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25. 마음의 고향

solomong 2026. 2. 14. 11:11

125. 마음의 고향

(본문: 마 28:1-10)

 

1). 서론: 피아노의 천재 Chopin이 20세 때, 러시아가 자기 조국 폴란드를 침공해서, 그는 큰 꿈을 간직하고서, 프랑스 파리로 떠나올 적에 아버지가 병에 넣어 준 고향 땅 흙의 냄새를 맡으면서 향수를 달랬다고 합니다. 그는 39세 일기로 임종 때, 자기 무덤에 고향의 흙을 넣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향이란 자연환경이나 육적(肉的)으로 “자기가 나서 자란 곳이나, 자기 조상이 오래간 터 잡아 살던 곳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정신적으로나 영혼이 행복하고 안식했던 곳을 마음의 고향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민족의 명절인 한가위(秋夕)의 계절입니다. 지금부터 귀향 자동차로 고속도로는 또 몸살을 알케 되었습니다. 고향! 사랑하는 부모님을 뵈옵고,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孝와 형제 友愛를 다짐하면서, 지난날의 추억들을 더듬어 보면서, 특히 금년에 탁한 도시의 오염된 먼지를 다시 淨化(카타르시스)시켜보는 고향의 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욱이 그간 살아 온 저마다의 인생을, 思索의 문턱에 들어선 계절에 새롭고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어찌했던 저마다의 鄕愁는 향긋하고 그리운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갈릴리 해변과 갈릴리지방은 특별히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마음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지금 말씀하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3년간 침식을 같이 나누며, 고락을 나누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영화로운 모습을 보이시며 주님의 지상의 성역을 끝맺음하려는 즈음에, 부활 이후에 다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①. 본문의 요지-마 28:7-10.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인(막달라 마리아 등등)들에게 부활하신 사실을 제자들에게 傳言하고,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주님의 공생애 대부분을 보낸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되신 주님은 다시 살아나 흩어진 양 떼를 재집결 시킬 곳이 제자들의 고향인 갈릴리이었습니다. 남방 출신 유다는 배신하고, 남은 제자들은 갈릴리 사람들이기에 추억도 새로운 고향 땅 갈릴리에서 최후로 주님의 행적과 교훈을 부활의 빛 하에서 재검토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②. 이미 마태복음 26:32.에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는 와중에도 흩어진 양 떼를 부활 후에 갈릴리에 모을 것을 예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본문 28:7-8에는 제자들은 무서움과 실의에 차서 다 제 갈 길로 흩어진 마당이었기에, 무덤까지 겁 없이 찾아간 애정 어린 여성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재회의 갈릴리를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분부를 받고 전달한 결과가 요 21:1-23.에 나타나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갈릴리는 성지의 북방지역으로 순수한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당시엔 독립투사들인 레지스탕스(불어-Resistance)들이 특히 많이 살고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성지를 3부로 구분하면, 남방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도심지 유대 지방이고, 북쪽은 이제 말씀들인 바와 같이 갈릴리지방입니다. 남쪽과 북쪽 사이에 있는 사마리아지역은 이방인들이 사는 혼혈 민족의 터전이었습니다. 북방은 비옥한 농토가 많은 곳으로 순수한 서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은 모두 북방 갈릴리 사람들이었으나, 단 한 사람만은 남방 유대 지방의 출신인 가룟. 유다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반역한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갈릴리지방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었기에(우리식으로 말한다면 지방색) 그는 평소 고독을 느끼었고, 다른 제자들과 친교가 원활하지 못한 것에서 그런 배신의 음모가 생긴 사유도 될 수 있고, 유대 출신이라 정치적인 면에서 다른 제자들보다 민감했다고 생각해 봅니다. 어찌했던,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11.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재회(再會)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 소집했을까요. 11. 제자들은 모두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서 11. 제자들을 소명하신 곳이 이 갈릴리이었습니다. 가령 베드로, 야고보, 형제는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다가, 마태는 세관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그들의 감격이 너무 컸으므로, 그들은 생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셨고,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첫 감격이었고, 주님의 첫사랑을 맛본 곳이었습니다.

