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가슴으로 교류하는 그리움
(본문: 빌 1:1-11)
1). 서론: 요사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빨간 우체통을 통해서나, 우체국에 직접 가서 사적인 편지를 보내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휴대폰 전화와 문자로, PC.를 통한 e-mail로 私信이 왕래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과학 문명의 혜택을 단단히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리하고 빠른 그 서신의 의사전달이 심사숙고해서 나온 가슴 깊은 곳에서 흐르는 생각과 애정이 결여한 즉흥적이고, 단편적일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주 후 63년경에 보낸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의 서두입니다. 그러나 그 속엔 그리스도의 심장이 담긴 애련한 사랑과 감사의 정서가 주님의 가슴에서 바울에게로, 바울이 주님에게로 교류된 그 애정이, 다시 빌립보 교인들에게 흘러가는 그리움과 사모의 정이 넘쳐흐르는 것을 우리는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슴으로 교류하는 그리움이 수직과 수평으로 넘쳐흘러야 하겠습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①. 그리스도를 적대했던 사울을 주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용서하고 소명하여 주님의 종으로 택한 사실 앞에서, 바울은 두고두고 평생을 잊을 수 없는 감격이었고, 죽음으로도 값을 수없는 주님에 대한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바울 간의 垂直的인 이 사랑의 관계는, 水平的으로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자로 그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하여 천신만고의 아픔도 달게 받았던 것입니다.
②. 바울의 빌립보 선교에 관한 내용은 사도행전 16장에 상세히 명기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드로아'의 환상을 보고서 아시아 선교를 단념하고, '에에게' 바다를 건너 빌립보의 관문인 '네압볼리'에 도착하여 로마의 公道를 따라 빌립보에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성서 해석가인 람제이(Ramsay)는 드로아의 환상에 나타난 마게도냐 사람은 사도행전 16장 10절에 근거하여(“우리”라는 말)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때 누가가 바울 일행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③.어찌했던지,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宣敎를 개시한 시기는 기독교 복음이 유럽에 건너간 최초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의 진로에 대한 신비로운 하나님 섭리의 손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때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지 않고, 그대로 아시아 선교에 힘썼더라면, 중동과 인도를 거쳐서 극동 아시아인 한국에 먼저 복음이 전래 되고, 이 복음은 태평양을 건너서 미주와 유럽으로 갔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세계사가 달라졌음을 짐작하게 되는데, 정말 하나님의 섭리는 기묘합니다.
④.하여튼,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한 후에, '루디아', 점치던 여자, 옥사장이 회개하게 되고, 극적으로 빌립보교회가 설립되었고, 그래서 이 빌립보교회는 바울 선교의 중요한 橋頭堡가 되었던 것은 사도행전을 통해서 익히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설립된 빌립보교회는 헌금 열성이 대단하였고, 특히 바울에 대한 애정이 영육 간에 많았고, 동시에 아름다운 봉사 정신이 투철했습니다.
⑤.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빌립보교회는 바울과 인연이 깊고, 또한 바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빌립보 교인들은 그들의 스승이요, 아버지인 그가, 로마에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헌금하여 빌립보교회 교인인 '에바브로디도' 에게 맡겨서 로마 옥중까지 가서 전달하고, 투옥된 바울을 지성으로 섬기던 중, 에바브로디도가 득병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빌립보 교인들은 위문 사절이 도리어 스승에게 짐이 되었다는 것에 근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⑥.그러나 얼마 후에 에바브로디도가 병에서 회복되어서, 바울은 그를 빌립보교회로 돌려보내면서 피차 모든 근심을 풀고, 또한 바울에 대한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에 感泣하는 感謝狀이 바로 이 본서이고, 본문은 그 서론적인 인사가 가슴속에서 그리움으로 묻어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3). 본론(Context): ⑴.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호칭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는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으로,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복종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들은 하나님께나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소유’란 철저한 意識이 투철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⑵.바울은 수신자인 빌립보 교인들을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성도’라는 헬라어 원어의 뜻풀이로써, ‘구별된 자’로서의 도덕적 정결을 동반한 신앙적으로 거룩한 인격체라는 의미입니다. 말씀의 전달자요, 대언 자인 목자가 되는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양 떼들인 교인들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과도 구별된 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이 결핍된 곳에 오늘날 교회에 부끄러운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목사들도 반성하고, 교인들도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⑶. 목사 스스로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식이 설 때, 교인들이 세상의 가치판단에서 구별된 거룩함과 경건을 자각할 때, 목자와 양 떼들 사이에, 교인들인 양 떼들 사이에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교류되는 진정한 그리움>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갱생과 부흥! 세상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존경스러운 찬사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교회 목사를! 교회를! 연민에 찬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애타는 심정으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⑷. 이번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 ‘성결교 목사의 딸자식에 대한 폭력과 때려서 죽인 사건’을 원초적으로, 심리학적인 분석을 해 볼 때,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본대로, 느낀 대로, 그대로 思考하고 行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속된 말로 父傳子傳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실존철학자요, 신학자이었던 키엘케가드의 말처럼,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자기의 과거를 보고,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자기의 미래 본다.”라는 것이나, 프로이드(S. Freud)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인 Id, Ego, Superego를 더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⑸. 이 이론을 신앙적인 차원으로 옮겨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반역하는 사울을 사랑하여 충성스러운 종으로 만들었고, 하나님의 심장을 본받은 바울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하였고, 또한 그런 가슴으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그리워하며 思慕하였고, 빌립보 교인들은 신앙의 아버지인 바울을 물심양면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이런 이치가 그대로 적용되는 한국교회가 되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이제 우리는 이미 베풀어진 하나님 사랑이 십자가 사건에서, 만강에 넘치는 그 사랑을 알았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종들인 우리 각자는 마땅히 주님의 소유인 것을 통감하고, 이런 심정으로 양 떼들인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할 때, 그들은 우리를 본받아 주님과 주의 종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를 때, 한국의 기독교는 세인의 존경을 받으며, 기독교의 찬연한 복음의 빛은 세상에 두루 비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가슴으로 교류하는 그리움’의 실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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