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약설교마당

75. 믿으니까 말한다.(시편 116편 설교문)

solomong 2026. 4. 24. 10:07

75. 믿으니까 말한다.(시편 116편 설교문)

(시116:1~19)

 

1). 서론: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깊숙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역설적(Ironical)으로 절망의 끝, 죽음의 문턱에서입니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인간의 힘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본문 시편 116편은 바로 그런 자리에서 드려진 노래입니다. 이 시의 저자는 이름이 확실하게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죽음의 위험 속에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은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이로다.”(1 절)이 고백은 단순한 감사의 말이 아닙니다. 죽음과 절망을 통과한 한 영혼이, 다시 살아서 하나님 앞에 서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고난의 자리에서,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이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본문 시편은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으로” 나아간 사람의 찬양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라는 가장 진솔한 신앙 고백의 내용입니다. 이런 정황을 본문을 통해서 만난 다음, 우리도 그런 하나님을 항상 만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개인적 위기에서 구원받은 자의 감사와 서약입니다. 저자로 다윗, 히스기야(그의 중병에서 고침을 받았을 때(사38장), 귀환 기의 무명의 시인 등이 추측됩니다. 마지막 설의 근거로는 시 중에 아랍어 풍이 있는 것과 다른 시들에서 인용이 많은 점이 들립니다. 마지막 설을 취합니다. 시 내용은 1. 구원의 감사(1~9). 2. 서약입니다. (10~19)

 

3). 본론(Context): 본문 시는 고난 중에서 신음하는 시인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떤 사정에서도 버리지 아니하심을 알려주는 신앙 시의 하나입니다. 시인의 생의 위기는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란과 슬픔을 만났다.”(3절) 함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내 눈의 눈물, 내 영혼의 사망, 내 발의 넘어짐”(8절), “내가 큰 곤란을 당했다.”(10절), “성도의 죽음”(15절), “나의 결박”(16절) 등은 시인의 현실적인 고난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본문의 시인이 자기의 고난, 환란, 눈물, 죽음의 위기 등을 열거함으로 자기의 고통의 극치를 알려 주고자 함이 시의 목적이 아니고, 이러한 견딜 수 없는 역경과 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 그의 자비, 긍휼, 구원, 그의 사랑은 얼마나 감격스러움을 본문 시에서 알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내가 사랑한다.”(1절) 라는 말을 했다고 믿는 일, 야웨 하나님께 구원하여 주기를 기도하는 마음(4절), 특히 그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자비하시다”(5절) 라고 고백하는 그의 신앙심을 높이 쳐다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고난 속에 있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후대해 주시고”(7절), “구원의 잔”을 들고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고 있으며(13절) 구속당함에서 그를 해방 시켜 주심에(16절) 감격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자기가 당면한 수난의 현실에 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야웨께서 내게 베푸신 그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하리까?”(12절) 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보답하는 길은 본문 시인이 “평생에 기도하는 길”(21절) 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13절), 감사제를 드리는 것이라(17절)고 했습니다.

 

전체에 흐르는 시의 감정은 고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청한다기보다는 모든 고난, 생의 위험, 실망, 구속 등은 이미 과거의 일로 지나가 버리고, 오직 생각하면 감격과 감사의 심정밖에 없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의 시인은 이사야 38장에 나온 히스기야 왕이 병에서 신고하다가 고침을 받은 후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고 있는 내용과 서로 통합니다. 그리고 본문 시는 시편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과 은총을 찬송하는 시와 유사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시편 18편, 27편, 31편 그리고 51편 등입니다. 이런 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자비, 긍휼, 구원 등에 대한 어휘들을 많이 본 따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구원과 도움에 대한 감격도 중요하지만, 본문 시인은 자기가 분명히 믿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의 경험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피해 나갈 수 없는 역경 속에 처한다 해도, 자신이 분명히 믿는 까닭에 자신의 구원은 틀림없이 있는 것입니다. 대담하게 자기 신앙을 간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9절)는 고백은 본문 시인의 수난의 범위가 얼마나 큰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본문의 시인은 “내가 믿으니 말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 말이 내용은 이미 본문 시의 내용에서 살핀 대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행동, 그의 깊으신 인간 관심, 그의 지극하신 사랑, 그의 사리를 따지지 않고 도우시는 즉각적인 반응, 그의 철저한 은총의 성취 등입니다.

