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만추(晩秋)에 쓰는 인생론
*이 글은 1993년 11월 11일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일어나서 소슬한 늦가을 바람이 부는 사색의 계절에, 나의 강의 수강자들을 위해서 쓴 글이다. 주로 ‘인간학’을 가르칠 때, Group Therapy적인 의미로 읽어 주었는데, 많은 격려와 감동을 받았는지 글을 복사하고 싶다고 원고를 청하였다. 그래서 나의 저서 "되어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서울: 생능출판사, 1996년3월 1일 발행, PP. 190-195 에 기재됨)에 싣기로 약속하고, 일일이 원고를 주지 않았다. 약속대로 나의 저서에 실은 것을 여기에 다시 문체를 고쳐서 실은 것이다.
1). 죽음에 이르지 않는 병
1945년 해방 직후, 말라리아 병이(모기로 전염되는 것) 농촌 마을엔 환경적 요인으로 자주 찾아왔다. 열이 40도 전후를 넘나들고, 그럴 때면 헛소리를 하고,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삶이 가물가물해 질 때도 있었다. 어머니는 옆에 앉아서 이마에 물수건으로 이마의 열을 식히면서, 너무나 애석해서 그런지 “차라리 내가 아프고, 네가 나았으면 좋겠다.”는 음성이 가물거리는 중에 들려 왔다. 아무리 모성애적 사랑이라고 하나, 그러나 어머니가 나의 「병」을 대신 아파 줄 수는 없다. 병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다 그렇다. 내 인생을 내가 살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의 인생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오래 갈 수는 없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젊은 당신네들, 앞길이 양양하고, 희망에 벅찬, 미래에 대한 아롱진 꿈속에 현재를 사는 그대들이여! 필자가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너무 쉬운 길로만 가지 말고, 고난과 도전에 항거할 줄 아는 젊은이,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심신을 가진 젊은이, 승리에 겸허하고, 패배한 자에 대한 가긍히 여길 줄 아는 젊은이, 남을 지배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세상 이치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알기를 바란다. 한 밤중 열이 38-39도 사이를 오르내릴 때, 흰 사기그릇 사발에 가득히 떠다 주는 그 찬물 맛, 요사이 펩시콜라, 코카콜라에 길들인 당신네들은 혹여 그 맛을 모를지 몰라도, 찬물 맛은 바로 이럴 때가 제 맛이지, 무슨 말인가? 인생의 고개 언덕이 고달프고 인생의 고(苦)를 통해서 비로소 「철」이 들기 시작하고, 그럴 때 인생은 참으로 살맛이 나는 것이다.
미국의 단편 소설 작가 O. Henry의 「마지막 잎새」속에서, 주인공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강인한 정신력 하나로 그 투병에서 이겨낸 이야기쯤은 읽고 들어서 알겠지만. 그 담쟁이덩굴 한 잎은 한 인간 실존의 최후의 희망을 상징이기도 하다. 죤시라는 처녀가 폐렴에 걸려 살 소망이 전혀 없을 때, 병실 창밖의 담쟁이덩굴을 세어 보면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긴장감이 감도는 이야기 말이다.
찬바람에 몇 개 남지 않는 날, 저 잎이 다 떨어지면 그녀의 인생은 종지부를 찍게 되는 그녀, 그러나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노인 화가에게 부탁해서 벽의 담쟁이덩굴 한 잎을 그려 달라고 해서 죽어 가는 친구를 살려낸 이야기 말이다. 그 날 밤 그 비를 맞으며 한 생명의 소생의 환희를 남기고 노인 화가는 그 위대한 걸작 품을 남기고 자기를 초월한 그 결단 말이다.
그 노인의 그 결단은 참으로 어렵고, 장한 것이었지! 지금 당신네들, 가슴엔 다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에 심장의 고동 소리가 박동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당신네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노인 화가처럼 자기를 초월한(Self-Transcendence)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초점인 것이다. V. Frankl이 말하는바, <각자는 변경 할 수 없는 숙명이 저마다 있지만>, 마음의 결단과 태도를 스스로 바꾸는 것이 <죽지 않을 병에서 해방을 받는 길>이란 것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인류 역사상, 모든 위대한 예술, 문학작품, 사상들은 모두가 이런 인물들이 생의 한 가운데서 자기를 초월한 경지에서 나온 작품이요, 사상인 것이다.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일수록, 사실로 그 삶은 비참할 정도로의 고통이 따르고, 고뇌의 연속이지만, 고뇌를 통한 환희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천재 화가 반. 고호는 하나의 「진실」을 찾기 위해 정신이 미칠 정도로 몸부림쳤다.
베토벤은 점점 귀가 멀어 갈 즈음 그의 말년에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저 유명한 「Heiligenstadt」 자살 시도 후, 나온 symphony No. 3. 「영웅」이란 것이 탄생되었다.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28세 때에 반역죄로 연루되어 시베리아 영하 50도 선상에서 형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황제의 특사 령을 받고 살아났다.
