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15. ​삶의 감격

solomong 2025. 12. 17. 10:53

삶의 감격

(본문: 빌4;4-7)

 

1). 서론: 세계에서 자살자가 제일 많은 나라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 불치의 병자 그리고 독고노인 등등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심리적 요인, 마음의 병 때문에 야기되는 삶에 대한 포기입니다. 우리들은 이 보다 더 어려운 시대에 억척같이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좀 잘 산다는(경제성장)나라 대한민국이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무장이 해이해 졌다는 의미도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삶의 감격’을 누리는 우리나라 국민이 되었으면 합니다.

 

삶의 감격은 우리 생체내의 新陳代謝와 같은 것으로, 이것이 없음은 그것은 녹슬고 시들었다는 증상입니다. 삶의 감격은 주님의 은혜의 뿌리에서 솟아난 맑은 수맥과 같으며, 감사 눈물의 연소 작용과 같은 것입니다. 삶의 감격은 주님의 사랑이 괴로움을 익혀서, 감사의 눈물로 태어나는 온 몸의 언어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삶이란 결코 기쁨의 연속일 수 없는 엄숙한 그의 현실이지만, 고통 중에도 주님의 사랑을 받고, 또한 주님을 신앙하고 사랑하는 삶속에서 참 기쁨의 감격을 맛보란 의미에서 바울이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기쁨보다 오히려 고통이나, 고뇌를 더 많이 체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로마’ 옥중에서 죄수의 몸으로 고통 속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빌립보 교우들에게 권면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금년 한해에도 이런 삶의 감격을 느끼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특히 명절에 가족, 형제자매간의 만남 속에서 뿌듯한 삶의 감격을 느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론(Text): ①.빌4:4-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καίρω)”- 매일매일 삶의 기쁨(καρά)이 연속적으로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뭉클한 감정을 ‘감격’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세속적인 소유형태의 그 어떤 느낌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신앙적 차원에서의 감사, 평안 및 은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느낌은 가슴에서 저류하는 계속적인 신앙의 존재론적 정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②. 빌4:7- “하나님의 평강”(ἡ εἰρήνη) -平康의 사전적 낱말 풀이로서는, ‘걱정이나 탈이 없음’을 의미 합니다만, 기독자의 평강이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마음에 깃들이는 내적인 평화를 말함입니다. 이 평강은 염려의 해독제이며, 기쁨의 반려자라고 주석가들은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만, 필자는 平康이란 글자 그대로 우리 신앙 자들 <마음속에 품겨지는 평안과 육체적인 건강>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할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빌고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본문 성경말씀은 바울이 제1차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교인들에게 쓴 서신 속에서 말한 '생의 감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쓴 동기는 대략 다음 몇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전도해서 설립한 교회라는 것으로, 바울과 특별히 애정이 넘치는 관계라는 것, 특히 노구를 이끌고 전도하다가 지금 옥중에 매인 사도 바울을 극진히 생각하는 빌립보 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 대표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로마 옥중에 고생하는 바울에게 정성어린 헌금을 보내 준 것에 대한 바울의 감사의 뜻을 전달키 위해서 다시 에바브로디도를 보낸다는 것(4:10-19), 또한 그간 바울 곁에서 지성으로 돕던 에바브로디도가 득병하여 바울도, 빌립보 교인들도 열려하던 터인데, 그가 완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보냄으로 서로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2:26-30)

 

