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신학이론마당(75)

69. 설교, 그 뒷이야기

solomong 2025. 12. 8. 10:11

 

설교, 그 뒷이야기

-성령의 감동과 노력만이!-

 

강의자의 인생도 점점 저물어 간다. 저녁 황혼이 붉게 진하게 물드는 것처럼, 더 붉게 더 진하게 나의 남은 인생을 보람과 의미로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한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그간 주의 종으로서 부족했지만 느끼고 경험하고 배우고 깨달은 것을 후배 목사들에게 다 전수해 주고 싶은 심정에서 ‘설교, 디자인을 어떻게 할까.’를 연속해서 강의해 왔다. 제14회를 마지막 회로 '설교이론' 연재는 끝이 난다. 계속해서 '설교 화술은 어떻게 할까'를 다룰려고 한다.

 

1). 나의 첫 목회 시집살이: 1962년 1월25일 군 생활 33개월을 마치고, 25세의 새파란 나이로 대구제일교회(통합)의 남전도회 전도사로 목회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동산동 234번지 동산으로 새 성전을 건축하여 옮겨졌고, 구 성전인 남성로 50번지 약전골목에 있는 성전은 대구시 유형문화재 30호로 보전되면서 일부 대구제일교회 교인들이 예배를 드려 왔었다.

 

그 당시 대구제일교회 상황은 담임목사(위임목사) 이상근 목사님이었고, 부목사 한 사람, 여자 전도사(교회) 한 사람, 남전도회 전도사(본인), 여전도회 여자 전도사 한 분. 이렇게 교역자는 다섯 사람이 있었다. 교인은 약 1천2백여 명이었다. 나는 교회의 허락으로 낮에는 계명대학교 철학과에 가서 공부하고 틈을 내 전도회 교인들(유고자)을 심방하는 것과, 주일에는 대구시립병원 결핵환자실을 찾아가서 설교하는 일이 중요한 사역이었다.

 

이렇게 목회를 하며 2년이 지난 후였다. 부목사님께서 독립목회로 떠나시고, 나는 전도회 전도사에서 교회 전도사가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당회장 이상근 목사님은 원래가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자주 감기와 몸살로 아프셨고, 또 서울 장로회신학교 신약학 강의를 격주로 나가신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니 새벽기도 인도는 전부 내 몫이고, 심지어는 대심방도 내가 다녀야만 했다. 제일 어려운 것이 새벽기도를 인도하는 것인데 새벽 5시, 아니면 철따라 5시 30분에 시간 맞추어 일어나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30분 정도 새벽기도회 인도에 10-15분 간단한 설교준비가 가장 힘들었다. 더군다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은 교회 중요 요직인 장로·권사들이고, 특히 신약성서 주석학자요, 신학박사이신 이상근 목사님께서 앉아계신 회중이었다. 새파란 20여세 신출내기 전도사가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일새벽 외에는 전부 내가 인도하는 새벽기도회 설교가 여간한 시집살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밤 12시까지는 일찍 자본 적이 없었다. 새벽기도회 설교준비 때문이었다. 그것도 성서 박사가 앉아 있는데서 잘못 이야기하면 그런 창피가 없다고 생각해서 조심조심 확실히 집고 넘어가는 훈련을 톡톡히 받았다. 다행히 신학교 재학 시 낮에 서점에서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아마 2-3년은 한 걸로 기억 한다. 그때 서점에서 일을 보는 동안에 세계문학 전집은 다 읽으리라 생각하고 첫날부터 읽기 시작해서 신학교 졸업 시는 정말 유명한 문학작품은 거의 읽어서, 귀중한 기회요,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세상이야기 즉, 콩고물(설교 예화) 묻히는 것은 쉬운 편이었고 글 쓰는 재미도 무척 좋았다. 성서를 읽고 신문을 읽곤(세상 이야기) 하면서(칼 바르트처럼) 성서의 밑바닥에 저류하는 교훈을 찾아내려고 생 몸살을 하였다(洞察力). 그렇게 해서 새벽 기도회를 인도했다. 교역자회나 아니면 새벽 개인 기도를 마친 후에, 어쩌다가 이 목사님과 같이 나가게 되는 날은 목사님께서 “양전도사! 오늘 새벽기도회 설교는 여기서 하기는 너무 아까우니 잘 간수해 두세요.”라면서 어깨를 두들겨 주며 격려해 주실 때, 나는 너무나 행복했고 감격했었다.

