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33. 은밀한 선행

solomong 2026. 4. 19. 09:58

133. 은밀한 선행

(본문: 마6:1-24, 눅11:2-4)

 

1). 서론: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의 '목걸이'라는 유명한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마틸드는 스스로 자기의 미모와 우아함은 타고난 여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화려한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가난한 하급 관리의 집안에 태어났고, 어쩔 수 없이 별로 보잘 것 없는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의 남편 로와젤은 문부성에 근무하는 하급 공무원이었습니다. 마틸드는 자신이 누추하고 가난한 집안에서 살아야 된다는 사실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 로와젤은 장관이 베푸는 연회에 부부가 함께 와 달라는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틸드는 좋아하기는커녕 슬퍼했습니다. 입고 갈만한 화려한 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달래기 위해 옷을 무려 400프랑이나 주고서 맞춰주었습니다. 그녀는 또다시 옷이 문제가 아니라, 치장할 보석이 없어서 안달을 했습니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친구인 포레스터 부인에게 보석을 빌리기로 하고, 그에게 가서 가장 멋져 보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렸습니다.

 

드디어 장관의 관저에서 연회가 베풀어지는 날 마틸드는 평생소원을 성취했습니다. 모든 남자들이 자기를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목에 걸려 있어야 할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급히 뛰어가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빈 보석 상자를 들고 보석 가게를 돌아다니며 비슷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값이 무려 36,000프랑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물려받은 전 재산인 18,000프랑에 사채, 고리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마구 꾼 돈으로 그 목걸이를 사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엄청난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싸구려 다락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온갖 궂은 일을 다 했습니다. 남편은 근무 시간이 끝나면 밤에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0년 걸려 모든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동안 마틸드의 미모는 폭삭 망가졌습니다. 완전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칠어졌습니다. 그런 어느 날 상제리제 거리를 걷다가 목걸이를 빌려 주었던 친구 부인을 만났습니다. 그 부인은 마틸드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늙어버린 그를 보고 놀랐습니다. 마틸드는 포레스터 부인에게 10년 전에 돌려줬던 목걸이를 잊어버려서 새 것으로 사다 줬다는 것과 지금까지 고생했던 이야기를 다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너무나 놀라면서 말하기를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 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모조품이었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작가 모파상은 독자들에게 무슨 교훈을 주려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픈 자긍심(自矜心)과 허영심(虛榮心)을 꼬집은 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너무나 귀하기에 은밀한 곳에 숨기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구제생활, 기도생활, 자기 극기의 금식생활 및 소유재산의 관리 등이, 이웃 사랑에 대한 은밀한 선행만이 그 속에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이 있기에, 오직 하나님께만 독대하여 칭찬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본론(Text): 본문의 요지는 기독자의 신앙생활인 구제는 대인적(對人的), 기도는 대신적(對神的), 금식은 대아적(對我的)인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僞善的)인 것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외적 표시보다 하나님을 상대한 내적 충실에 기하라는 교훈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이 사람 상대가 되어 외식생활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유혹은 우리 자신이 마음에서, 세상에서, 마귀에게서 부단히 다가오는 법이다.”(주경학자 Bengel)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기도하는 것은 정규적인 장소이지만, 회당에서 기도하는 시간에 외출 중이면 길가에서 기도하였고, 나중에는 일부러 외출하여 길가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외식하는 자(ὑποκριτἠς)의 원어의 뜻이 말해 주듯이, “배우”라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서 “위선자”라고 해석되어 집니다. 배우들은 관중들이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으려고 연기하는 것이 그 특성인줄 압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상대한 기도가 아니기에,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골방, 즉 오직 하나님을 독대한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금식은 개인적, 국가적 비애의 표시었으나, 죄를 회개하는 표시로, 자기 극기(克己)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외식적인 금식을 경계하여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것입니다. 금식의 태도는 고도의 신앙행위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서, 외면은 평시의 생활 모습의 인간성을 간직하는 것에 신앙자의 경건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동정을 구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구제, 기도, 금식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태도를 경계하신 말씀이라면, 물질생활에 관한 교훈은 이방인들의 불신앙적인 인생관과 대조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물질생활은 세상을 대하는 기독자의 생활내용입니다. 