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19. 해는 저물고, 갈 길이 먼 당신들

solomong 2026. 1. 12. 10:41

 

해는 저물고, 갈 길이 먼 당신들

(본문: 마 9:35-38, 마 15:32, 막 6:34-44, 8:1-3)

 

-2016. 11. 17. 대학 수능 시험을 마치고 난 젊은 당신들을 생각하면서-

 

I). 서론: 금 년 한해도 기울어 송구영신의 새해를 맞이할 경계선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때가 되면 그 어떤 인생, 어느 계층이든지 만감이 교차하는 깊은 사념에 잠기게 됩니다. 세월에 찌든 욕심에 벗어나서, 순수한 저마다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고픈 그리움들이 있습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일 년간 내내 잊고 살았던 고맙고, 보고 싶고, 생각나는 얼굴들이 우리들의 영상에 아른거리며 유난히 그리워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일기장을 되넘겨 읽어보며, 조그마한 수첩이나, 졸업 '앨범' 속의 그리운 얼굴들을 연민의 정으로,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일념으로 생을 돌이켜 보며, 다시 걸어가야 할 인생 여정의 먼 길을 생각하게 합니다. 필자는 눈망울이 영롱하던 사춘기 소년 손녀들을 상대로 성서를 가르치던 교목 선생님(고교 교목) 때가 영화의 필름처럼 스쳐 가며, 또한 20대 젊은 청춘의 열정과 그 순정, 낭만 및 그 고고한 투지를 불태우며, 자신의 인생길을 개척하고자 뒤척이던 아련한 대학 교단의 그 시절의 젊은 당신들이 그리워집니다.

 

이젠 당신들의 자녀들이나, 조카들의 나이에 이른 젊은이들에게, 당신들에게 잔소리했던 그때의 교훈을 되풀이해서, 하나의 진실을 토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진실'이 그 얼마나 고독한가를 그간의 배움의 터전에서, 삶과 역사의 한가운데서 터득했으리라 믿습니다. 해는 저물어 가고, 갈 길은 '천만리'(千萬里) 같은 당신들에게, 특별히 대학 수능 시험을 마치고 난 당신들에게, 또는 대학 졸업을 하고도,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백수로 세월을 한탄하며 젊은이답지 않게 긴 한숨 쉬는 당신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①.“목자 없는 양”-사자(獅子)나 이리는 단독으로 살 수 있지만, 양은 목자 없이는 살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목자 없는 양은 갈 바를 모르며 겁에 질려 헤매다가 결국 산산이 헤어지고, 곤비해져서 맹수의 밥이 되고 맙니다. 당시엔 직업적 또는 맹목적 목자는 많았으나, 확고한 신적 vision과 이념을 가지고 민중을 지도하는 목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진정한 지도자를 결한 공동체는 분열, 불안 및 쇠잔에 빠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②. 막 8:3, “길에서 기진하리라.”- ‘기진하다.’(έκλὐω)-‘맥이 풀리다’, ‘기진맥진하다’, ‘낙심하다’ 의 뜻입니다. ③.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마 15:32) ,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막 6:35),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막 8:3)

 

④. <멀리서 온 사람>은 건너편 벳새다 지방이거나 혹은 북방 이방인의 땅에서 예수를 따라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치 모성애(母性愛)가 깊은 어머니의 자애로운 마음같이, 세세하게 생각하시며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심정이 눈물겹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간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셨지만, 육의 문제를 결단코 무시하시지 않은 장면의 말씀들입니다.

 

3). 본론(Context): 오늘 성경 본문 말씀 중에, 마가복음 6장의 말씀은 날은 저물어 가는데 목자 없는 양 같은 처지에 있는 민초(民草)들을 참으로 불쌍히 여기는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문화 환경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으나, 유대인들은 유목문화 속에 살던 민족이라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목자들은 양 떼를 아침 일찍이 '우리'에서 몰고 나와 푸른 초장을 찾아서 멀리 가기도 합니다.

 

시냇가가 있고, 초원이 질펀한 초장에서 마음껏 꼴을 먹입니다. 그러다가 서산에 해가 지기 전에, 목자는 양 떼를 몰고 '우리'로 향해 돌아옵니다. 어찌하여 그 만 해가 저물면 '우리'에 가지 못하고 도중에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때, 목자는 양들을 뭇 맹수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꼬박 밤을 지우면서 양 떼를 지키게 됩니다. 이런 목자를 가진 양들은 행복한 양들입니다. 예수님의 안목에서는 참 목자 없는 양 떼로 비유해서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라고 연민의 정으로 본문의 백성을 바라본 것입니다(막6:34).

