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신학이론마당(75)

68. “어두워야 길이 보인다.”

solomong 2025. 11. 19. 12:37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저물어야 비상을 시작한다.>

68. ​“어두워야 길이 보인다.”

‘밝아야 길이 보인다.'라는 것은 인간 세상 기본 이치이다. 이 명제로는 근원적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자들이 더러는 속세를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 방황하였다. 깊은 굴속에서, 살벌한 황야에서, 높은 산정에서, 수년 내지 여러 해 고뇌하며 인생의 길을 장고(長考)하였다. 공자는 천하를 철환 하였으며, 소크라테스는 끝내 아테네 시민이 주는 독배를 마시었고, 예수님은 유대 군중의 조롱 갈채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산상수훈이란 예수님의 보훈은 인간 세상 가치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시다.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린 자(목마른 자),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 마음이 깨끗한 자, 화평을 만드는 자, 옳은 것 때문에 박해를 받고, 고생하는 자가 축복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이해득실에 민감한 자들은 정신없는 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돌았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도, 주변인들이 바울에게도,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것을 모순이요, 상식에 맞지 않는 말이요, 역설(Paradox)이라고 한다. 일차원 세계에서 사는 사람에겐 당연히 얼빠진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제도(濟度)하고, 오도(悟道)하고, 각성시키고, 구원키 위해서는 인간의 기본 법칙으로는 당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역설(逆說)로 정설(定說, Definition)에 맞서서 훤한 인생길을 예수님께서는 여셨다. 이런 것을 일컬어서 ‘어두워야 길이 보인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라고 했다.

 

목사는 도시의 수도사이며, 화려한 빌딩 정글의 타잔이다. 이렇지 못하면 정설(定說)을 하늘처럼 굳게 믿고 사는 뭇 군중에게 하나도 줄 것이 없다. 그들보다 다르고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생각이 있어야, 다른 것을 달라고 찾아온다. 그들이 포식할 때, 목사는 배도 고파봐야 하고, 그들은 고대광실 속에서 하품할 때, 살집이 없어 법원 강제집행을 당해 엄동설한에 쫓김을 당해 거리로 몰려 봐야 한다. 죽은 사람과 같이 하룻밤을 지새 보아야 한다.

 

이쯤 되면, ‘어두워야 길이 보인다.' 할 수 있다. "목사님들! 삶이 얼마나 어둡습니까.”, 하지만, 어둡다고 거짓말도 해야 하고, 능청도 부리고, '‘적당히, 적당히' 살자고 하는가? 그러니 길이 보이지 않지요. 어두울 때까지 인종해야 한다. 흔한 인간 세상 방법대로 수단 부리지 말고, 극단으로 던져질 것을 각오하자. 처절히 내몰릴 때까지 인종하자. 베토벤은 그래서 "인종! 그것은 괴로운 인생의 안내자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온다. 그래야 군중이 먹을 것이 있다고 모여든다. 대충대충, 얼버무린 짜깁기 설교는 맛이 없다고 회중의 마음은 콩밭으로 간다. "어두워야 길이 보인다!”라고 하지만,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궁전 속에 사는 목사 성주님께서는 이 글을 읽지 말라. 아무런 득이 없으니 하는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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