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무언의 기다림]의 명상
절벽 사이에 한 그루 해당화
누구에게 꺾일세라 온몸에 가시로 드리우고
황홀한 향기로 외로운 나그네 발길을 멈추네.
실바람에 꺾일 것 같은 가냘픈 몸매
누구에게도 꺾기지 아니 하려고
가시로 도도함을 지키네.
만인의 사랑을 받기 위함인가?
그 누구에게도 소유됨을 싫어함이던가
날카로운 절벽 사이에 홀로 핀 한 그루 해당화.
벗도 동반자도 없이 긴긴 세월에 휘어져 가는 허리
그러한 자신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언젠가 올 임을 맞기 위해 꽃봉오리 맺는구나!
위의 작자 미상의 "무언의 기다림"이란 한편의 詩가 필자의 마음에 와서 닿는 것이 있기에, 오늘은 여기 이 시를 중심 해서 수상(隨想)을 써볼까 한다.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써보고 싶다. 이 시의 대주제는 주님의 은총을 고대하는 어느 절개 있는 신앙자의 고고함을 그린 아름다운 詩라고 해도 좋고, 인간 세상에 있어서 어떤 지조나 정조가 있는 사람이 사랑의 대상이 되는 어떤 가치관이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절개를 읊조린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제1 연에 보면, “절벽 사이에 한그루 해당화”라면,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고, 그것도 <한 그루>라면 퍽 고독한 실존 임에는 틀림이 없다. 먼저 <고독>에 대해서 명상해 보자. 목회자나 일반 기독 신자들은 대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 삶이라는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외로움을 피하려고 친구들이 모여서 세상 잡된 수다를 떨기보다는, 오히려 고독이 가장 성서 말씀 연구와 목회의 지혜를 얻는 것이나, 신앙적 반성이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자나 기독 신자들은 세상 풍조에 늘 짝할 수 없기에 항상 외로움이 따르지만, 그 고독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달갑지 않은 어둠 같지만, 고독에 익숙해지면 미처 볼 수 없던 은밀한 사물의 존재나 성서의 깊숙한 내면에 파묻힌 진리를 캐는 통찰력이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특히 목회자에겐 이런 고독한 실존 속에서 사색의 실마리가 풀리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독한 실존 속에서 사색의 분위기는 서재(書齋)에 조용하고 애잔한 음악이 흐르면 더욱 좋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컴퓨터에 스피커를 여러 개 달면 값싸게 스테레오로 좋은 음악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찬송가나 가스펠 송이면 더욱 좋으나, 클래식의 바이올린이나 첼로 협주곡 같은 것이나, 집시음악, 우리나라 국악 중, 특히 김성아 국악인이 부르는 한이 서린 가락(떨어지는 잎새, 밤길)이나, 김란영 가수의 카페 음악(가인), 김진영(사랑의 기도), 남화용(홀로 가는 길) 유익종(이연)씨 등이 부르는 가슴 시린 팝송도 좋다고 생각한다. 외로움(loneliness)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홀로움(solitude) 속으로, 스스로 몰두하면 외로움은 극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홀로움은 달곰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 홀로>가 아니라, 주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다음, “누구에게 꺾일세라 온몸에 가시로 드리우고”, 세상의 수없이 많은 유혹이 기독 신자들을 순간순간마다 괴롭히고 있다. 그 유혹에 꺾이지 않고 지조(志操) 있는 무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해당화나 장미는 가시가 있어서 자기 아름다움과 향기의 절개를 계속 지탱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게 하는 무기가 무엇인지 필자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신앙자들은 알 것이다. 우리 개개 자연인은 연약하다. 그러나 갈대는 약하지만, 생각하는 갈대는 강한 법이다. 임마누엘(Immanuel) 하신 주님의 영이 같이 하시면 우리는 담대할 수 있다.

마지막 제4 연의, “긴긴 세월에 휘어져 가는 허리”는 인종(忍從)의 시공(時空)을 말하고 있다. 정말 침묵의 기다림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기독 신자의 개인적, 공교회 및 사회적 진전이나 저마다의 가냘픈 소망을 기다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런 희망이 존재해야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독일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에 의하면, "과거는 현재에 의해서 회상(remembrance)으로서의 현재를 해석해야 하고, 미래의 소망은 현재에 다가와서 도전 해옴으로써 역사와 개인 생(生)의 현재를 해석할 수 있다.”라고 했다.
눈보라가 치고 때로는 칼바람이 불어오는 이 을씨년스러운 추운 날씨에, 주님의 가신 그 길을 뒤 따르는 기독 신자들이여! 주님 홀로 40주야 사탄의 시험에 고투하신 것과 철없는 제자들, 교활한 바리새인들을 떠나, 홀로 산에 가서 아버지 하나님과 대화하시던 그 주님의 모습을 그려보자. “바라바는 놓아주고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뭇 군중의 아우성도 들어보자.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상 돌아가는 형편도 모르고, 잠에 취한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해 보자.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 뜻대로 마시고 주님의 뜻을 따르겠으니, 말씀하소서!”라고 기도하자.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목회에 성공이든 미미하든) “이를 위해 이때 제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주님의 최후를 생각하면서, 고독해도, 고통스러워도, 배고파도 언젠가 은총을 가지고 오실 그 임을 고대하면서 목회하며, 신앙의 삶을 살아가자! 끝.
2022. 11. 9. 재수정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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