 

필자는 이렇게 목회 시집살이를 하는 중에 이따금씩 이 목사님께서 설교에 대한 강의와 내 설교에 대한 평을 자주 해주셨다. 그리고는 이 목사님께서 출타하시고 계시지 않을 때는 삼일 기도회, 주일 새벽기도회(100여 명의 재직이 나오는 때), 이 목사님께서 유고 시에는, 주일 밤 예배 설교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때는 청년회나 여전도회나 헌신예배 드릴 때, 보통 타교회의 ‘내로라’ 하는 목사님을 모시게 되는데, 그런 목사님들도 제일교회 강단에 서면 떨린다고 술회하는 그 강단에 나는 자주 서서 설교를 하게 되었고, 교인들과 이 목사님의 격려에 고달픈 줄 모르면서 설교를 배워 나갔다.

 

2). 설교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 이 목사님의 설교는 거의 본문설교였으며(신. 구약 주경학자이시니), 이 목사님은 영문학을 대학에서 전공하였기에 문학에도 조예가 깊으셨다. 본문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해석하시는 것이 아니라, 본문 말씀에 담긴 교훈을 통찰력 있게 찾아내는 데는 거의 달관(達觀)에 가까웠다. 뉴욕 ‘비브리칼’ 신학교 석사와 ‘달라스’ 신학교에서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비교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시고 대구제일교회에서 종신목사로 헌신한 생애였다.

 

내가 알고 경험한 바에 의하면, 당시 한국에서 설교에 은혜를 끼치는 목사님 하면 서울의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였다. 한 목사님의 설교는 원고보다 말씀을 직접 들어야 은혜로웠다. 당시(1965년) 나는 광나루 장로회 신학생이어서, 1부는 영락교회, 2부는 경동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렸다. 더 정직히 말하면 설교를 배우기 위함이었다. 경동교회(기장) 강원용 목사님은 ‘사회학’이 전공이셔서 인간상황(Context)에서 시작하여 언제나 복음으로(Text) 끝마치는 제목설교를 많이 해서 배울 것이 많았다.

 

그리고는 대구에서는 서문교회(합동) 이성헌 목사님이 음성도 좋고 은혜롭고, 명쾌한 논조로 설교를 잘 하셨다. 그리고 대봉교회(통합) 박맹술 목사님은 역시 소설을 많이 읽은 분이시며, 일본 구세군의 어느 주경가의 주석 책을 거의 마스터해서 웅변적이면서 대중적으로 이름난 설교가요, 부흥사였다. 그런 중에도 당시 한국에서 연세대, 이화여대 등 대학교 수양회나 신학교 수양회, 서울의 대형교회 등지에서 사경회 강사로 정평이 난 설교자는 이상근 목사님이었다. 이 목사님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쓰는 원고설교는 아니었다.

 

기도를 많이 하시고, 성서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시고, 설교원고는 지금의 A4 용지보다 조금 큰 당시 타이프 용지 앞뒤 영문으로 직접 목사님께서 타이프를 치신 것이었다. 성서에 거의 통달하시고, 요약으로 작성한 설교원고를 사전에 많이 읽으셔서 대강 보시면서 설교를 잘 하셨다. 설교시간 전에는 고요히 묵상하시며, 약30분 정도 주무신다고 하셨다.

 

그러면 정신이 맑아지고 좋다고 늘 내게 말씀하셨다. 설교할 때는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회개를 말씀한다든지 기독자의 삶을 강조한다든지, 하여튼 회중을 상대해서 설교를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느 누구를 생각하면서, 누구에게 설교한다는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이 좀 더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잘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교인 중 어느 한사람을 상대해서 설교한다고 하셨다. 한 사람의 문제는 바로 모든 사람의 문제이며, 특정인을 생각하며 설교를 하면 더욱 간절하고 모든 사람의 가슴에 와 닫게 된다고 내게 늘 말씀하셨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소설가도 소설을 쓸 때 반드시 어느 계층이나 특정인을 생각하면서 대상을 두고 쓴다고 어느 소설가가 술회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설교도 이런 대상을 분명히 하고서 설교하면 더 실존적으로 간절히 은혜를 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목사고시 때 제출할 설교를 이 목사님께 보여 드렸다. 목사님께서는 일일이 체크하면서 설교의 논조 문제를 말씀하셨다. 필자가 이 시리즈 강의 때 말했던,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그 잘못을 필자는 이때에 분명하게 잘 배웠다. 쉽게 말해서 바로 윗 문장의 화제(Theme)를 벗어나지 말고, 이어서 써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詩)에 있어서나 소설에 있어서 기(起)승(承) 전(轉)결(結)의 순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는 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고(설교에서 서론과 문제의식이 무엇인 것을 밝히는 것), ‘승’은 기와 관계 되는 문제를 한 차원 높이면서 계속한다는 것이고[설교에 있어서 본문 상황(Text)의 문제], ‘전’은 중간에 뜻을 한 번 더 심화한다는 것이고[설교에 있어서 인간상황(Context)의 문제에 대한 것], ‘결’은 끝맺음을 의미한다. 일직이 이런 설교 훈련과 스승의 가르침은 그 후 미국 유학 때 부전공으로 설교학을 공부할 때, 훨씬 빠른 이해와 도움이 되었던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3). 꼭 하고 싶은 말: 1). 먼저 성서 다독도 중요하지만, 정독하여 깊은 통찰력으로 늘 명상이 필요하며 기도에 열중해야 영력을 얻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다시 말해서 설교는 20-30분에 하는 것이지만, 훨씬 많은 시간과 계획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설교는 말씀 전달의 예술이다. 이 예술은 곧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말씀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화(化)하는 말이기에 예술이다.

