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수필사랑마당

14. 일기장에 엉킨 사연(회고록에서 옮긴 글)

solomong 2025. 6. 16. 12:17

14. 일기장에 엉킨 사연(회고록에서 옮긴 글)

 

대구 제일교회에서 전도사. 강도사(설교사) 5년의 경험을 쌓고, 나는 한국의 8활이 농촌인데 농촌을 모르고서는 한국을 알 수 없다는 뜻에서, 시골목회 2년간의 경험을 쌓았다. 조용한 시골에서 목회를 하면서 미국 유학의 꿈을 키우면서 영어공부에 매진하였다. 거기서 지금의 경안노회로 흡수된 ‘경중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때 내 나이 32세였다. 그리고는 다시 대구 선교학교인 신명여고(S. M.) 교목으로 1969년에 부임하였다.

 

선배 교목으로 두 분이 계셨지만, 나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과 일주일에 한 차례 ‘채플’예배 설교를 하는 것으로 내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심리학(상담학)책들도 읽어가면서 상담을 통한 선교전략을 내 나름대로 세워서 활동하였다. 이 일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신 K교감 선생님(아마 지금은 교장직책을 마감하고 은퇴 중이라고 짐작됨.))의 은혜는 고마울 수가 없다. 카운셀러 선생님으로 여선생님이 한분 계셨지만, 공식적으로 교목인 나를 상담교사의 임무까지 맡게 하였다.

 

한창 32세의 의욕이 넘친 나이에, 나는 신뢰감과 친절함으로 저들을 대하는데 최선을 다 하였다. 어떨 때는 점심시간에 교실을 돌면서 저들의 점심도 빼앗아(?)먹고 때로는 빵도 사달라고 했다.(인간관계가 좋게 되고, 대화가 잘 될 수 있는 여건이 서로 간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가 가장 좋은 상황이란 이론을 응용 해본 것이다.) 성경공부 시간이나 설교시간에 말할 주제를 이런 접근에서 힌트를 얻게 되고, 저들의 현재 고민이 무엇이며 심리상태가 어떤지를 숙지하여 거기에 맞게 가르치고 설교하였다.

 

이렇게 노력하였더니, 나에 대한 신뢰와 인기(?)는 참으로 좋은 편이었다. 교목실로 상담하러 오는 학생들의 수가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저들에 대한 나의 심장으로 접근하였고, 저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면서 지성(至誠)으로 저들과 대화하고 저들의 고민의 몫을 함께 나누었다. 이렇게 해 보니 나의 선교전략이 적중한 것 같았다. 다시 말해서 구수한 인간 냄새가 나는 진솔한 중에, 인간과인간이 ‘참 만남’(Encounter)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아주 효과적이었다. 나는 저들의 문제를 진정으로 걱정해 주었고, 저들은 나를 진정으로 신뢰해 주었다. 나는 이런 교목생활에서 큰 보람을 느끼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고등학생 1학년이 교목실을 찾아와서 자기 일기장을 전부 주면서 읽어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일기장은 자기 혼자만이 비밀로 쓰는 ‘마음의 거울’인데, 이것을 전부 나에게 보라고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여간한 신뢰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 학생이 주고 간 일기장은 간간이 예쁜 소녀가 긴 드레스를 입은 그림을 그린 것과, 단풍잎과 은행잎이 일기장속에 끼어 있었다.

 

나는 그 일기장을 읽는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진 것을 발견 할 수가 있었다.(이 이야기는 벌써 40 여 년 전에 일이기에 이젠 공개해도 좋다고 판단되어 요점만 공개한다. 그 여학생은 지금쯤은 50대의 여인이 되었을 것이고,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 어디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목사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좋아요, 좋다기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양 견 목사 선생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좀 당황도 하였다.

 