 

목자 없는 양은 길을 찾지 못합니다. 단테는 "삼림 속에서 잠을 깨니 밤이었다. 앞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생 행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의 갈림길에 서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목자 없는 양은 초장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닥쳐오는 위험에서 보호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험과 위험에서 자력으로 보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0:11). 오고 가는 모든 세대에서 예수님은 인류의 가슴에 지워버릴 수 없는 진실하고 영원한, 선한 목자와 같은 인생 안내의 구세주입니다. 삯 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기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했습니다. (요 10:12~13)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는 영원한 스승이 없어서, 마음속에 살아있는 진리의 스승이 없어서, 인생의 첫 고뇌의 쓴잔을 들이키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자, 또 마가복음 8장의 말씀은 3일 동안 배불리 먹지 못한 허기진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서, 만일 그냥 굶겨 집으로 보내면, 가는 도중에 기진하여 쓰러질까 염려하여 배불리 먹여 보냈다는 말씀입니다. 비로소 예수님은 인간의 영혼 문제만 아니라, 육의 빵 문제도 걱정해 주시는 분임을 본문 성서는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고마운 말씀은 ‘갈 길이 먼’ 군상들을 배려하고, 그 긴 여정을 같이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상징적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통찰과 갈 길이 먼 백성들을 편히 가게 하시겠다는 보장(保障)의 말씀이 함축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막 8: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여기서는 길을 안내한다, 진리를 가르쳐 준다, 생명을 준다는 말씀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곧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자체가 곧 길입니다.

 

전자는 "목자 없는 양 같음…, 날은 저물고"(막 6:34~35)의 상징적 의미로 생존을 위한, 투쟁의 마당인 세상살이란 흑암과 혼동의 시공(時空) 속에서, 참된 인생 안내자가 없으므로 목자 없는 양들처럼, 판단의 오류의 선을 넘어 결행함으로써 저마다 내부적 가슴에서 뼛속 깊이 저리는 공포, 불안, 초조, 걱정, 절망 즉 젊은 인생들의 삶을 완전히 비존재화(非存在化)시키려는 모든 인생의 ‘정신적 고뇌’를 말한다고 보겠습니다.

 

후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막 8: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빵 문제만 아니라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먼 길임을 아시고, 그 여정을 염려해 주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상징적 의미로 인생의 긴 여정을 편히 갈 수 없게 하는 외부적인 유혹, 가면, 위선, 모략, 함정, 배신 및 위기, 의식주의 안주(安住)의 유혹, 명예 및 권력 등으로 인한 '육신의 욕망과 집착의 허무에서 오는 그 심기 허약과 그 고통과 그 허탈'을 의미한다고 보겠습니다.

 

당신들의 왜곡된 부모의 사랑도, 진정한 인생 안내자가 못됩니다. 학교의 스승도, 학원의 강사도, 친구도, 대학의 교수도, 그 어떤 사람도 당신들의 영원한 스승은 못됩니다. 이들은 다 한계상황(限界狀況)을 벗어나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절친한 친구도 인생길 가노라면, 갑자기 돌변한 그들의 가면과 위선 및 함정과 배신으로 당신들을 속삭여 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쉽게 살며 일견 성공으로 가는 길, 즉 '로토 복권 대박'을 고대하는 것처럼, 벼락 입학, 벼락 취업을 기대하면서 요령껏 출세의 유혹에 당신들은 솔깃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쉽게 가는 길이 결코 아닙니다. 인생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기 마련입니다. 땀을 흘려야, 한 조각의 빵을 먹게 되는 것이 삶의 이치입니다. 일하지 않고 쉽게 빵을 먹으려 했고, 일시에 창고에 쌓아 놓으려고 했습니다. 성서는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고(살후 3:10),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 12:20).

