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
(시편 117:1~2)
1). 서론: 성경에서 가장 짧은 장인 시편 117편은 단 2절로 되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인류 전체를 표현하는 위대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짤막한 본문 시편은 모든 민족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해야(1절) 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2절)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인 크신 인자(사랑)와 영원히 변함없는 진실하심을 심도 있게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2). 본론(Text): 성경의 가장 짧은 장(편)이며, 그러므로 가장 긴장인 시편 119편과 대조가 됩니다. 너무나 짧기에 전편의 결말 또는 다음 편의 서론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엄연히 독립된 편으로 전해왔습니다. 이는 또 성경의 중앙을 차지하는 장입니다. 가장 짧은 시편이면서도 내용은 가장 넓어, 1. 만민에게 여호와 찬양을 환기하면서(1절), 2. 그 이유로 하나님의 2대 속성인 인자와 진실을 들고 있습니다. (2절)
3). 본론(Context): 본문 시는 시편 중에서 가장 많은 시이지만, 가장 큰 사상이 내포되었습니다. 구약성서는 대체로 이스라엘의 민족 문화입니다. 그 민족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으며, 그 백성들에게 야웨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야웨와 이스라엘과의 계약관계에서 기술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관심과 그 색채를 제거한다면, 구약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도 그 민족의 종교 생활, 예배 생활, 신앙과 경건 생활의 전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약을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에서만 보고 읽으면, 또한 구약을 바로 아는 것이 못됩니다. 구약은 만민의 하나님의 책이요,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의 종교적인 삶과 일반적인 삶, 그리고 모든 백성이 당면한 역사와 사회의 문제, 그리고 인종과 성의 차별 없이 모든 개인이 가져야 할 경건과 신앙의 원리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만민의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구약 신학의 중요한 과제인데, 본문 시편에서도 이스라엘의 종교적 경험과 그 신앙고백과 그 예배 정신과 경건의 열망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종교, 신앙, 경건의 문제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미 시편 제2편에서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의 하는 일- 야웨를 항거하는 일-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리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동시에 다만 야웨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섬기고 의지하려는 교훈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본문 시편 117편에서는 이스라엘적인 것이 온전히 배제되고, 다만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에 관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상은 구약에서도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제2 이사야, 특히 요나서가 주장하는 신학과 직통하는 우주적인 하나님, 세계적인 하나님, 만민의 하나님 사상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모스는 그 예언 첫머리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주변 여러 나라의 역사에 간섭하시어 그들의 죄를 책하고 벌하심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아무리 선민(選民)이라고 자부한대도 그 특권 때문에 그들의 죄가 용서되고 무조건 축복만 받는다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방 다른 나라를 벌하시는 하나님은 그 나라들이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기 때문에 벌을 한다는 편파적인 생각을 보임이 아니고,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신지라 죄를 지은 나라의 백성은 그 죄의 대가로 벌을 받는다는 사상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아모스는 주변 나라 4, 5개를 그 예로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모든 나라와 똑같이 하나님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렇게 편파적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이스라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 만민의 하나님 사상을 문서인 예언서로 최초로 강조하고 있는 사람은 아모스입니다. 심지어 6장 1절 이하에서는 아무리 하나님의 선민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에서 떠나는 날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이외의 나라의 권력을 불러와서 이스라엘을 치겠다는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모스에게서 뚜렷해진 이 “만민의 하나님” 사상은 예언자들이 계속 주장해 온 전통적인 사상이 되었습니다. 본문 시편 시인은 만민의 하나님 심판보다 그의 구원하시는 역사에 더 관심을 표시한 사람입니다. 크라우스가 이 시에서 종말적인 역사관을 볼 수 있다고 함은 이 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사상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현실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류사(人類史)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음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은 만민에게 구원을 베푸신 그의 종말적인 사건의 의미를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도 이 짧은 시를 그의 신학 논술의 종결부인 로마서 15장 11절에 인용하여서 하나님의 구원 은총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에게 아무 차별 없이 주신 은총이기에 만백성이 찬송할 일이라고 합니다. “이방 사람들도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고 하신다.”(롬 15:9)라고 하여서, 시편 18편 49절에 있는 이방 사람들의 찬양과 신명기 32장 43절(70 번역에서)에 나타난 이방인의 찬송과 본문 시편 117편의 찬송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본문 시편은 비록 본문이 2절뿐인 시이지만 기독교의 대강령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 시는 세계 만민의 찬송을 대표해서 노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보내주신 사랑과 진실을 찬송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온 두 마디 말 “헷세드”(사랑이란 번역이 가장 좋음)와 “에메트”(진실)는 구약 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돌보시는 두 가지 내용은 사랑과 진실입니다. 인간이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랑처럼 이익에 따라 변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랑은 진실한 사랑입니다. 언제나 그 사랑은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도 사랑하시는 진실한 사랑이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미쁘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 시는 본래 이스라엘이 계약 축제를 드릴 때 성전에서 부른 찬송이라고 하나(바이저), 반드시 이스라엘의 축제에 국한 시킬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기독 신자의 처지에서는 우리가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감격할 때 부를 노래로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 “너희 모든 나라들아, 너희 전체 민족들아”라고 한 말속에는 우리 한국 사람도 포함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117편 시인이 우리 “한국” 같은 나라를 염두에 두었을 리가 없지만, 본문 시인이 신앙은 만민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곧 우리 민족의 노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신자들이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영원히 찬송하는 백성이 된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나라에 그의 진실을 보여주시는 하나님, 그러기에 우리의 애국가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열강 속에서 계속해서 투쟁과 전쟁의 상처를 입으면서도, 아직 자랑스러운 나라로 남아 있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헷세트”의 사랑과 그의 진실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백성은 이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래가 이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내용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과 진실, 이 나라 도우시고 그 사랑 고마워 영원한 우리의 노래, 이 민족 살피시는 그 진실 고마워!”
* 이상과 같이 단 2절밖에 안 되는 본문 풀이를 자세하게 해 보았습니다. 본문의 1절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의 몫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절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인자(사랑)는 크고,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변치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도 굳게 붙잡아야 할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인자(사랑)는 망극(罔極)해서 우리의 실패와 한계를 넘어서서 그 크신 사랑을 붙들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영원하십니다. 우리의 상황은 변해도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3가지를 좀 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마음과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인자는 “우리에게 향하신 그의 인자하심이 크시고”라는 것은 여기서 ‘인자하심’은 히브리 원어로 단순히 사랑을 넘어선 <언약의 사랑, 변함없는 신실한 사랑, 자비로운 은혜>를 의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는 자격이 없지만 베풀어주시는 조건 없는 사랑이며, 그 크기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합니다.
진실은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심은 히브리 원어로 ‘진실하심’은 <진리, 신실함, 변함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며, 그분의 약속은 결단코 변치 않고 영원히 지속됨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한결같이 신실하시기에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가 망극한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선수(先手)로 받고 있으니, 그 사랑과 진실을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삶을 사노라면 위선 된 사랑과 진실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이론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진실한 가슴만이 사랑과 진실을 안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슴이 안내하는 대로 삶을 살면, 사랑과 진실의 하나님께서도 진실하다고 인정하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풀 것입니다.
4). 결론: 본문 시편 117편은 가장 짧지만, 그 어떤 장보다 강력하게 하나님의 인자(사랑)하심, 그리고 진실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 모든 민족이 당연히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인자하심과 영원한 진실하심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존재 이유이며 찬양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끝.
2026. 5.18.
山下연구원: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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