 

그 후 3년간 그들은 제자 수업을 했고, 주님의 크신 능력도 체험했고, 고상하고 신비로운 생활을 경험했던 곳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첫사랑이 불타오르고, 그들의 이상(理想)도 활활 타오르던 곳이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상경할 때, 그들은 갈릴리 일개 어부에 불과했던 자들인데, 3년간 교육을 받고서, 스승께서 예루살렘에 상경하여 옥좌(玉座)에 등극하게 되면 자기들은 좌우 정승의 영화를 누릴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는 현실은 너무나 생각 외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왕좌 대신에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꿈은 깨어지고 모든 희망은 산산이 조각나고, 스승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사랑도 퇴색했던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 죽음에서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즈음은 일단 기뻐했고, 잃어버린 소망의 불꽃도 다시 붙기 시작했으나, 그들은 지난날의 사건들을 도무지 정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부활한 주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라고 하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분부하신 것을 상기시키면서, 3년 전 그들이 처음으로 주님을 만난 그 감격스러운 그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란 의미에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으며,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서 재출발하자는 뜻에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한 것입니다. 흔히 결혼 주례사를 보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생 풍파와 마음이 지쳐서 서로 간 사랑이 식을 때, 오늘의 이 결혼식장으로 부단히 돌아와서 사랑을 재확인하라.”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오래전에, 부산 해운대 신학자 연구회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해운대 극동호텔의 손님 한 분이 314호 방을 달라고 요청을 했답니다. 호텔 측은 그 방은 이미 손님이 들었다고 했지만, 그 손님은 자꾸 그 방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사유인즉, 매년 결혼기념일 때면 신혼여행 당시에 들렸던 그곳이기에, 그때를 회상하면서 부부간의 사랑을 다시 두텁게 했고, 또한 두텁게 하기 위한 이유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에 소아시아 7. 교회 장단점을 말씀하면서, 에베소교회에 “처음 사랑을 버렸다.”라고 충고한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만찬을 그린 화가 레오날드 다빈치는 “중년기의 최대의 적(敵)은 사랑의 권태와 용기 상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실로 고비가 많은 인생 중년기의 위기는 실로 “사랑의 권태와 용기 상실”일 것입니다. 처음 사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어느 작가는 “늙지 말고 성숙해지라.”라고 말했습니다만, 인생의 어떤 고비에서 좌절되고 마는 것은 곧 늙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 사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숙해지란 뜻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뉴욕 빈민가에서 주정꾼과 창녀들을 상대로 선교한 사무엘 하드리(Sammuel Hadly) 목사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어머니 슬하에서 신앙교육을 받았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훈을 받았으나, 어머니가 별세한 후, 깊이 타락하여 주정꾼이 되고 도박사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1882년 4일 18일 그가 44세 때, 깊이 회개하여 4일간 금식하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자기처럼 타락한 빈민굴 주민을 상대로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 후 20년간 매년 4월 18일이 되면, 이전에 갇혔던 경찰서 감방을 찾아가 거기서 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경찰서 그 감방은 하드리에 있어서 주님을 만난 마음의 고향, 갈릴리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난 3년간의 공생애를 통해서 총결산은 갈릴리 서민 출신 11. 제자뿐이었습니다. 이 11. 제자가 주님의 성역의 보람의 열매였습니다. 이들이 성숙해 짐으로 주님의 구속 사업은 계승되고 결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처음 은혜받던 그때, 그곳의 원점으로 때로는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간 우리 사회 深層에 깔린 더러운 찌꺼기들이 폭발되어 심각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과 영혼의 고향 땅! 주님과 더불어 갈릴리에서 조용히 그리고 깊이 생각하고, 그 원형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주님께 대한 신앙이 흐트러질 때마다, 각자가 그때를 연상하면서 처음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성숙한 신앙으로 새 출발 하는 이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4). 결론: 현대인의 고민은 각자의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것 때문에, 여유와 생의 의미를 망각하고 방향감각을 상실해 가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요사이 조용한 시골 고향으로 가서 전원생활을 즐기며 쉼터로 만들어 사는 풍조가 조금씩 늘어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삶도 오늘날 필요한 것입니다만, 겸하여 정신적인 영혼의 쉼터가 더욱 아쉬운 때라고 하겠습니다. 마음 지칠 때마다,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 거기서 정리된 삶을 "Play Again!" 했으면 합니다.

 

우리도 너무나 분주하고 또 복잡한 상황 속에서 시간상으로 공간적으로, 마음의 고향, 저마다의 갈릴리로 돌아가서 우리 신앙과 삶을 재점검해 보는 사색의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시점에서 저마다의 마음의 고향을 찾읍시다. 再會의 그 갈릴리에서 우리도 주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쉼과 새 힘을 얻어 인생 여정을 새로운 안목과 모습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고향, 再會의 갈릴리로 돌아갑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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