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18. 기다리는 마음

solomong 2026. 1. 3. 11:12

118. 기다리는 마음

(본문: 마25:1-13)

1). 서론: '기다린다.' 말은 어떠한 사람이나 때가 도래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기다린다.'라는 실상은 애타게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경우도 있으며, 그래서 불안 , 초조, 그리움, 등등의 정서적 감정도 내재하고 있습니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도 이런 때에 쓰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했던 기다림은 매우 고통스런 삶이요, 심적 현상입니다. 임을 기다린다, 시험발표 합격을 기다린다, 판결 선고를 기다린다. 등등의 수많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마음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긍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적 새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명절을 손꼽아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이때 기다리는 마음은 가슴 설레며 행복한 마음입니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 느림의 미학 등은 기다리는 마음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속성입니다. 기다리는 마음의 속성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은 역시 가슴 설레는 마음 일 것입니다. 본문의 슬기 있는 5처녀는 긍정적으로, 미련한 5처녀는 부정적으로 기다리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서, 깨어 기다리는 자와 기다림에 지쳐 그만 자는 자가 받을 보응을 대조한 내용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 말씀은 기독자가 기름을 준비하고 졸음이 오지만 깨어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의 자세를 권장하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인간 세상의 기다림은 고통스런 정서 감정이지만, 신앙적 차원에서의 기다림은 희망과 즐거움이 도래하는 것이기에 忍從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되새김질해야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①. 마25:4, “그릇에 기름”- ‘그릇’은 인간의 마음을, ‘기름’은 성령(사61:1-3, 히1:9, 1요2: 20, 27)을, 불타는 ‘등’은 풍성한 신앙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형식적인 교인, 성령을 받지 못한 자, 주의 재림을 예비치 못한 자라면, 슬기 있는 처녀들은 중심의 신자, 성령을 받은 자,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자로서, 그 차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②. 마25:5, “졸며 잘 새”- 존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조는 것을 말하며, 잔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자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조는 것과 자는 것을 슬기 있는 자들과 미련한 자들에 다 적용된다는 해석자도 있고, 조는 것은 슬기 있는 자들로, 자는 것은 미련한 자들로 해석하는 주경학자들도 있습니다만, 필자 생각으로는 슬기 있는 자들도 깜박깜박 순간적으로 졸기도 했다고 봅니다. 중심에 깊은 신앙을 가진 자들도 잠시간 조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엉뚱한 언행이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③. 마25:10, “문은 닫힌지라.”-비로소 천국문은 예비치 못한 자들에게는 닫힌 것입니다. 항상 열려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한번 닫쳐버리면 영원히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 것이 미련한자들의 착각이요, 오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는 결론적인 교훈을 가슴이 깊이 아로새겨야 하겠습니다.

3). 본론(Context): 예수님께서도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not yet) 고 어머니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전 인류에 대한 속죄의 피를 흘림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풀게 하시고(만족), 하나님 아버지와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하시고, 인류에게는 죄를 속량하는 구속사적 사건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본문의 10 처녀의 비유는 신랑을 기다리는 마음의 자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슬기 있는 5 처녀보다, 미련한 5처녀에 더 시선이 갑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실존이 이들과 흡사하지 않는가를 생각해 보는 견지에서 그렇습니다. 미련하다는 것은 감각이 예리하지 못하고 어리석고 둔한 모습을 말합니다. "미련하기가 '곰'일세"하는 표현이 적격인 것 같습니다.

신랑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 신랑에 대한 정조, 영접할 자세 등이 둔감한 자들입니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처음에 10 처녀들이 다 등과 기름이 준비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할 기름의 여분(extra)을 생각하지 않고, 신랑이 더디 오기에, 흥청망청 자기들 놀음에 다 소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현실에 安住 하려는 태세이지, 미래 지향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5처녀는 신랑을 맞을 여분의 기름을 쓰지 않고, 캄캄하더라도 참고 견디어 내었습니다.

