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수필사랑마당

19. 고난은 같이해도 성공은 같이하기 어렵다.

solomong 2025. 9. 27. 10:19

19. 고난은 같이해도 성공은 같이하기 어렵다.

 

공동체나 사회생활에서 정의를 위해 분신쇄골의 고난을 겪으며 성공해도, 성공자를 모함하고, 이간시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고난을 같이 하며 동지적 사랑으로 뭉쳤던 사람들의 배신과 음모도 일어난다. 이를 깨달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웅은 선이 크고, 하늘을 나는 듯한 영광의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은 길지가 않다. 그러기에 역사의 영웅들의 말로가 거의 비극으로 끝나곤 했다.

하여튼 인류 역사나 조그마한 한 공동체의 영웅이든 간에 문제 해결을 하고서 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는 산 교훈을 얻게 된다. 계속 영웅노릇을 하면, 그 종국은 비참해 진다는 하나의 삶의 현장에서 터득되는 진실이다. 이런 정황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고사에 나온 ‘와신상담’(臥薪嘗膽-원수를 갚기 위해 쓰라림을 스스로 맛본다는 뜻이다.)과 ‘교토사양구팽’(狡免死良狗烹-민첩한 토끼가 죽으면 좋은 개도 삶아 먹는다는 뜻이다.)의 고사가 생각난다.

때는 BC. 5 세기경이었다. 오(吳)나라 부차 왕(夫差王)과 월(越)나라 구천 왕(句踐王)이 더불어 전쟁을 해서 월나라 구천 왕이 전쟁에 패하고, 포로로 오나라에 잡혀 가게 되었다. 구천왕의 정비인 월부인과 대부 범려(范蠡)도 구천과 더불어 오나라에 잡혀 가서 석실 속에서 세월을 보내었다. 대부 범려도 석실 한 모퉁이에 기거하면서 고생을 함께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마구간을 청소하고 말여물을 썰어서 먹이는 일이었다.

 

구천과 범려는 해진 베잠방이에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마치 나무꾼 차림으로 매일같이 마구간을 청소했다. 월부인은 깁지 않은 통치마를 입고 깃이 달린 천한 저고리를 입고 물을 길었다. 오왕 부차가 거동할 때면 구천은 반드시 말 고비를 잡아야 했다. 오나라 백성들은 이러한 구천을 구경하기 위해 길거리에 몰려나오곤 했다. 이런 학대와 모욕 속에서도 세월은 흘러 2년이나 되었다. 그런데 오왕 부차가 그만 병이 들었다.

 

오나라는 술렁이기 시작했고, 부차왕의 병은 시간이 흘러도 차도가 없었다. 구천은 오나라 태재(太宰:首相) 백미에게 부탁하여 오왕 부차를 병문안할 기회를 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자(臣子)된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백미는 구천을 데리고 입궐을 하였다. 구천은 오왕 부차에게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대왕이 보신 변을 신에게 보여 주소서. 신은 지난날 의술 하는 이에게 귀동냥을 한 일이 있아온데, 변을 보면 병세를 대충 짐작하겠나이다.”라고 했다.

 

구천은 오왕의 변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혀에 대고 맛을 보았다. 그리고는 몇일 후에 병세가 호전되어 완케 될 수 있다고 아뢰었다. 과연 며칠 후에 오왕 부차의 병세가 호전되었다. 부차는 기뻐했다. 오왕 부차는 옆에 있던 백미에게 “그대는 구천처럼 과인의 변을 맛볼 수 있겠소?”하면서 구천을 무척이나 신임하였다. 월왕 구천은 이렇게 하여 방면되어 자기 조국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구천 왕이었으니 오나라에 대한 복수심은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정도였다.

 

그는 범려, 문종 등의 충신들과 밤이 깊도록 오나라를 칠 궁리를 하였다. 그러다가 졸릴 때는 송곳으로 자기 무릎을 찔렀고, 찬물에 발을 담가서 졸음을 쫓았다. 또 침상에서 편히 잠자는 일이 없었고, 장작을 깔고 그 위에서 잠을 잤다. 쓰디쓴 쓸개(膽)를 매달아놓고 수시로 그것을 핥으며 부차의 변을 혀로 맛보았던 일을 잊지 않았다. 이것이 소위 臥薪嘗膽이란 故事이다. 이렇게 하여 월나라 구천왕은 전쟁 준비를 은밀히 수 년 간하여 종내 오나라를 쳐서 그의 지난날의 한(恨)을 씻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이야기가 인간사의 야속스럽고 변화무쌍한 인심을 엿볼 수 있다. 구천왕은 자기와 더불어 오나라에 잡혀가서 갖은 고생을 같이 나눈 범려와 조국 땅에 남아서 충성을 저버리지 않았던 충신 문종을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눈치를 챈 범려는 벼슬길에서 물러나고야 말았다. 문종은 퇴궐해서 집에 와보니 범려의 일봉 서신이 있었다.

 

“지난날 오왕 부차는 말하기를 ‘영리한 토끼를 잡은 연후에는 사냥개를 삶아 먹고, 나는 새를 잡은 다음에는 활을 깊이 간수한다.’고 한 말의 뜻을 아오. 월왕 구천은 우리를 이용해서 그 뜻을 이루었으니 다음에는 우리를 시기하여 없앨 것이오. 월왕 구천의 상(相)을 보건대 목이 길어서 욕심이 많고, 참을성이 대단한 사람이오. 그러므로 그와 함께 고생을 할 수 있지만, 그와 더불어 부귀영화는 누릴 수 없으니 어서 벼슬을 버리고 월나라를 떠나도록 하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문종은 월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과연 월왕 구천은 공신들에게 포상하지 않았고, 문종은 모함을 받아 구천 왕이 주는 칼을 입에 물고 자결했던 것이다. 어찌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고사에만 있으리오! 일본제국주의 시대 때, 일본 유학 후에 아내를 저버린 그런 이야기라든지, 아내와 더불어 고생고생 사업을 시작하여 나중에 사업에 성공 후엔 조강지처(糟糠之妻)를 저버리는 사례는 지금에도 더러 있다. 그래서 “흔히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라는 변천하는 세상사 인심을 말하는 것이다.

 

조강지처(糟糠之妻)의 조(糟)는 ‘술지게미’를 뜻하고, 강(糠)은 ‘쌀겨’를 뜻한다. 이와 같이 거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온갖 고생을 함께한 아내란 뜻이다. 아무리 인간사 인정이 이런 종류가 있다고 해도, 의리를 저버리지 말고, 변함없는 훈훈하고 끈끈한 정만은 ‘불하당’(不下堂-몹시 소중하여 버리지 못하고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의 의리와 정이 우리네 인간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칸트는 그의 정언명법의 실천원리 두 번째로, “네 자신의 경우나 또 다른 경우에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동하라.”는 목적의 원리를 강조했다. 동서양의 이런 위대한 교훈이 오늘의 산업 정보 사회로 인한 비인간화가 되어 가는 이 매정한 사회에 하나의 경종이 되었으면 한다. 끝.

2023. 1. 2.

山下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