로 볼 때, 당시 목격자인 베드로의 인상에 크게 남아 이를 기록하게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막 14:51) 재미있는 것은 베드로가 일러 주는 것을 기록한 것이 마가복음이라면, <베 홑이불 사건>의 기사를 쓸 때, 마가는 자기 자신의 불미스러운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이를 배제하지 않고 쓴 것은 자신의 치부를 공개해도 좋다는 긍정 속에는 자신의 뼈저린 회개를 전제한 것이었다고 보겠습니다.

 

당시 베드로도 주님을 3번 모른다고 부인한 당사자로서, 비겁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제자 마가의 꼴불견(비겁) 속에 자신을 投影시켜 본 것이 아니었던가를 생각나게 합니다. 철저한 주님 부정과 자기 긍정의 한때 사건이 주님의 종으로 헌신 봉사하면서도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悔悟에 찬 삶이 더 주님을 위해서 자기 부정의 삶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보겠습니다.

 

마가의 공생애 출발은 오순절 이후, 약 15년경 유대 지방에 큰 기근이 있었을 때, 그 구제의 임무로 상경한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서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으로 온 때부터였습니다. (행 12:25) 그 후 안디옥교회에서 파송 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전도 여행에 동반하여 ‘구브로’ 섬을 거쳐, 밤빌리아의 ‘버가’에 당도했을 때, 마가는 전도 여행의 고생을 견디지 못하여 중도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행 13:13)

 

이 사건은 바울에게 큰 충격이 되어, 제2차 전도 여행 때에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행 15:36-40) 마가의 공생애에서 베 홑 이불을 두르고 주님을 따라가다가 危機가 오니 벗은 몸으로 도망한 일이나, 전도 여행 도중 어려움을 참지 못하여 떠나간 일들은 다 같이 마가의 미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유한 편모 하에 자유로이 자란 아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마가의 최후 공생애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전설에 의하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AD. 67-68) 후에, 애급으로 건너가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창립하고 그 감독이 되었다가 거기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의 분골 가루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니스로 운구하여 ‘성 마가’ 성당에 묻혔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설의 분명한 史實은 찾을 길이 없지만, 마가가 저술한 ‘마가복음서’ 이상으로 영원불멸의 기념비는 다른 史實을 찾아볼 필요성이 없다고 사료 됩니다.

 

3). 본론(Context) : 본문 벧전 5:13에는 흩어져서 나그네처럼 지내는 ‘디아스포라’들에게 베드로의 위로와 소망을 일깨워 주는 서신의 끝인사 속에 “내 아들 마가”도 문안 인사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는 호칭이 마가의 <인간 됨됨이>가 여하한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가의 인간 품격을 논하기 위해서, 필자는 신약성서 마가복음서, 누가복음서, 요한복음서, 사도행전, 로마서, 골로새서, 디모데후서, 빌레몬서 등등의 말씀들을 참고했습니다.

“내 아들”이라고 한 것은 물론 영적인 의미로서, 마가가 베드로로부터 은혜를 받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베드로가 세례를 주었거나, 그를 성직으로 임무를 맡게 했다는 뜻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도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했음-딤전 1:2) 또한 초대교회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고 베드로가 그 교회의 지도자였으므로 마가와의 친분이 두터웠을 것이고, 그 시기는 물론 바울이 마가를 알기 훨씬 이전이었습니다.

 

많은 외증들은 마가가 로마에서 베드로의 “통역자”(ἑρμηνευτῂς)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복음 선교를 위해서는 아람어와 헬라어가 필요했고, 베드로 자신이 이런 2가지 말을 쓸 수 있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문자적인 통역자란 이해이지만, 베드로의 정신을 알기 쉬운 말로 말하는 것, 베드로의 설교한 것을 책으로 재생시키는 것, 혹은 단순한 추종자 등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필자는 마가의 인간 됨됨이를 알기 위하여, 먼저 그의 가정환경을 통한 生育 史와 신상 명세서를 위(본론의 Text)에서 써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에서는 한 인간 개체는 부모끼리의 인간관계가 여하한 것인가를 통해서 그 자녀의 사람 됨됨이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신약성서에서 마가는 언제 아버지가 돌아간 것인지를 밝히지 않았기에, 다만 과부 어머니 ‘마리아’의 돈독한 신앙 속에서 성장한 것만 알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흔히 속세에서 ‘버릇없는 못된 남자를’ “에비 없는 호로(오랑캐) 자식”이라고 욕을 합니다. 조선 시대 인조 때, 청나라가 침입하여(병자호란), 50만 명이나 끌려간 부녀자들을 국비로 ‘속량 전’을 지불하고 돌아온 여인 중에 청나라에서 강제로 임신케 되어 귀국 후에 낳은 사내아이들을 욕하게 된 근원이었다고 합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초대교회에서 신앙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공로자(롬 16:6)로 인정받은 것을 보아서, 마가의 가정교육도 신앙과 인품 교육을 잘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심리학적 견지에서는 자녀의 인품이 성장하자면,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 행동 여하가 자녀의 ‘인간 됨됨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는 아버지 없이 편모슬하에서 자랐다면, 마가의 인격 형성에 결격사유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무서워 겁이 나서 도망친 사유라고 할 수도 있으며, 제1차 전도 여행 때 마가는 고생스러워 도중하차한 것도 고난 속에서 인종치 못한 이유라고 보겠습니다.(아버지에게서 배울 수 있는 용기와 끈기인데, 아버지 없이 자랐기에 이런 용기와 끈기가 결여한 점.)