 

아무것도 주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신 줄 믿기 때문에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과 생활의 조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내 생활의 방편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살기 위하여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말이 “내가 믿으니까 말한다.”라는 뜻입니다. 데카르트(Descartes)는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밑천으로 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믿기 때문에 살아간다.”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내 생활에 중심이나 자랑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 삶의 무의미를 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기 때문에 말한다.”라는 말은 오늘날과 같이 언론의 시대, 매스컴의 시대에 말이 난발 되어 있는 시대에 한번 깊이 반성할 구절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믿을 수 없는 말들-이른바 불신의 말로 차 있습니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말을 한다는 참 언론인을 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지는 않으면서도 그 말을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도 없고, 그 말을 언론에 기록하여 발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믿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허위요, 그것이 조작이요, 그것이 힘과 권력에 의해 명령 된 말, 지령 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그 말을 해야 하고 써야 합니다. 이리하여 오늘의 불신 시대의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믿는 대로 말해야 합니다.

 

* 이상과 같이 본문 시를 좀도 쉽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이제 그 은혜가 너무 커서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를 고심하다가, 지나간 고난 중일 때 하나님께 서원(誓願)하고 서약(誓約)한 것을 반드시 갚는 삶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1).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생이라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와 동기는 고난 중에 죽음이 가까이 와서, 눈에는 눈물이, 몸을 지탱하던 발은 힘이 소진하여 넘어지게 되었던 위기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고난에서 구원함을 받았기에 마음속의 굳은 결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평생 살아가는 삶은 기도하면서 살겠다는 다짐의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영육 간의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 애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신실하고 자애로운 은혜를 베풀어 구원해 주신 그 사랑을 어찌 망각하겠습니까! 그러니 평안하다고 그 은혜를 저버리겠습니까! 참된 신앙은 어려울 때만 엎드려 기도함이 아니라, 그 어려움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평안할 때도 여전히 엎드려 고마움의 기도를 드리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두 번째는 산 자들 앞에서 생을 영위하지만, 하나님의 목전에서 살겠다는 결단이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여호와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삼상16:7)라는 말씀처럼, 인간 사회(형제, 친구, 공동체)에서는 행동하는 겉모습만 보고 선악의 모습을 판별하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눈앞에서 산다는 것은 외모(外貌)의 행동이 올바른 것처럼 사는 삶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 간에는 통할 수 있을지 몰라도(속여서), 하나님께는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믿음, 행위 선악을 정확하게 판별하시는 하나님은 무엇 보다도 인간의 속마음(中心)을 보시고 선악을 판단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극심한 고난과 눈물 흘리면서 슬퍼하던 시절에 하나님께 애절한 하소연을 절규하면서, “살려주신다면 평생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서원한 것을 공동체 앞에서 지키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지라.”(18절) 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서원한 그 약속을 하나님께 갚겠다고 했을까요?

 

자랑하고 싶은 심정에서 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제 말을 좀 들어보세요. 사경(死境)을 헤매던 저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십니다.”라고 간증으로 서원을 이행한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단지 마음의 표현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우리의 순종과 헌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그의 인자하심을 신뢰하며, 서원을 지키는 복된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4). 결론: 죽음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담긴 본문 시입니다. 본문 시인은 자신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 마음 깊은 찬양을 드리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은혜는 생명의 위기에서 구원하여 주셔서, 본문 시인은 평생토록 주의 이름을 부르며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역시 본문을 묵상하고서 망극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생 전체를 헌납하면서 살기로 작정하도록 합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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