그리고 로마 옥중에 갇힌 바울 자신의 형편을 알림으로써, 빌립보 교인들이 박해 중에도 힘을 얻기 위한 것 등등의 동기이었습니다.(1:12-26) 그리하여 이 빌립보서는 전편에 흐르는 말씀의 기조는 기쁨이 넘쳐흐르는 서신이며, 바울의 옥중 서신 중에도(엡: 교회론, 골: 기독론, 몬: 사적 및 윤리적),지극히 바울의 사적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 사신(私信)이었습니다. 바울 서신에서 기독자의 일상적인 삶의 기조(基調)는 "항산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자의 생애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다가 병들어 고생해 보면 세상살이에서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건강하니 이 명절에 웃음으로 부모, 형제, 친척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흔히 명절 끝이 동기간에 얼굴을 붉히며 헤어지는 사례가 더러 있는데, 우리 기독교자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서로 살아 있어서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의 감격을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필자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격을 잃어버릴 때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우냐고 절규했던 두 분의 말들을 기억하곤 합니다. 한분은 세계 제2차대전시 독일 나치스 히들러의 손에 1945. 4. 9. 39세 일기로 독일 프로센브르그 교수대에서 순교를 당한 D. Bonhoeffer 입니다. 그가 일찍이 1939년 7월에 미국을 방문한 적이 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독재치하에 있는 그 곳을 가지 말고, 여기서 교수의 삶을 가지자고 적극적으로 만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내 사랑하는 조국의 동포는 고난 속에서 아파하는데 나 혼자 이곳에서 평안을 누릴 수 없다."고 하면서 조국 독일로 갔다고 합니다. 그가 귀국해서 순교 직전에 형무소 안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괴로워 견딜 수 없었던 그 때에도, 항상 옥중 안의 동료들에게, "나는 이런 고생 속이지만 현재 살아 있다는 이 한 가지만 생각해도 매우 기쁘다."고 했답니다.

 

다른 또 한분은 인간의 삶의 깊이를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통찰한 19C. 러시아의 작가 토스토에프스키 입니다. 그는 28세 때, 제정 러시아 황제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서, 시베리아 벌판 영하 50도 선상의 살을 녹이는 추위 속에서 총살로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형장에 사형기둥에 매여서 5분후면 그는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최후의 5분을 어떻게 쓸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2분을 지금까지 살아서 교분하고 사랑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데 쓰기로 마음을 먹었고, 또한 2분은 39년이란 짧은 생이지만 생을 정리해 보는데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분은 자기가 지금까지 뼈를 자라게 해주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준 '자연'을 둘러보는데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벌써 2분이 지났습니다. 이제 나머지 3분 후엔 죽는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하면서 전신의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사형집행자의 장탄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그 찰나에 흰 손수건을 흔들며, 말을 따고 달려오는 황제의 특사가 황제의 사면령을 가지고 와서 사형수 토스토에프스키를 사형에서 시베리아 유형 4년으로 감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났습니다.

 

그 후 토스토에프스키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괴로움에 찬 생활이라 할지라도 영하 50도 형장에서 사형기둥에 매여 있던 때를 생각하면, 살아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이라도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어찌 그만이겠습니까! 극한 상황을 맛본 자는 다 산다는 것에 감격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극한적인 조건이 아니더라도 무미건조한 일상적인 생 속에서 삶의 깊이, 의미를 긍정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이고 죽겠다.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매사 매일 뱉는 때가 많습니다만, 허나 실제로 죽음 직전에 느끼는 죽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아마 중하고 오랜 병중에서 해방된 자나, 피치 못할 죽음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놓임을 받은 자들은 만나는 사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미움도 시기도 없는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참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십자가라는 표현을 함)는 절망이요, 아픔이요, 고통이요, 슬픔이지만, 바로 앞에 부활이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우리는 잊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삶이 고달플 때마다 우리에게는 더 삶의 감격을 가져주는 때가 많습니다. 개인병원을 경영하는 어느 외과의사의 수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밤중에 병원 문을 두드리며 살려 달라는 소리를 칠 때마다,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일어설 때는 "외과를 전공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내과나 다른 급하지 않는 환자 치료하는 '과'를 택한 친구들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일어나서 환자를 수술하거나, 기타 응급상황을 치료한 후에 환자가 평안하게 되는 것을 보면, "세상에서 이 밤중에 나를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전신에 삶의 의미를 뿌듯하게 느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너무 연분홍빛 호화판의 삶을 그리지 말고, '고뇌를 통한 삶의 환희'를 맛보는 그런 삶을 금년 한해에 많이 체험하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4). 결론: 사도 바울은 빌립보 3:5. 이하에서 인간이 누릴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억세게 재수 좋은 그였습니다. 가문, 지위, 또한 학벌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고, 줄기찬 내일의 목표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부름에 부응하는 그런 삶을 바울처럼 우리도 살아 봅시다. 뭉클하게 순간마다 솟아오르는 삶의 감격을 맛보면서 사는 금년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비천에도 풍부에도 초연한 그런 삶의 감격을 느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삶의 감격이 느껴지는 이 한해가 되기를 기도하며, 노력해 봅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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