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디아스포라의 의미
‘디아스포라’의 낱말의 뜻은 신약성서의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에서, 각지에 <흩어진 자들, diaspora>에게 보낸 서신중에서 나오는 말입니다.(약1:1,벧전1:1) 여기에 사용 된 이 디아스포라는 위의 두 구절 외에 요한복음 7:35에만 보이는 것으로, 거의 위의 두 서신의 수신자를 가리키는 감을 주고 있으나, 사실은 이스라엘 역사의 험준한 고비를 말하고 있는 이름인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단적으로 말하여 “본국을 떠나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인들”을 지칭한 것 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창12:1-4) 이렇게 시작된 이스라엘은 그대로 디아스포라의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가나안을 기업의 땅으로 허락받았으나, 그곳을 떠나 애급으로 가서 400년간의 나그네의 생활을 거치었고, 그 후 가나안으로 귀환 도중에도 40년간을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北朝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 포로생활로, 南朝 유대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 포로로, 수난의 세월을 보내었던 것이다. 갈대아 지방에 흩어진 이스라엘인들은 소위 포로 7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주전 586년), 일단 모국으로 귀환하였으나, 그 일부는 그 지방에 계속 머물러 산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알렉산더대제(주전 320년 경)와 푸톨레미 1세는 대량의 유대인들을 애급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기독교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 수는 신약시대에 와서 백만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또한 수리아의 안티오커스대제(주전 170년 경)는 약 2,000호의 유대인들을 갈대아 지방에서 부르기아, 리디아, 등 소아시아로 이동시켰다고 하며, 로마의 폼페이 장군(주전 63년)은 예루살렘에서 포로했던 수많은 유대인을 로마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은 강제적이며, 단체적인 이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상업, 기타의 목적으로 자진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갔던 것이다.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옮겨 왔던 것과는 좋은 대조라고 하겠다. 이리하여 신약시대에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는 도처에 많았다. 행2:9-11에는 이들 디아스포라의 살던 지방명이 열기되어있거니와 그중에도 소아시아지방에 유대인의 수는 더 많았던 모양이다.
금일도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산재하여 설움과 냉대를 받으면서 사는 여전한 디아스포라의 민족인 것이다. 이와 같이 디아스포라는 원래 흩어진 유대인들을 지칭했으나, 이는 점차 신령한 의미로 해석하게 되었다. 즉, 성도들이 그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떠나 세상에서 사는 생애는 임시적으로 우거하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에 관한 이런 사상의 발전은 공동서신인 야보고서신과 베드로전서에서 볼 수 있다.
즉 야고보서에서는 이를 문자적인 뜻에서 사용하는 반면, 베드로전서에는 더 신령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전자는 엄격히 유대색체로서 그 수신자가 문자대로 흩어진 유대인들인 것을 말하는 반면에, 후자의 수신자는 주로 이방인들이었다. ‘나그네’란 베드로전서의 중심사상의 하나로서, 그것은 성도들의 지상생애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보겠다. 하였튼, 디아스포라에게는 언제나 박해와 냉대가 따라 다니는 법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 성도(聖徒)들은 그 어디에 살고 있던지 간에, 우리들의 영원한 본향을 그리면서, 우리들 삶의 종말이 오는 그 순간까지, 믿음에 굳게 서면서, 동시 우리를 낳아 잔뼈가 굶게 해준 모국에 대한 감사와 한 핏줄을 이어 받은 배달민족의 긍지와 형제애로 뭉쳐서, 신앙과 성실 그리고 아름다움 및 그리움으로 점철되는 남아있는 여생이,더욱보람되고, ‘유종의 미’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생활을 하고 있는 신앙생활은 교회를 중심하여, 천국의 그림자로써, 천국에 대한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교회생활에서 천국의 복된 삶을 맛보지 못하면, 장차 천국에도 복된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살이를 하다가 주일 날이면 교회에 모이는 것을 '에클레시아'의 삶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여서 은혜를 받아서 세상으로흩어져 '에클레시아'에서 받은 은헤를 실천해야 한다.이것을 우리는 '디아스포라'의 삶이 라고 한다. 이 '에클레시아'의 삶과 '디아스포라'의 삶의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 질 때, 건전한 신앙생활이라고 하겠다. 끝.

2011년 11월 20일
山下연구소장: 양 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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