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92. 그리스도의 遺言書

solomong 2025. 8. 23. 09:33

92. 그리스도의 遺言書

(본문: 요14:-17:)

 

1. 서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과 함께 한 지상의 사역 3년을 마치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을 모으시고 유언 설교를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말씀하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의미 있는 말씀을 남기시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인 요한복음 14~16장에서는 더욱 중요하고도 귀한 설교를 제자들에게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고별설교, 곧 유언 설교였습니다.

 

누구든지 유언은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말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유언은 어떤 것보다도 진지하고 진실한 것을 남깁니다. 아무리 거짓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엄숙한 죽음을 앞두고는 진실한 것을 남기게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많은 설교가 중요하고 우리에게는 생명이 되지만, 특히 요한복음 14장에서부터 17장까지의 다락방 강화, 감람산 가는 길가의 강화 및 대제사장으로써의 기도의 遺言書는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교훈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2. 본론(Text) : ①. 14장:15-보혜사(παράκλητον)-성령은 신자의 <보호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분의 보호자가 계시니, 한분은 하늘에 계시고, 다른 한분은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즉,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요,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십니다.

 

②. 14:27- “평안(εἰρήνη)함을 너희에게 끼치노니.......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여기에 유대인들이 보통 작별 인사로 <Shalom>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께서는 보통 인사에다가 깊은 뜻과 약속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을 대조하시면서, 세상이 주는 평안은 피상적,일시적 및 상대적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중심적, 항구적 및 절대적이란 것입니다. 이는 영원한 구원을 확보함에서 오는 양심의 평안이며(롬8:1) 하나님과 화목함에서(롬5:1) 오는 항구적인 평안이며, 그리고 부단히 하나님의 사랑에서 공급 받는 평안이란 것입니다.(롬5:5) 이 평안은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고, 그리고 그 어떤 세상의 환경도 빼앗아 가지 못할 절대적인 평인이란 것입니다.

 

③. 15:4-거한다.( μὲνω)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생명적 관계를 표시하는 뜻으로 사도 요한의 애용어의 하나입니다.(6:56 참조)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지 아니하면, 과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열매란 것도 신앙을 떠난 천성적으로나 수양으로 되는 선한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참된 열매란 그리스도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힘입어야만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성령의 열매로 열거된 9가지 열매(갈5:22)와 같은 것입니다.

 

④. 15:13-친구(φιλος) -여기에 <친구>라 함은 양면적 관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친구가 되시고, 그 친구를 위해 죽으시므로, 최대의 사랑을 표시하실 것과, 제자들은 서로 친구 사이므로, 그리스도의 최고 사랑의 본을 따를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런 인간계에서 볼 수 있는 최대의 사랑보다 오히려 더 존엄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친구를 위해서 보다 원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롬5:8)

 

⑤. 16:13- 인도하리니(ὁδηγήσει) - ‘인도하리니’는 <길(ὁδός)>이란 낱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기엔 3가지 사실이 엿보입니다. 첫째는 성령의 인격성입니다. 진리의 성령이란 성령의 별명 중에 하나로서, 인도한다는 것은 그대로 인격자가 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성령의 役事의 성격을 말하는 것으로, 그는 인도하기만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간곡하시지만, 결코 강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인간은 성령의 인도 없이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⑥. 16: 33-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너희가 환난(θλῖψις=누름, 압제, 시련이란 뜻.)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다락방 강화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근심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이 ‘고별의 마지막 말씀’을 시작하셨고(14:1),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세상의 평안과 같지 않는 것을 말씀하셨으며(14:27), 제자들이 세상에서 환난 받을 것도 이미 지시하셨습니다.(15:18-27) 이와 같이 기독자들의 평안이란 환난이 없는 평안이 아니라, 환난을 당해도 그것을 극복하므로 얻는 평안인 것입니다.

 

⑦. 17: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예수 그리스도를 아는(안다=γινώσκω) 것이니이다.”-영생에 대한 定義를 말씀하신 것이며, 영생에 대한 본질적인 말씀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란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理性的 이해가 아니라, 경험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안다는 것이며, 人格的인 이해를 말씀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머리나 가슴에서 울어 나오는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交流)를 통한 살아있는 현실을 말함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그 본성에 결합되는 그 자체가 영생이란 것입니다.

 

⑧. 17: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ἁγιάζω) 하옵소서!”-제자들의 保全을 위해서(17:11), 제자들의 ‘거룩함’(聖潔)을 위한 주님께서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不潔에서 淨潔케 되어서, 聖別(구별된 것)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하게’라는 뜻은 인간 또는 물건을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출28:41, 레22:2~3) 聖潔이란 믿음으로 구원받은(義認) 이후에, 일생을 통해 노력할 성도의 삶을 말합니다. 義認은 순간적이요. 일시적이지만, 聖潔은 계속적이요. 반복적인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그리스도의 유언 설교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잠재우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홀로 남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고아같이 외롭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대전제를 가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하셨으며, 삼위일체 되시는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그들이 방패가 되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유언서는 어떤 사람의 것일까요. 말하자면 가장 값진 유언서를 남긴 내용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Saint Helena섬에 유배되었을 때, 작성했던 친필 유언서 보충서한이 95년 11월에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9.780.000원에 팔렸었는데, 지금 다시 이 유언서가 경매된다면 4억 7천만 원을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한 나라를 통치하였던 나폴레옹이 유언서에 덧붙인 보충서한이 그렇게 엄청난 가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반문해 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그 내용이 무엇이며, 그 유언서를 받아 든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유익이 있기에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라도 구입하려고 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이 서한에는 나폴레옹이 임종직전에 앙리베르트랑 백작에게 자신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을 처분해 달라고 부탁한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그런 유언서를 비싼 돈을 주고 샀다고 해서 유언서를 구입한 사람에게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한 시대를 정복한 사람이기에 유명세는 있겠지만, 그래서 기분이 좀 좋을지는 모르지요,