사춘기 소녀에게 있어 첫 사랑의 대상이 배우, 가수, 교장, 목사,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국의 여류 심리학자 E. M. Duvall 박사(그녀의 저서 "Love and Facts of Life",N. Y. Association Press, 1970, pp.62-63.)는 말하고 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들의 눈엔 자기들 ‘또래’는 ‘어린 아이’ 같이 보이기에, 성숙한 기혼자들을 연모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 학생의 경우도 자기 일기장 속에 자기의 느낌을 간접적으로 그려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대구 시내 모 여고 어떤 선생님이 이런 종류의 편지를 받고, 그 여학생을 불러서 심히 꾸중한 결과, 그 여학생은 그날 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여학생의 감정에 끌려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담하지도 않았다. 한 주일 후 그 학생이 찾아와서 “일기장을 다 보았느냐?”고 하면서 교목실을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예쁜 소녀의 그림도 잘 그렸고, 글씨도 예쁘게 썼고, 문장 솜씨도 아주 좋다.”고 하면서 그 일기장을 주면서, “또 써서 보여 주고 싶으면 또 가지고 오너라.”고 하면서 주었다. 이렇게 하여 1년 가까이 일기장을 가지고 오고, 또 보곤 하였다. 물론 나는 그 여학생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단지 “일기를 느낌대로 잘 썼다.“고만 칭찬하였다. 지금 같으면, 아마 이런 종류의 학생들을 ‘오빠 부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때를 소위 사춘기 남녀에게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의 하나로서 강한 이성의식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감정은 이 보다 훨씬 이전의 유아기(幼兒期)부터 싹터 왔다고 하겠다. 사춘기를 지난 고교생을 중심으로 이성의식 발달 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단계는, 이성끼리 서로 혐오하는 하는 시기가 있다.(Sex Aversion; 6세-12세) 이 시기는 초등학교 시절에서 나타나는 증상인데, 이성간의 대항의식이 심하며, 동성끼리 사귀기를 좋아하는 시기를 말한다.

 

둘째단계는, 성적 애착 시기라고 하는데(Crush;14세-15세),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이성의 연장자에게 애착을 느끼는 시기이다. 주로 인기 있는 연예계의 배우, 가수, 스포츠맨 등이 정서적 접촉의 대상으로서 선택된다. 일종의 어린 시절에 성적 도착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어린 시절에 부모 사랑이 결핍된 중고생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셋째단계는, 이성애 단계라고 하는데, 이 단계는 또 세 단계로 세분할 수 있다. ‘송아지 사랑’(Calf Love;15세-16세)이란 단계가 있는데, 특히 여학생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위에서 Duvall박사 이론을 잠시 언급한바 있지만, 자기들 ‘또래’를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미숙하고 연장자에 대한 사모의 감정을 갖는다. ‘엄마 소’의 뒤를 따르면서 ‘음매~!’하는 송아지를 연상 해 볼 수 있다. 그 다음 ‘강아지 사랑’(Puppy Love;16세-18세)이란 것은 자기가 좀 더 성장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되어 연장자에 대해서는 점차적으로 흥미를 잃게 된다.

 

그래서 같은 연령의 이성에 대한 애정의 싹이 트게 된다. 마지막으로, ‘연애’시기(Romantic Love;19세-20세 이상)란 대학 시기를 말한다. 하록크 교수는 이성애에 대한 관심과 태도의 발달은 위에서 열거한 각 단계를 거쳐서, 개인에 따라서는 각 단계가 좀 일찍 오기도 하고, 또 다소 늦게 오는 수도 있으나, 정상적인 사람이면 모두 이러한 과정을 밟게 된다고 하였다. 내게 일기장을 1년 가까이 가져온 그 여학생은 성적 애착을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을 말하며, ‘송아지 사랑’ 단계까지 이런 연장자에 대한 감정을 갖게 된다.

 

혹 이들 중에는 감질나게 부모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 이런 것은 이성적 애정에 대상이라기보다 일종의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포근한 연장자나 기혼 남성에게 돌리는 것은 일종의 ‘대용품 아버지’이라고 한다. 나는 ‘대용품 아버지’ 노릇을 해서 1년 가까이 인간적 사랑을 너무 강하지도, 그렇다고 냉담하게 대하지 않고 적당히 주어서 자기 인생의 길로 인도했다. 지금도 그 옛날의 이 여학생의 생각만 하면 뿌듯한 보람과 감격스러운 삶의 의미가 재연되는 뜻한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런데 내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신학교수로 있을 때, 우연히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그 여학생(성인이 된 여인)을 만났다. “선생님! 그때는 너무 철부지였지요.”하면서, “그때 선생님께서 저를 잘 지도 해 주어서 지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서 “선생님! 고맙고 반가운 해후에 그냥 지날 수 없으니,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허락 하시겠습니까.”라고 제안을 했다. 나는 눈치를 보니까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뜻한 인상을 보고 뿌리칠 수가 없어서, 다방에 들어가서 “남편이라도 알면 혹 오해나 사지 않겠느냐.”고 웃으면서 말했더니,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걸요!”라고 명랑한 대답을 했다. 차 한 잔 대접 받고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