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제자의 길
(본문: 마10:1-42, 16:24-28, 막6:7-13, 눅9:1-6)
1). 서론: D. Bonheoffer는 ‘제자의 길과 그 개체’라고 하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 가지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첫째, 단독 결단이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 물을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실존적인 문제이기에, 아내고 남편이고 자식이고, 아무와도 관계없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 생명의 문제이니까 단독으로 결단해야 한다. 둘째, 단독으로 나서야 한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이것은 주님과 자아(自我)와의 관계이기 때문에, 혼자 나서야 한다. 셋째, 세상과의 관련성을 청산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에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끊어버려라. 툭툭 잘라 버려라. 그러지 않고는 결코 사람의 바른 모습, 그리스도인의 바른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12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복음 전파 길에, 앞서 ‘제자의 길’을 교훈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자신에게 투영(投影)시켜서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2). 본론-Text: ①. 마10:5-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복음의 빛은 가장 가까운데서 멀리까지 비춰가는 모양으로, 복음 전도의 순서, 경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제자 자신, 가정 식구, 이웃, 동족, 이방인 순서로 가야 할 것을 교훈한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한 제자들 자신과 가정을 제일 먼저 복음의 진수를 터득했는지를 살펴보란 함축된 말씀이라고 봅니다.
②. 마10:9-10-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 주님의 종, 제자의 길을 가는 도상에 우선 의식주(衣食住)의 문제가 급선무인 것을 아시고, 육의 문제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제자의 길에 가장 거침돌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로 오늘날도 주의 종들이 시험에 넘어지는 사례를 우리는 자주 접하게 됩니다.
③. 마10:12- “평안을 빌라.”, ‘인사를 하라.’(Shalom)는 뜻인데, 복음 전도자인 제자의 대인관계(對人關係)를 말씀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종적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전에, 중요한 것은 인간의 횡적(橫的)인 윤리 문제가 선(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은혜와 평강’의 근본 주제인 복음 전파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④. 마10:14-“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떨어 버리라’(κονιορτόν=코니올톤))-‘전혀 관계가 없다. 전혀 책임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복음 전파에 있어서, 단호한 결단력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제자들의 복음 증거에 있어서 피전도자들의 수용 여부에 책임이 없으니, 맺고 끊는 것, 즉 지리멸렬(支離滅裂)치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 가지고 흥정하거나 비겁한 행동은 삼가고, 분명한 결단을 하라는 교훈의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⑤. 마10: 32-33-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 하나님께 “주여! 주여!”하는 신앙고백(마7:21)은 꼭 같이 사람 앞에서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적인 신앙고백이 없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자(二重人格者)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자가 빠지기 쉬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 가운데서 위선자(僞善者)가 있다는 항간의 질타하는 소리가 더러 있습니다.
⑥. 마10: 37- “아비나 어미를.......나보다도 사랑하는 자도.......” , 여기서 사랑의 두 종류를 구별해서 말씀하시는 교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인 것으로 <ἀγαπάω>의 사랑과 인륜적(人倫的)인 <φιλέω>의 사랑을 대비(對比)해서 교훈하신 것입니다. (요 21:15 참조) 영어에 있어서 Love와 Like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자가 공존은 하되, 그 사랑의 질(質)이 달라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⑦. 마10:38-“자기 십자가를 지고.......” , 제자들의 고난의 길은 궁극적으로 십자가의 길이란 것입니다. 이때에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지실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신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만민을 위한 절대적인 것이지만, 제자들의 십자가는 각양각색으로, 각자는 저마다의 문제를 스스로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본문(Context): 오늘 본문은 제자들에게 주시는 무거운 교훈의 말씀입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라.’라는 것은 복음 전파의 순서인 경로를 말씀하는 것으로서, 출발지인 자기 자신과 가정이란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태세가 시초부터 준비가 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에 대한 자아확립이 선결이란 것입니다. 가정 식구를 포함한 복음에 대한 확고한 자기신념이 섰느냐가 선결 조건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호구지책, 의식주 문제가 구체적으로 주의 종들에게 닥치는 걸림돌입니다. 물질생활에 대한 유혹과 시험을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원만한 인격, 즉 타인과의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 결격사유가 있어서는 ‘제자의 길’을 걸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평안(平安)을 빌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가 될 수 있는 첫걸음은 전파자의 ‘사람 됨됨이’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나, 행동을 보니 믿을 만하다.”라는 평판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슴 속에서 품겨 나오는 피전도자의 아픔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이 끓어오르고 있느냐는 것에 대한 솔직한 자문자답의 소리를 먼저 들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제자의 길엔 수많은 문제가 야기 될 때,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어느 것이 주님의 뜻인가를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를 결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란 결단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단호한 자기 의지, 신념, 가치관, 선악의 선명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리뭉실하게 ‘쉽게 살겠다.’