여기 슬기와 미련의 갈림길은 여분(extra)을 두느냐, 아니면 다 탕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을 위한 마음의 여분, 삶에 있어서 주님을 위한 공간, 시간의 여분을 두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1952년에 에이레 출생의 S. Beckett의 노벨 수상 문학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전체적 사상은 현대 인간실존의 <부조리>를 표현한 작품으로서, 현대인은 자아가 상실되고, 희망은 잃어버린 존재로 파악되는 실존주의의 기본적 전제와도 맥을 같이 하는 餘分이 없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자아를 상실한 부랑아와 같은 존재로서, 만난 적도 없고, 결코 오지 않을 고도(Godot, God=하나님)를 기다리는 현대인의 투사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작품이기에 대사를 소개하면 재미가 있습니다. "갈대 잎 소리가 나는데, Godot가 오는 것이 아닌가?, 아닐세! 우리는 기다리는 일에 진력이 났네!, 지겨워서 죽을 지경이네, 저기 버드나무가 있네, 우리 목매달까?, 내 허리띠가 있네, 우리 목매세, 그 이가 온다면?......" 등등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기다림의 여분을 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서론에서 이미 언급한 기다리는 마음의 긍정적인 속성으로 가슴 설레고 애련한 마음씨입니다. 지금은 느낄 수 없는 현상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가는 마음과, 답장을 손에 쥘 때까지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이때 기다리는 마음은 가슴 설레는 마음이라 좋고, 걱정스러움도 있어 마음에 긴장을 놓지 않게도 되지만, 기다리는 마음은 곧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김민부 작시, 장일남 작곡인 ‘기다리는 마음’이란 가곡이 1951년에 작곡되었는데, 이 곡은 제주도의 망부석 설화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청년 하나가 바다 건너 뭍(陸地)에 도착했는데, 그곳이 지금의 목포였답니다. 청년은 제주도에 두고 온 여인이 그리워지면 목포 유달산 뒤 월출봉에 올라가서 제주도 쪽을 바라보았고, 한편 제주도에 있는 여인은 그 청년을 기다리며 매일 같이 제주도 일출봉에 올라 육지를 바라보다가 종내 望夫石이 되었다는 그런 설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작곡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월출봉에 달뜨거든 날 불러주오/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주오/기다려도 기다려도 임 오지 않고/파도 소리 물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라는 애절한 가사이지요.

 

이상의 예화들은 기다림에 대한 인간의 실존적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슬기롭고, 미련한 5 처녀의 모습이요, 현대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다림에 지쳐서 특히 한국인들은 5분 만에 한 사람씩 자살을 한다는 부끄러운 통계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상태가 빗어진 현상입니다. "그저 급히! 급히! 빨리! 빨리" 돈 벌고 싶고, 출세하고 싶고, 큰 교회로 성장해서 목회 성공했다는 소리 듣고 싶어, 그러다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지름길로 갑니다.

슬기 있는 5처녀처럼 우리는 忍從할 수 있는 신앙과 삶의 자세가 요청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승천하는 주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종내 보혜사 성령의 강림을 위해서 전혀 인종하면서 기도에 힘쓰는 아픔을 지그시 참고 기다리는 미덕의 여분(extra)이! 오늘처럼 그리울 때가 없습니다.

악성 베토벤이 음악가에게 귀가 먼 것은 절대 절명의 사건이었지만, 참고 인종하는 중에 "영웅"이란 대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유명한 말, "인종 그것은 괴로운 인생의 안내자다."라고 했듯이, 우리는 절박한 개인의 소원성취, 기대, 가까이는 주의 영이 내 마음에 임하도록 기도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확수고대(鶴首苦待)하는 인종의 내심(內心)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순결한 영혼과 마음과 몸을 정결케 하여, 가슴 열어 아로새길 말씀을 지니고서, 밤을 지새우며 품고 살리라는 심정과 세상이 칠흑같이 캄캄하고 모질고 무정해도 온몸을 갈고 갈아 眞景으로 거듭나면, 별보다 더 아름다운 등대 하나 되리라고 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4).결론: 기다림의 속성처럼, 신랑 되신 주님의 은혜는 그처럼 감미롭고 은혜롭습니다. 미련한 곰처럼 사는 생의 태도는 그만큼 그 종국은 어두운 심연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다 먹고 마시며 즐기자 하는 그 속에 깊은 단애(斷崖)가 놓여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깨어서 분별력 있는 삶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아픔의 기다림을 눈을 지그시 감고 인종합시다. 경성합시다. 주님을 기다기 위해서 여분(餘分), 남은 몫의 시공(時空)을 두자는 말입니다. 그의 영의 충만을 위해서 말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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