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28. 신자의 영적 경주

solomong 2026. 3. 30. 11:01

 

128. 신자의 영적 경주

(본문: 빌3:12-16)

 

1). 서론: 인생살이 달리기 경주에서 선수는 단 한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오래전 마라톤 경주 선수였던 ‘글렌 커닝엄’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말로, "달리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가 바로 자신이다. 다른 선수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적이 아니다. 뛰어 넘어야 할 대상은 자기 안에 있다. 머리와 가슴에서 자신의 자아와 감정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술회한바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경주에서도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들의 영적 경주는 언제 어디서 출발했느냐는 문제보담도,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그 과정과 꼴인 지점까지 중단 없이 완주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바입니다. 이 바울의 신념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하겠습니다.

 

2). 본론(Text): ①. 바울은 빌립보서 初頭부터 자신의 아름다운 신앙의 간증을 해왔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고난에 대한 것에 연민의 정과 정반대로, 유대적인 신자들이 모세 율법을 경시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도함이 성공하는 것에 대한 시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로마 옥중의 매임은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된다는 것을 바울은 피력하였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내의 분쟁에 대한 권면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로 해결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내의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로, 자신의 신앙의 가치관 전향을 한 것에 대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②. 이제는 빌립보 교회내의 반도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신앙의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신앙의 완성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신앙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셨으니, 더 이상 노력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현상유지나 잘하면 족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권면하는 뜻으로, ‘신자의 영적경주’에 대한 자신의 간증을 본문에서 토로하고 있습니다.

 

③.그리하여 분문 12절에서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라고 말하면서, 여기 “얻었다”(ἔλαβον)라는 헬라어 낱말은 부정과거형으로서, 구원은 지나간 사건이지만, 현재까지 계속 영향을 미치는 사건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엡2:6), 그것은 구원의 도상에 있는 영적이요, 소망인 육적 부활을 통해 완성되는 시기는 아직(Not yet)은 아니고, 미래에 있을 사건이란 것이었습니다.

 

④. 그래서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 신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완전히 성결(聖潔)하게 된다는 도덕적 완전주의자들이 있었던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자가 믿는 순간에 의롭게 되는 것(Justification)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은 도덕적 성화(Sanctification)는 신앙자의 일생을 통하여 고저(高低)의 곡선(曲線)을 그리면서 진행되는 것이요, 그것이 완성되는 때는 우리가 죽어서 주님 앞에 설 때인 것입니다.

 

⑤. 그리하여 바울은 그것을 잡으려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쫒아간다고 했습니다. 신자의 영적 경주에 승리를 위해서, ⑴.첫 번째 조건은 전진(前進)으로서, 현재에 주저앉아서 머뭇거리지 말고, 그냥 앞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⑵.두 번째 요소는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란 것입니다. ⑶. 셋째의 요소로는 푯대를 향해서 몰두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본문에서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소망의 신학자 몰트만의 시간관은 “과거는 회상(回想)으로서의 현재이고, 미래는 이미 현재에 와서 존재한다.”라고 말한바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소망을 강조하는 ‘소망의 신학’의 이론적 견지에서 말한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본문에서 말하는 바울의 시간관은 엄격히 구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라는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신자의 영적 경주’에서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재의 시공(時空) 속에서, 취할 태도는 현재에 안주(安住)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진에 방해요인이 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현재에 안주한다는 것은 잡힌 자리에서 인생을 구가예찬(謳歌禮讚)하면서 “여기가 좋아옵니다.”라고 만족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주, 삶의 보람, 명예 및 권리행사가 흡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 향락에 빠져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더 바랄 것도 없이 현재에 지족하면 특히 기독자라도 소망에 대한 신앙이 흐려지기 마련입니다. 현재가 천국 같은 착각 속에서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 삶을 보장해 주는 요인들이 잠간동안 우리를 현혹하는 것뿐입니다. ‘풀의 꽃’과 같이 허무한 인생인 것을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전진에 또한 장해물이 되는 것은 과거의 공과(功過)를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가슴에 품고 달리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장밋빛 인생이!, 실패의 쓴잔이! 앞으로 달려가는데 늘 거침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잘 살고, 성공하여 이름을 날리던 그것이!, 가슴 아픈 상처들이!, 현시점에서 내일로, 미래로, 향하는 기독자의 실존에 중하(重荷)의 짐으로 억 누르기 때문에 전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경주에는 가능한 가볍게 해야만 앞으로 잘 달려 갈 수가 있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진에 장애가 되는 것은 강한 역풍(逆風)의 바람입니다. 어제께 자전거로 운동 삼아 서북 방향의 들길 강변도로를 한 바퀴 달려서, 귀가 길인 남쪽으로 돌아오는데, 꽃샘 남풍 바람이 그렇게도 매서운 줄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들의 영적 경주에도 인생의 역풍이 매섭게 불어옵니다. 역경의 바람이붑니다. 조금 타협하면 지름길이 있는데, “꼭 이렇게 믿어야 하는가!”라는 유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영적 경주 주변에서, “넓고, 평탄하고, 쉬운 길이 있다.”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은 가야한다고 다짐하면서, 저 종점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려야 하겠습니다.

 

미국 Union 신학교 L. J. Sherrill 교수는 그의 저서 “The Struggle of the Soul”(영혼의 고투)에서, 언급하기를 한 인간의 삶의 유형을 신화(神話)에 나오는 영웅(saga), 맷돌을 굴리는 사람(treadmill, 구약의 삼손처럼), 순례자(Pilgrimage)의 인생으로 구분하여 말하였습니다. 신화에 나오는 Ulysses(유리씨즈)나 역사에 등장하는 나폴레옹 등의 영웅들은 그 종말은 다 비극으로 종지부를 찍고 맙니다. 자유가 완전히 박탈당하여 맷돌을 굴리는 삼손과 같은 사람은 정상적인 바람직한 삶이 아닙니다.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걷는 순례자의 삶이 아름답고 바람직합니다.

 

 

영웅의 인생길, 맷돌을 굴리는 인생, 순례자의 노정(路程)에서 생각해 볼 때, 사람은 저마다 영웅적인 삶을 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우리 기독자가 천성 길을 달리는 데는 장애가 될뿐더러 영웅도 되지 못하고, 그 생애가 비참하게 종지부를 찍고 맙니다. 맷돌을 굴리는 인생은 과거에 집착되어 완전히 현재에 자유를 상실한 체, 과거의 아롱진 추억에! 슬픔에! 갇혀있는 삶입니다. 여기서 탈출(脫出)해서 새로운 앞길을 향해서 바울처럼 달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순례자의 삶을 한걸음씩! 푯대를 향해! 주님이 주신 상급을 위해서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우리 기독신자가 영적으로 경주하는 길엔 장애가 많습니다. 좌우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많습니다. 때로는 고난이! 때로는 달콤하고 아롱진 장밋빛으로 손짓할 때가 있습니다. 단연코 물리치고 앞으로 돌진해야 하겠습니다. 과거의 수많은 미련과 애달픔으로 우리 자신들을 붙들고 가슴을 조이는 것에서 해방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다만, 순례자가 가는 그 길엔 고달프고 험준할 길일지라도 앞만 보고 전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장하도다! 충성된 종들아!”하시면서, 의(義)의 면류관을 씌워주시면서, 상 주시는 그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전진합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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