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신학이론마당(75)

71. 감동을 주는 설교

solomong 2026. 1. 28. 13:17

71. 감동을 주는 설교

1). 말소리가 회중에게 들리게 한다: 세상에서는 흔히 들려야 한다는 말의 근본 조건을 전혀 무시하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실은 말하기의 기본 조건을 제외하고 있음으로, 그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들려야 한다."는 근본 조건을 볼 때, 수준에 미달하는 경우는 어떤 때인가. 그 몇 가지는 아래와 같다. ①.음성이 지나치게 저음인 까닭에 들리지 않는 경우-지나치게 작고, 지나치게 약한 경우이다.

 

②. 음성 자체가 지나치게 낮다든가 작다든가 약하지 않으나, 음성이 전혀 불분명하여 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의 경우이다. ③.말할 때, 입속으로 우물우물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경우이다. ④.지나치게 말이 빨라 들리긴 하나, 청자에게 있어서, 이야기 줄거리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결과적으로 들리지 않는 동일한 경우이다. ⑤.음성이 지나치게 강하고, 지나치게 높고, 지나치게 커서 귀 끝에 쟁쟁 울릴 뿐, 이야기를 알아듣기 거북한 것도 흔히 있는 예로, 이것도 결과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

 

*음성문제를 거론하는 이 마당에 음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므로 겸하여 약간 언급하기로 한다. ①.정상적인 음질-보통 기분으로 말할 때의 음질이다. 원래 음성은 소위 각양각태이므로 매우 흡사한 음성도 실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친한 사이라면 전화의 음성만으로 곧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②.구강적인 음질-평온한 감정을 나타낼 때, 부드러운 기분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따듯한 애정을 나타낼 때, 아름다운 감정에 호소할 때도 사용된다.

 

한편, 심신이 괴롭고 피곤할 때, 자연스럽게 이 음성(구강적인 음질)이 나온다.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인후에도 힘들이지 않고 조금 코의 공명이 있는 어느 정도 높은 어조의 음성이다. ③.기음적인 음질-공포 또는 감격을 나타내는 ‘오오!’ ‘아아!’와 같은 때의 목소리나, 공기가 긴장한 성대를 그대로 지나 목소리라기보다 오히려 음향에 가까운 것이다. 은밀한 이야기를 할 때 이것이 잘 쓰인다. ④.반향(反響)적 음질-설교할 때, 이 음질이 가장 필요하고, 교회당이 클수록 만당의 회중에게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

 

이 음질을 내기 위해 흉강을 힘 있게 작용하는 것을 중심으로 모든 발성 기관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로는 혼신의 힘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을 지속적으로 발성하려면 상당한 훈련을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목소리가 쉬고 만다.⑤.흉부적인 음질-강열한 음질, 심심한 존경, 절망적인 낙담, 등을 나타낼 경우에 쓰인다. 반향적 음질보다 훨씬 호흡이 거칠고 성대가 긴장하여 어느 정도 기음적인 음질의 경향을 띤다. 이것은 무대 연극에서 자주 쓰이고, 설교에도 큰 감격을 나타낼 때 사용되나, 일상적 대화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음질이다. ⑥.인후적인 음질-분노 혹은 비열의 정을 내는 음질, 인후의 반향만으로 발성, 전신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긴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일종의 으르렁거리는 음질이다.

 

⑦.비강적인 음질-소위 콧소리로 여성이 즐거울 때 내는 소리, 설교할 때, 건장한 남성이 너무 콧소리를 쓰는 것은 생각할 일이다. 그러나 적당한 콧소리는 회중에게 음악적 쾌감을 준다. 일반적으로 말해 좌담에서는 그렇지 않으나, 강단에 서면 새삼스럽게 인공적 음성을 내는 사람을 때때로 본다. 이것은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런 타고난 음성으로 말해야 한다.(예: Holy Tone) 말하기는 성악이 아니다. 음성이 타고난 제 목소리가 아니면 말하는 내용도 진실하지 못한 인상을 주기 쉽다.

 

2).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말한다: 들리는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듣는 자가 알아듣지(이해) 못하면, 그 설교는 감동을 줄 수 없다. 결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나 동일하게 된다. 그러므로 알게 한다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안다’의 반대는 ‘모른다.’ 인데, 모르는 이야기를 해서는 그것이 좌담이든 설교이든 흡사 벽을 향하여 말하는 것과 같아서, 말하는 사람도 보람이 없고 듣는 사람도 싫증이 난다. 말하는 사람은 대개의 경우 스스로는 자기 이야기를 상대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므로 더욱 나쁘다.

 

그럼 알기 쉬운 이야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문제에 대하여 각자가 연구해야 하나, 일단 다음 몇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①.청자가 아는 것에 연결 지어 말한다. 청자의 지식이나 사고방식을 연구해 둔다. ②.말할 내용을 미리 잘 정리하고 충분히 말할 준비를 해 둔다.(설교준비를 원고화 한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은(Wilson, Thomas woodrow, 1856-1924) “한 시간 길이의 연설이라면 즉석에서 할 수 있다.

 

20분 정도의 것이라면 2시간 정도 준비가 필요하고, 5분간의 연설이라면 하루 정도의 준비 없이 할 수 없다.”고했다. 이것은 매우 함축성 있는 말이다. 한 시간 정도의 연설이면 처음에 반쯤 생각하며 말할 수 있다. 결국 30분쯤만 청자를 대하면 완전히 준비가 갖춰진다. 그러나 20분간 무엇인가 자기주장을 분명히 알리려면 확실히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시시한 가치 없는 이야기를 하면 20분 정도는 금시 지나므로 잡담이나 농담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5분간 열설이면 더더욱 그렇다. 시간이 짧을수록 긴요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함축성 있게 한다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③.설교의 순서를 짜는 것, 순서는 설교의 골격이다. 무엇으로 설교의 첫마디로 시작할까. 어떤 결론으로 교인들에게 그 주일의 결론으로 사고와 삶의 영향을 주는 설교를 할까. 즉, 도입, 전개, 종결을 뜻한다. 원래 설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1).성령께서 문득 이런 말씀을 전하라는 삶 속에서 아이디어를 주셨다. 설교자 자신의 의지도 동감이다.(영감과 자기의지) (2).현실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는 중에 정서. 감정적으로 우리 삶에 이런 느낌인데 이에 대해서 대단히 기쁘다, 또는 대단히 슬픈 일이다.(정서. 감정) (3).세상 사물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이렇게 살면 반드시 이런 결과가 온다. 그러니 저런 삶을 살아야 하겠다.(세상의 도리)

 

(4). 보이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말한다. 실제자료, 성경의 역사적 자료, 성경의 말씀, 등이다. (5). 어휘선택에 있어서 수사학적(아름다운 말)으로, 청자의 언어로, (그들이 너무나 잘 쓴 생활 언어) 때론 시적(詩的), 정서적 함축된 의미로, 동일한 언어는 2 번 이상 쓰지 말 것이며, 동일한 의미이지만, 다른 용어로 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