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수필사랑마당

17. “사랑하는 내 祖國의 山河여!”

solomong 2025. 8. 15. 11:06

 

 

 

17. ​“사랑하는 내 祖國의 山河여!”

 

국정농단(國政壟斷) 사태로 어수선하고 을씨년스러운 성탄절과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즈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시던 그 조국애가 내 가슴 한 쪽에서 뭉클하게 솟아나면서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 그러면서 이럴수록 내 가슴 다른 편에서는 “사랑하는 조국의 산하여!” 라는 애국심의 발로로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게도 하였다. 돌이켜 보건데 40 여 년 전 미국 유학길에 올라서, 석사 학위 과정을 California주, Berkeley에서 마치자, 마침 Florida주, Miami 한인교회에서 초청이 와서 몇 달 동안 목회를 한 적이 있었다.

 

기후 좋고 풍경 좋은 명승지에 가족을 데리고 와서 미국에서 같이 살자고 유혹하는 교인들의 소리가 점점 많아 질 때, 나는 일생일대의 대 결단을 해야만 했다. 그 당시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살기가 어렵고, 미국 유학도 모두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 LA.에 도착하여 미국의 ‘쇼핑마트’에 들렸을 때, 휘황찬란한 분위기(현재 우리나라 쇼핑마트처럼)에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미국에 살고 싶은 생각이 소록소록 내 마음에 피어올라, 공부고 뭐고 다 치우고 가족을 초청하여 미국에서 살고 싶었다. 사실 그 당시 한국 유학생들 중, 특히 많은 목사들이 미국에 주저앉아 한인교회를 세우거나, 초청되어 영주권을 받아서 사는 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공부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조국의 산하를 더 아름답게 해야겠다는 고집에 그 좋은 조건들을 다 뿌리치고 귀국했고, 두 번째로 다시 유학하여 마지막 학위과정을 마치고, 신학교와 대학 교수생활을 영위했었다. 교수생활도 잠잠히 가르쳤으면 속칭 행복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공의(公義)와 사회 정의(正義)를 가르치는 교수가 눈앞의 불의와 1971년 박정희 군사정부에 아부하여 대학 사유화(私有化)한 것을 그냥 볼 수가 없어서, ‘계명대학교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한 단식투쟁으로 1999년에, 결국 정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징계파면 되어, 수년간 고달픈 법정투쟁으로 살아온 그간 만년의 삶이었다. 집도 절도 없어서, 그 동안 친구 시골집에서 살아 온지도 벌써 10여년이 가까이 되었다.

 

이런 시점에 비극적인 ‘국정농단’사태가 야기 되어,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 꼴이 이만 저만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간에 수백만 국민의 촛불시위로, 위대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성숙된 국민의식에 빛나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쓰게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조국의 문명(文明)과 문화(文化)가 불균형이 된, 이질적(異質的)인 성장 앞에 놓인 한 가닥 시련이라고 사료된다. 이제 이를 극복하여 차원 높은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이룩하고, 특히 그 아버지의 군사문화를 이어 받아 국정농단을 야기시킨 박대통령의 모든 잔재를 맑게 청산하여, 찬연(燦然)한 문화의 꽃을 피울 도약의 발판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가슴엔 “사랑하는 내 조국의 산하여!” 라는 함성이 터져 나오게 되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애국심의 함성이 터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 인생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고 하지만, 조국의 산하가 이렇게 잔뼈가 굵도록 자라나게 해 준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애국자 '김구' 선생님은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고사성어를 삶의 좌우명으로 했다고 한다. “물을 마실 때 그물이 어디서 왔는지 근원을 생각하자.”는 뜻으로, 오늘의 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바로 그 뿌리는 조국의 산하이다.

 

그렇기에 자기 조국의 산물(産物)을 먹으면 생기(生氣)가 활발해 진다고 한다. 그래서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하는 모양이다. 중국 삼국지(三國志)를 보면, 위나라 조조가 100만 대군으로 적진지를 점령했지만, 병사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는데, 당대의 명의(名醫)인 ‘화타’에게 물어 본 결과, 풍토병이라 하였다. 대책을 물은 즉, 고향 땅에 가서 흙을 파다가 냄새를 맡게 하고, 흙을 지니고 다니면 될 것이라 하여 그렇게 하니, 거뜬해졌다는 대목이 있다.

 

옛날엔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갈 때, 조국 땅의 흙을 주머니에 한줌 넣어 가지고 가다가, 배 멀미가 나면 흙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다. 음악가 쇼팽을 우리는 ‘피아노의 시인’ 이라고 하지만, 쇼팽은 39년의 짧은 인생 동안 그는 작곡과 연주회에 전념한 정열의 음악가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러시아가 쇼팽의 조국인 ‘폴란드’를 침공한 후에, 프랑스 파리로 망명을 가서, 연주회로 번 돈을 모두 조국을 위해 싸우는 독립 운동가들의 지하자금으로 송금한 위대한 애국자이기도 했다.

 

이처럼 폴란드를 사랑했던 쇼팽은 파리로 떠나올 때(1830년, 20세), 조국의 흙 한 줌을 소중히 싸가지고 왔다고 한다. 쇼팽이 숨을 거두자 조국의 한줌 흙은 그의 시신 위아래에 뿌려졌고, 그의 묘비에는 “여기 파리 하늘 아래 그대가 잠들고 있으나, 그대는 영원히 조국 폴란드의 땅 위에서 잠들어 있노라.” 라는 비문이 새겨 졌다. 이 비문을 읽다보면 쇼팽의 사랑하는 조국의 산하를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그는 현재 프랑스 파리의 애국지사나 공이 큰 예술가들이 묻히는 ‘페르라셰즈’의 아름다운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쇼팽이 ‘즉흥환상곡’을 그렇게 아껴서 유작으로 남기게 하듯이, 조국의 흙 한줌을 20년간 간직하였다가, 그가 죽은 후에 자신의 무덤에까지 뿌려졌다고 한다. 즉흥환상곡이 쇼팽을 빛나게 했다면, 흙 한줌은 쇼팽이 조국을 사랑했다는 것이 된다. 우리는 그가 예술가 이전에, 그의 인간됨됨이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청각을 통해 가슴 속에 감지되어 영원한 잔상을 남기는 예술이다. 쇼팽의 <즉흥 환상곡>과 <흙 한줌>은 이처럼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심금을 울리고 있다.

 

자! 이런 조국강산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차제에 모든 부정부패, 거짓과 가짜는 죄다 청산되고, 오직 참과 진실만이 통하는 우리 조국의 산하가 되었으면 한다. 기독교 사회윤리학자 R. Niebuhr의 이론처럼, 개인은 도덕적이고, 집단은 비도덕하다고 했지만, 우리 조국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집단 이기주의를 초월하여 깨끗해 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Niebuhr는 집단이 정의로워 지기위해서는 그 집단을 견제하는 다른 집단의 힘이 있어야 균형이 바로잡혀 진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국민의 힘이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를 척결하는 정의의 파수꾼이 계속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필자가 바라는 ‘사랑하는 조국의 산하’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오! 사랑하는 내 조국의 산하여!” 끝.

 

 

2016. 12. 27.

山下 연구원장: 양 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