교회헌금, 빈민과 병자를 위한 구제 등은 모두 보물을 하늘에 쌓는 은밀한 선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철학자 Emerson은 말하기를 “네가 땅을 소유하면 땅도 너를 소유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소유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소유할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은밀한 선행의 동기(動機)가 순수해야합니다. ‘은밀한 선행’은 행위의 근원은 마음속에 깊이 간직된 선한 성품 안에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근본적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지배하는 일반원칙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의 성품으로부터 선행이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그런 사람에게는 은밀한 선행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모국어인 한글을 말할 때, 서슴없이 술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은밀한 선행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종종 자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내면적 마음속에 이미 배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선행을 베풀 때, 망설이는 생각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에 푹 빠져왔기에, 그들의 행동은 은밀한 중에 행해지는 것입니다. 은밀한 선행을 베푸는 자는 자신의 행동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며, 기억하는 일도 드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밀한 선행의 과정(過程)은 은밀한 선행을 베푸는 당사자는 가다금씩 고독을 되씹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밀한 선행은 언제나 ‘고독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은밀한 선행을 베푸는 자들에게 고독의 깊은 자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독의 자리에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은밀한 선행자를 만나 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고난을 당할 때, 버림을 받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지만, 경건한 성도와 은밀한 선행자는 이때가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며, 하나님의 방문을 받는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독의 자리는 버림받은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축복의 장소인 것입니다. 골방의 기도생활은 곧 고독의 장소이면서도 하나님과 만나는 축복의 장소인 것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우리가 돌이켜 볼 때에도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존 번연’은 감옥의 깊은 고독에서 ‘천로역정’을 얻었고, ‘존 밀톤’은 실명의 깊은 고독에서 ‘실락원’을 얻었고, ‘다미엔’은 절해고도 ‘몰로카이’에서 ‘성자’가 되었고,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홀로 있으면서 ‘계시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경건한 성도와 은밀한 선행자를 고독의 자리에 만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때의 하나님의 존재 양식은 우리들의 은밀한 선행을 하나님은 은밀하게 보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본문말씀에서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것뿐만이 아니고 은밀한 중에 계십니다. 안 계시는 것 같은데 계십니다. 은밀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그런데, 은밀한 선행이 어려운 것은 만족을 모르고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함을 갖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욕심을 충족하면 할수록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욕심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평생 욕심을 채워준다고 해도 또 다시 새로운 것을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끝없는 욕심의 수렁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마치 무거운 짐을 하나하나 내려 놓으면 몸이 가벼워지듯, 욕심은 내려놓을수록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부질없는 욕심을 쫓는 것 보다는 가진 것이 없어도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보람된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염일방일(拈一放一)이란 중국 고사성어의 뜻은 ‘중요한 하나를 가지려면 덜 중요한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를 쥐고, 또 하나를 쥐려 한다면 그 2개를 모두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 모파상의 진주목걸이 이야기처럼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인생의 삶을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가정일수록 경제적으로 풍요해서가 아닙니다.

 

적게 가졌더라도 늘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며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괴테는 “자기를 만족시키는 일은 전연 드물다. 그 만큼, 다른 사람을 만족시켰다는 것은, 더 한층 기쁜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은밀한 선행의 결과(結果)로서는 알려지던지 알려지지 않던지 간에, 가치(價値) 있는 것은 무엇이나, 이 지구상에서 결코 죽어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보고 또 알게 될 때, 그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답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는 흡족하신 시선으로 우리를 보시면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선한 사람의 한 일은, 남모르게 땅을 추겨 초목을 푸르게 하면서, 땅 밑으로 스며들어 흐르는 수맥(水脈)과도 같습니다. 그 어느 날엔 끊임없이 흐르는 샘물이 되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수(生水)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런 은밀한 선행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결론: 은밀한 선행을 하라고 신신당부하신 예수님의 교훈의 소극적인 저의(底意)는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과시와 공로주의 사고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적인 그 동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기가 순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선행의 함정이 외식적인 겉치레, 외면치레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은밀한 선행의 과정은 비록 고독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하는 행위임을 명심합시다. 또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승화된 은밀한 선행의 결과는 어려운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수를 보상으로 받게 됩니다. 이제 은밀한 선행을 위해서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합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