라는 뜻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복음’에 대한 우유부단(優柔不斷)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잘못되면 위선자(僞善者)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언급한 말의 핵심은 <φιλέω>와 <ἀγαπάω>를 구별해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필레오’는 영어에 있어서 ‘Like'라고 한다면, ’아가파오‘는 ’Love'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요 21:15-17) 베드로가 주님을 3 번이나 부인(否認)한 근본적 동인(動因)은 스승인 주님을 ‘좋아했지, 사랑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주님을 위한 자기희생적인 사랑하는 마음이 그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선결문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던 옛 자아는 자아집착(自我執着)이란 것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육신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6,7)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애정(愛情)과 물질적인 재물, 그리고 성공과 명예를 버리는 것은 엄청난 결단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아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무슨 일이든지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은 '나'(Self)입니다. 제일 무서운 싸움의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제자의 길에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한 단절하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 옛사람이 내 안에서 죽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옛사람이 죽지 않고는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긍정(肯定)한다는 뜻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주님의 생명이 내 안에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이제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삼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 분의 통치에 순복할 때, 비로소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옛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내 안에 주님으로 모시면 자연히 자기가 죽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고 기쁘고 능력 있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은 다 포기했지만,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3-24)고 탄식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정직한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정말 예수님을 정직하게 믿으려 하고, 하나님을 정직하게 따르려 하는 사람의 내면적인 고민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굉장한 진리를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부인은 어떻게 가능한가.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지성이나 도덕, 의지나 교양을 가지고는 변화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성령의 인치심이 있을 때, 성령의 불이 나를 엄습했을 때, 그때 내가 거듭나고 변하고 깨어지는 것입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없으면 항상 나는 육체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나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나를 꺾을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 제자의 길은 일단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그다음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죄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 때문에 겪는 억울한 고통과 희생을 달게 받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일, 피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결코 내 죄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고 하였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고통 받는 것이 아니고, 일 년에 몇 번, 평생에 여러 차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나의 현실 속에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서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오해를 받고, 손해를 보고, 고통을 겪는 이것을 기쁘게 질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참된 제자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이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부인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기꺼이 자원해서 지고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희생도 있습니다. 거기에 자기 아픔도 있습니다. 거기에 아낌없이 쏟아붓는 헌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는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있는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일만 하려고 하는 것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이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육신적으로 볼 때는 미련하게 보일 뿐입니다.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래서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이런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요? 아무나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 지성으로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오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서야 근본적으로 그 삶이 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도덕적 수준이 갑자기 좋아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윤리적인 결단이 갑자기 생겼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성이 급변했다는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성령의 불을 받고 변한 것뿐입니다.
4). 결론: 제자의 길을 걷는 자의 기본자세는 인간 됨됨이에 있어서 자아확립과 물질생활에 대한 유혹과 시험을 돌파해야 하고, 결단력이 분명해야 합니다. 참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은 세상을 역행(逆行)하는 삶입니다. 그것은 자기 부인(否認)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전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렵습니다. 때로는 비난도 받고, 고독한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주님께 순종하면서 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인간적으로는 고난과 수치와 손해를 감수하는 것과 직결 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을 당부(當付)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기분이 내킬 때만 아니고, 평생 죽을 때까지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영생의 길이요, 은혜의 길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서슴없이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끝.
'04. 신약설교마당(135)'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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