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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복 받는 인생
(시 115:1~18)
1). 서론 : 사람들은 모두 복을 원합니다. 세상은 복을 성공·건강·물질·명예와 같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규정하지만, 성경은 언제나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을 받는 자”는 어떤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며, 어떤 능력을 성취한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복이 흘러 나옵니다. 본문 시 115편은 바로 이 ‘관계에서 오는 복’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숭배로 흔들리고, 주변 민족들은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선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복은 외부 환경으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사람이 복을 누리며, 하나님이 그에게 어떤 복을 주실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본론 (Text) : 예배용 시로 저작의 시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 기로 보나, 혹은 히스기야의 찬송 시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성전 예배에서 교독 시로 사용된 듯하며, 1~8절은 회중이, 9~15절은 성가대원이, 그리고 16~18절은 다시 회중 전체가 교독한 듯합니다. 70인 역에는 본문 시가 전편과 합쳐져 있으나 내용 면에서는 2개의 시인 것이 분명합니다. 1. 여호와와 우상의 차이(1~8), 2. 그러므로 여호와를 의지할 것(9~11, 이 부분은 특히 좋은 교독체입니다.), 3. 이스라엘에 복 주시는 여호와 (12~18).
3). 본론(Context) : 본문 시 자체는 이스라엘 신앙에 대한 회의가 생겼을 때, 구체적으로 말해서 “너희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도대체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너희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찌해서 너희 나라는 적군에게 패망했느냐?” 이런 비난을 이방 신을 섬기던 사람들로부터 받고서, 백성들 사이에서 살던 본문 시인이 비록 나라는 망했지만,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복 받는 생활인가를 알리는 시를 썼습니다. 그는 일단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이란 얼마나 허무한가를 흥미진진하고 실감 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상이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람의 조작물에 절하고 복을 달라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입이 있기는 하지만 말 도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는 소리도 내지 못하는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합니다. (4~7절)
사람의 손으로 조작된 이 우상 앞에 아무리 기도 한들 들을 수 없으며, 제물을 갖다 두어도 볼 수 없고, 향불이 타올라도 맡지 못하고, 입이 있지만 한마디 말을 해서 예배자에게 그 뜻을 전달하지 못하고, 자기 발로 아무 곳이나 걸어서 갈 힘이 없습니다. 이런 허무한 것을 만드는 자와 이것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은 이 우상 그것과 같이 허무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을 주는 대상을 잘못 택하고, 그 섬기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복을 갈망해도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 섬기는 대상이 잘못된 것을 모르고 있으니 복을 받을 수 없고, 또 그 믿는 태도가 복 받는 일을 조건으로 믿고 있으니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시인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받음에 대하여 엄하게 경고합니다. “야웨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1절) 이는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받으실 영광을 대신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란 말과 “하나님”과는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인 목사가 하는 말과 일이 “하나님의 종”이란 이름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복종하고 순종하면 복을 받는 것이지, “주의 종”이라는 인간의 말과 행동을 절대화시키는 교만은 하나님의 행동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복은 다만 하나님 한 분만이 주십니다. 교역자도 이 하나님께 충성하면 복 받는 것은 일반 평신도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목사는 교만, 독선(獨善), 독재, 허위, 탐심, 사치를 다 해도, 하나님의 종이니 죄가 안 되고, 일반 평신도는 그런 것들이 죄가 된다는 것은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완전히 자기 보호 신(保護 神)으로 만들고 복을 주고 화를 줄 수 있는 권위를 교역자가 전매특허 했다는 망발을 범하고 있습니다. 복 받는 말을 가르치려면, 본문 시 115편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복이 어떻게 올 수 있는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복은 야웨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어 우리를 돌보고 살피시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12절) 무엇을 살피십니까? 13절에 있는 대로 “대소 무론 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복 받는 길입니다. 교역자에게 충성하는 길이 복을 받는다고 외치지 말고 교역자 자신과 신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성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복을 주는 권한은 교역자에게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복을 혼자 맡아서 파는 전매특허 인도 아닙니다. 다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입니다.” (14절) 절대로 교역자에게 복종하는 길이 복 받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도의 의무이지 복 받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인간인 목사가 하나님의 복을 대신 줄 수 있는 권한이나 받은 것같이 독선적인 신앙을 가진 교역자는 가장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 이상과 같이 본문 시를 간략히 풀이해 보았습니다. 본문 중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인 말씀은 하나님게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는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자이며,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복의 근원>,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 <복의 열매> 등에 대해서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15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자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일까요?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자입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1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인은 처음부터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며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영광 받으실 분은 우리 인생들이 아니라, 오직 한 분 <인자하시고 진실하신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의 원조인 <칼빈>은 평생을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Soli Deo Gloria)란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죽을 때도 자기의 무덤 앞에 비석마저 세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게 혹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까 우려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13절). 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무조건 축복을 허락하신다고 합니다. <경외>란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뜻하고, 하나님은 진실로 경외 받으실 옳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1. 복의 근원: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에서 복의 근원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본문 시 115:15)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창조 권능을 강조하며, 모든 생명과 축복의 원천이 그분께 있음을 선포합니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생명과 모든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창조가 단순한 물질적 행위가 아니라,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 가정, 일터는 모두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으며, 그분의 손에서 복이 흘러나옵니다. 이 복은 물질적 풍요뿐 아니라 영적 충만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구할 때 세상의 것에 의존하지 않고, 천지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물질적 필요나 성공을 위해 세상에 기대기보다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구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복을 받는 조건: 본문 시 115:9-11은 이스라엘, 아론의 집,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촉구합니다. 복을 받는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신뢰는 단순한 믿음 이상으로,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존 웨슬리는 신앙의 실천적 삶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기도와 순종으로 그 믿음을 증명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레미야 17:7은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세상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자유로워지고, 그분의 선하심을 경험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방 신들을 신뢰하는 자들의 허무함을 대조하며(115:4-8), 참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참된 복을 누린다고 선언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며 순종합시다. 신뢰의 삶은 복을 여는 열쇠입니다.
3. 복의 열매: 본문 시 115:1은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고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께 돌리소서”라고 시작합니다. 복을 받은 자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열매를 맺습니다. 18절은 “우리가 영원히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라고 결론지으며, 복의 목적이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존 웨슬리는 성도의 삶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태복음 5:16에서 예수님은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은 가정, 건강, 은혜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복 받은 자는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세상 속에서 그분의 빛을 비춥니다. 받은 복을 이웃과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4). 결론: 본문 시 115:15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고 선언합니다. 이 복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존 웨슬리는 복 받은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두려움 속에서 흔들릴 때, 천지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약속대로 공급하십니다. 이 복은 단순히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복을 누리고, 그 복을 통해 이웃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로 결단합시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가 영원히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진실하심을 증거하는 거룩한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우리의 신뢰를 고백하며, 그분의 복을 힘입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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