 

하지만, 한번 큰 실패의 늪 때문에 그냥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툭툭 털고 일어나세요. 여러분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재귀하십시오. 이런 말을 하는 필자도 슬픈 고배를 마신 경험자로 당신들께 다가갑니다. 인생길을 회고해 볼 때, 이유 없이 다가온 고난의 길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 길은 걸어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사경(死境)의 분수령을 넘고 나서야, 줄줄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또 그 길이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기에, 간혹 생각할 때마다 내 발등을 찍고 싶지만, 영원하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앞에 놓여 있는 이 길을 가야만 하기에, 지금 내 속에서 그분의 뜻대로 부단히 만들어 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내가 세월을 몰고 온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길의 안내자였던 것을 이젠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 그분을 따라, 인생길을 걸어가기를 젊은 당신들에게 권유합니다. 자! 이제 결단합시다. 결단한다는 것은 고독한 마음이요, 행위입니다. 그렇다고 결단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을 미루거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결단의 속성입니다. 머잖아,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과 아내가 되어야 하고, 또 아버지,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것들도 반드시 당신들께 다가오는 결단의 요청이요, 무거운 책임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그 길을 따라 살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원하는 삶의 모습은 그분에 대한 믿음, 그분이 주시는 성실, 열정, 순정 및 용기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삶의 성실성이 그만큼 자기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진리를 결단한 만큼, 노력한 만큼, 행복하다는 것을 삶에서 체험해 보기를 바랍니다. 삶은 그 마음속에 열정이 불타고 있는 한, 행복하고, 삶은 그 가슴에 순정이 스며들고 있는 한, 의미 있는 이상의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용기는 비겁하지 않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가에 있습니다. 비굴함이 없이 씩씩하게 살길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고귀한 용기입니다.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기에, 혹여 삶의 체험이 부족하기에 실수와 실패의 쓴잔을 들이키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무엇이라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들의 그 실패와 허욕에 감염되어 실수하였노라고 아뢰면 용서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재귀를 가능하게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되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의 언어학 교수였으며, 시인이었던 '롱펠로우’가 젊은 당신들을 위해서 쓴 시 '인생 찬가'를 소개합니다: "인생 찬가"( A Psalm of Life, 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니/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인생은 진실이다!/인생은 진지하다!/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우리가 가야 할 곳, 또한 가는 길은/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느니./이 세상은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인생의 야영 안에서/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어라./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활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활동하라!/안에는 마음이, 위에는 하나님이 있다.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치느니/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룰 수 있고/우리가 떠나간 시간의 모래 위에/발자취를 남길 수가 있느니라./그 발자취는 뒷날에 다른 사람이/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다가/파선되어 버려진 형제가 보고/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지니./우리 모두 일어나 일하지 않으려나,/어떤 운명인들 이겨낼 용기를 가지고,/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속 추구하면서/일하며 기다림을 배우지 않으려나.>

 

Longfellow는 <인생 찬가>에서, 특히 젊은 당신들에게 말하는 것은 인생은 한갓 된 허무한 것이지만, 의미와 진지한 삶을 사는 자의 인생은 허무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선상(永遠線上)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추구해야 할 길은 향락도 아니고, 비극도 아니라, 각기 내일이 오늘보다 좋은 삶을 창조하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란 것입니다. 히포크라테스의 금언처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굳건한 인생관 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험되는 무수한 일들은 당신들을 허무하게 하지만, 젊은 당신들에게 Longfellow가 “이 세상은 넓고 넓은 투쟁의 마당에서 인생의 야영에서, 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싸움에서 승리하는 영웅이 되어라.”라고 격려하는 것을 특히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철저한 과거에 대한 청산(마태복음 8:22)과 현재의 충실성! 그것이 바로 어떤 미래가 오게 하는지의 동인(動因)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미래의 길을 인도하는 자는 내 속에 있는 믿음과 위에서 나를 감찰하시고 길 안내자가 되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이렇게 불굴의 용기와 믿음으로 사는 당신들이 될 때, 장차 젊은 당신들 뒤에 오는 어느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절망 속에 있다가(파선되어), 당신들의 이런 승리하는 삶의 흔적을 보고, 당신들의 후배들이 고해 바다를 다시 용기백배하여 일어나게 하는 젊은 당신들의 종적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격려하는 시(詩)입니다.

 

4). 결론: 자, 이제 결단하세요. 금년도 거의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즈음 모든 고뇌, 허탈, 고통과 오점들은 과거로 날려 보내고, 가까이 오고 있는 시공(時空)엔 아무리 흑암과 혼동의 세상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 먼 인생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결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용기 있게 일어나는 젊은 당신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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