그 후 그때를 생각하며 쓴 그의 고백은, “현재 내 인생이 아무리 고달프고, 괴롭더라도, 시베리아 영하 50도의 추운 날씨 속에서 형장의 기둥에 매달렸던 그때를 생각한다면, 지금 살아 있는 이 한가지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했다. 내일의 이 나라의 주역이 될 그대들이여! 「돌아 갈 수 없기에 추억」은 아름답고, 때로는 답답하다 못해 가슴이 아리도록 그리움이 베어 나는 것이지만, 평범 속에 진실을 늘 새로운 눈으로 인생의 의미를 감지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바이다.
2). 미워도 내 사랑, 못나도 내 사랑, 어허 둥둥!
사춘기 시절 저마다 얼굴이나 성격이나, 가정환경 때문에 심한 열등감을 느껴 보지 않은 이 없으리라고 본다. 이상적으로 꿈꾸는 자화상은 천재적인 두뇌에, 세기적(世紀的)인 미인이어야 하는데, 실상은 거울 속에 비춰진 자화상을 보았을 때, 어느 대학을 가야 하느냐고 야단일 때, 그 초라한 형색에 자신을 얼마나 비하시켰던 그대를 지금도 잊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일이지”, 지금도 그 응어리가 남아서 이 다금씩 습관처럼 내뱉는 한(恨)의 소리, 기찬 미인이 못될 바엔 차라리 박색이, 석두(石頭)가, 오히려 매력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역설의 용기는 왜 없는지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삶의 성실성이 그 만큼 자기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진리를, 결심한 만큼, 노력한 만큼, 행복하다는 것을 삶에서 체험해 보기를 바란다.
삶은 그 마음속에 열정이 불타고 있는 한, 행복하고 삶은 그 가슴에 순정이 스며있는 한, 의미 있는 이상의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 갈 수가 있다. “꿈을 먹고 사는 자는 당장에 청운에 오르는 법은 없고, 인생은 ‘월트 휘트만’의 시처럼, 인간 본질적 여건의 양면을 고정시켜 대립시킬 것이 아니라, ‘에밀리 디킨스’의 시처럼 인간의 유한성에서 무한한 가능성의 모습을 보잔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용기는 비겁하지 않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에 있다.
비굴함이 없이 씩씩하게 살길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고귀한 용기 이다.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기에, 혹여 삶의 체험이 부족하기에 실수와 실패의 경험을 좀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타인은 다 행복한 것 같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나만이 유독 고독하고, 고통스런 밤을 지새워야 한단 말인가. 하면서 한탄이 아직도 있다면 다음의 말을 명심해 보길 바란다.
「그러기에 행복은 인생에 있어서의, 그 다음의 일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삶이나, 인생에서의 성공 지향적인 목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생활의 하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V. E. Frankl이 말한 대로, 자기 능력 내에서, 자기 분수 안에서, 자기 실현화로만, 만족하지 말고, 자기 초월의-직업을 통해서, 어떤 가치 있는 일을 경험함으로써, 사랑을 통해서 고통(Suffering)을 통해서 자기능력과 분수의 범위 안에서 의미 있는 추구를 할 때, 가장 뿌듯한 삶의 감격을 느껴보길 바란다.
이 글을 끝맺으면서, 이제 이 만추의 낙엽을 밟으며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나라엔 왜 그리 「잘난 사람」, 「재주 좋은 사람」들이 많은지, 하기야 다 저 잘난 맛에 살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너무 잘나고, 너무 재주가 좋아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다는 것도 한 번 생각 해 봄직도 하다.
올 가을엔 웬일인지 자꾸만 이런 생각이 온몸에 베어 오니, 아마 그 잘난 사람들의 정체가 폭로되어서 그런지, 그만큼 잘난 사람들의 수렁에 시달려, 이제 겨우 잠이 깬 모양인지, 부정 축재자 돈의 액수가 상상도 할 수 없어, 어느 은행 잡지에서 실감이 나도록 계산된 경우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은행 돈 계산기에 넣어서, 카운터 했을 때, 24시간 계속 카운터 해서 6개월 동안 작동해서 총액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을 읽고, 해도 너무 했다는 감을 느껴 보았다.
길거리의 라디오 방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노래 소리는,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처럼 우린 못나서 그러니 못난 대로 분수대로 살자고 하기엔 너무나 허전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재주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데,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젠 늦은 가을이다. 저자의 인생도 가을에 접어들었고, 여러분은 저마다의 성실히 노력한 만큼, 결실한 대로, 그 열매가 소중하다는 것을 자랑했으면 한다.
현실은 우리를 너무나 화나게 하고 너무나 절실한 실감을 주지만, 너무 오래 그 좌절의 늪에 빠져 있지 말고 헤어났으면 한다. 저마다의 가진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실로 부끄러웠던, 그 욕망의 계절을 반성하면서, 후회하면서, 사죄하면서, 감사하면서, 저마다 내면의 세계의 개척과 그 확장의 길로,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 분투노력했으면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끝.
'07. 수필사랑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 [칼럼]:어허둥둥 내 사랑 (0) | 2025.10.29 |
|---|---|
| 19. 고난은 같이해도 성공은 같이하기 어렵다. (0) | 2025.09.27 |
| 17. “사랑하는 내 祖國의 山河여!” (4) | 2025.08.15 |
| 15. 고뇌를 통한 생의 환희, 찬물 맛을 아는가? (1) | 2025.06.23 |
| 14. 일기장에 엉킨 사연(회고록에서 옮긴 글) (4) | 2025.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