 

2). 설교의 산실(産室)은 서재이다. 그곳엔 성서 외에 최소한의 3권 정도의 번역판 성서(영어)와 여러 종류의 주석, 헬라어 신약성서, 헬라어사전, 히브리어사전, 백과사전, 연감, 국어사전 등을 비치했으면 한다. 읽을 수 있는 설교의 소재가 되는 것은 모두 읽는 것이 좋다. 그리고 항상 필기도구를 챙겨서 다니는 습관을 가지기를 바란다. 언제, 어느 순간에 이야기를 듣거나 흥미진진한 사건을 접하게 될 때,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 한 순간 멋진 아이디어가 착상이 될지 모르니 생각날 때마다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런 자료를 컴퓨터에 파일로 만들어 저장해 두면 설교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3). '시대정신에 민감'하라고 권하고 싶다. 흐르는 시대의 문제의식, 사회여론을 말한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1.민주화, 2. 서민경제 살리기, 3. 남북통일에 대한 정지작업으로써 평화구축 등이다. 영화, 연극관람, 자신의 기쁨, 좌절, 희망, 의견 등에 관한 ‘일지’를 쓰는 것도 중요한 설교의 자료가 된다. 막역한 친구끼리 월요일마다 만나서 어제 주일 자신의 설교를 이야기하고 서로 강평하는 시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모에게 설교 평가를 받지 말고(절대 금물이다. 그것 때문에 서로 존경심이 사라질 수 있다.) 가까운 친구에게 평을 듣는 것이 자기 성장에 필요하다. 더 바람직하게 성장하려면, 전문가에게 자기설교에 대한교정, 평가 및 진단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4). 예화는 설교의 10%의 범위를 넘기지 말았으면 한다. 설교 제목은 관심을 끌 수 있는 창의적으로 하는 것이 좋고, 자기가 존경하고 본 받아하는 설교자의 것을 참고는 하되, 모방하지는 말고 자기 나름의 개성을 살리는 것이 좋다. 항상 자신에게 설교하고, 설교 속에 교인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며, 설교문(원고) 왼쪽에 음성 조절이나 강조할 부분에 붉은 글자로, 싸인(Sign)을 해 두는 것이 좋다.

 

첫 강단에 등단해서 3-5초 심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확신·권위와 감정을 재확인 및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론은 30초 안에 회중이 “이거 흥미 있는데, 한번 들어봐야 하겠다.”는 심리를 유발해야 한다. 30초간의 설교내용과 말할 것을 완전히 숙지해야 한다. 말만 가지고 설교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어조, 어감, 눈 표정, 손놀림, 얼굴 표정 등이 설교를 더 감동으로 이끈다.

 

5). 등단해서 시작하는 첫마디부터 나지막한 음성과 말을 천천히 하는 것도 굉장한 ‘무게’가 있어 회중은 귀를 기울이려 한다. 이런 방법은 타고난 사람이 있다. 제일 잘하셨던 분은 돌아가신 박종렬 목사님(통합측)이셨다. 심각한 표정과 더불어 인생과 성서말씀을 서서히 전개하시는 모습은 일품이셨다.

 

6). 졸고 있는 사람을 개의치 말고, 설교에 호감과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살피는 것이 좋다. 무언의 의사소통이 되는 것이다(Feedback). 설교 때 말을 실수하면 당황치 말고 유모로 시인하면서 회중을 웃기면 실수 안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박식하기도 하지만 선천적인 기지(機智), 유모와 자기 실수를 잘 넘기는 설교자들을 자주 인터넷 상의 설교에서 청취할 수 있었다. 예컨대, “장거리 여행을 했더니 피곤해서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입니다.”라는 식의 유모 같은 말이다. 평소의 그런 것을 사전에 준비했다가 대응하면 좋을 것이다.

 

7). 주일 밤 설교를 마치고 나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주일 하루 종일 설교를 비롯해서 잘한 것, 못한 것, 전부를 잊는 습관을 들이면 정신위생상 좋다고 생각한다. 능력 있는 설교자일수록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설교에 대해서 늘 책임감 있게 준비해야 할 것이고, 설교 때마다 이 영광은 하나님 때문이라는 감격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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