 

물론 어머니 마리아가 잘 자라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만, 어머니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훌륭한 외삼촌 바나바가 곁에서 충언과 마가 다락방이 초대교회 중심터전이었기에 베드로를 위시한 신앙과 인품이 겸비한 선배와 스승들이 그나마 자기 집을 드나들며 인간관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마가는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컸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신앙과 인품이 성숙하는 데는, 베드로와 바울의 지도가 마가의 인간 됨됨이를 昇華시켰다고 하겠습니다.

 

제1차 전도 여행 때의 바울과 마가 간의 불화가 약 10여 년 이후에 다시 바울과 화해하고, 마가는 바울의 로마 옥중생활에 같이 있으면서 바울을 섬겼으며(골 4:10, 몬 24), 그 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바울은 마가를 “나의 일에 유익한 자”로 높이 평가하면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기를 부탁하였습니다. (딤후 4:11) 이는 바울의 마가에 대한 신뢰감이라고 하겠으며, 私感에 연연하지 않는 바울의 숭고한 삶의 태도와 마지막 순교 직전에 좋은 결말을 하고 가려는 바울 사랑의 심정에, 마가는 한층 더 신앙과 인품이 성숙했다고 봅니다.

 

또한 베드로와의 인간관계에서,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호칭할 정도로 베드로의 사랑과 신앙을 배울 수 있는 스승을 가짐으로써, 끝내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위대한 신앙고백과 마지막 3번 주님을 부인한 것 등등의 희비 쌍곡선이 교차하는 베드로의 회상에 근거해서 일러 준 것을 토대로 ‘마가복음서’를 기록한 마가의 생애였으며, 이러한 대선배인 스승의 삶을 통해서 마가의 가슴으로 스며든 신앙의 얼이 그로 인하여 애급으로 건너가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창립하고 그 감독이 되었다가 거기서 순교의 장엄한 생애로 마감했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마가의 인간 됨됨이>를 묵상해 보았습니다만, 특별히 오늘의 주의 종들과 교회의 일반 직분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을 위한 헌신과 충성의 삶에 중요한 他山之石의 교훈적인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이나 이미 성직에 봉사하는 목회자들과 교회를 섬기는 일반 여러 직분 자들은 먼저 자기 가정환경 특히 부모로부터 배운 바를 반성해 보는 성찰이 우선이며, 현재 헌신 봉사하는 공직생활에서 다소 시행착오가 있다면, 우선 자신의 가정환경과 인간관계를 점검하면서, 悔悟의 찬 뉘우침이 있기를 바랍니다.

 

4). 결론 : 마가의 인간 됨됨이는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치 못하고, 어머니 마리아의 아버지 없는 마가를 애틋한 심정에서 사랑과 신앙으로 양육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도 부유한 가정 형편이었기에 마가는 호강하면서 성장했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없는 결격사유가 결국 위의 2가지 결정적인 미성숙한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훌륭한 外叔 바나바의 충언과 스승 되는 베드로와 바울이 있었기에 마가의 부정적인 결점을 단련하고 연마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마가의 긍정적이고 차원 높은 인품으로 승화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한 그의 삶은 충성과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공생애를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가의 인간 됨됨이>를 오늘날 주님의 종들인 우리들의 실존 속에 깊숙이 투영시켜서, 장점은 굳게 길이 지키고, 단점은 아픔을 지그시 인종하면서 도려내어서 바람직한 생애로 일관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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