 

그러나 본문 말씀에서, 참된 유언서의 가치는 인간계의 모든 근심과 불안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이란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소유자는 부단히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는 항구적인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주님과 우리와의 有機的인 관계는 끊을 수 없는 신앙의 연합체이기에 세상과의 투쟁에서 승리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保證)은 보혜사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 안에 계셔서 힘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또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계셔서 모든 교회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①. 본문제14장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 <다락방 강화>(The Upper Room Discourse)는 주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신변 가까이 있는 11제자에게 주신 고별의 설교입니다. 이 고별사의 첫 부분인 14장은 도마(14:5), 빌립(14:8) 및 유다(14:22) 등이 주님의 말씀을 가로막고 질문을 한 것(誘導한 것)에 대한 답변으로서, 하신 말씀은 참신하고 새로운 사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는“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보혜사 즉, <保護者>가 되시는 성령께서 당시 제자들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계시니, 안심하고 평안 속에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유대인들이 보통 작별 인사로 <Shalom>이라고 하는데, 그리스도께서는 보통 인사에다가 깊은 뜻과 약속을 첨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과 세상이 주는 평안을 대조하시면서, 세상이 주는 평안은 피상적, 일시적 및 상대적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중심적, 항구적 및 절대적이란 것입니다. 이는 영원한 구원을 확보함에서 오는 양심의 평안이며(롬8:1) 하나님과 화목함에서(롬5:1) 오는 항구적인 평안이며, 그리고 부단히 하나님의 사랑에서 공급 받는 평안이란 것입니다.(롬5:5) 이 평안은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고, 그리고 그 어떤 세상의 환경도 빼앗아 가지 못할 절대적인 평안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유언의 말씀에 준해서, 항상 감격스럽게 생각하면서 평안 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②. 제15장은 주님과 살아있는 有機體에 대한 교훈으로써의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의 말씀입니다. 제14장 31절에 “일어나자 여기를 떠나자”하신 말씀으로 보아서 최후의 만찬을 잡수시던 요한 마가의 다락방에서 말씀을 하신 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中途에서 포도원을 보시면서, 말씀하신 <길가의 강화>(The Discourse on the Way)로써, 제자들은 스승과의 惜別의 情 때문에 완전히 침울해 있었고, 주님 홀로 교훈의 말씀을 展開하시었습니다. 그 내용은 주님과 제자간의 연합체가 되는 사실에 치중하시었으며, 이 연합된 신앙의 共同體는 세상과의 투쟁을 통해서 승리에 이르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지 아니하면, 과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열매란 것도 신앙을 떠난 천성적으로나 수양으로 되는 선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된 열매란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은혜를 힘입어야만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성령의 열매로 열거된 9가지 열매(갈5:22)가 그것입니다. 주님의 유언의 말씀에 따라서, 우리들 삶 속에서 이런 열매가 주줄이 열리게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여기에서 <친구>라 함은 양면적 관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친구가 되시어서, 그 친구를 위해 죽으시므로, 최대의 사랑을 표시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서로 친구 사이므로, 그리스도의 최고 사랑의 본보기를 따를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런 인간계에서 볼 수 있는 최대의 사랑보다 오히려 더 존엄하신 것이기에, 우리들은 종적으로는 주님을 사랑해야함은 물론이고, 횡적으로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遺訓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③. 제16장은 保障의 말씀으로써의 保惠師 聖靈이 임재하실 것에 대한 교훈입니다. 스승이신 주님과 제자간의 이별로 인한 제자들의 苦惱를 생각하셔 오순절 이후의 성령시대가 열릴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聖三位의 역사적 견지에서 볼 때, 성부시대(구약시대), 성자시대(그리스도의 제세기간)로 구분 할 수 있는데, 오순절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시대>(God in Us)인 성령시대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심’(ὁδηγήσει)은 <길(ὁδός)>이란 낱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기엔 3가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人格性입니다. 진리의 성령이란 성령의 별명 중에 하나로서, 인도한다는 것은 그대로 人格者가 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성령의 役事의 성격을 말하는 것으로, 그는 인도하기만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간곡하시지만, 결코 강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인간은 성령의 인도 없이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환난(θλῖψις=누름, 압제, 시련이란 뜻.)을 당하지만,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보호자 성령께서 보호하시는데, 겁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주 풍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風雨大作하는 삶 속에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환란을 극복하면서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요리해 먹게 하신다는 것입니다.(출15:23-27 참조)

 

④. 제17장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단 한번으로 드리는 희생의 제물)로써의 중보의 기도문입니다. 다락방을 떠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길목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계셔서 모든 교회를 위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주경학자 Lange는 “만일 그리스도의 하신 성역을 하늘을 향해 자라 오르고, 땅 위에 그늘을 주는 큰 나무에 비한다면, 대제사장으로써의 중보의 이 기도는 그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ἁγιάζω)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17:11에서, 제자들의 保全을 위해서 기도하시면서, 동시에 제자들의 ‘거룩함’(聖潔)을 위한 기도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거룩함’이란 不潔에서 淨潔케 되어서, 聖別(구별된 것)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하게’라는 뜻은 인간 또는 물건을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출28:41, 레22:2~3) 聖潔이란 믿음으로 구원받은(義認) 이후에, 일생을 통해 노력할 우리들의 삶을 말합니다. 義認은 순간적이요. 일시적이지만, 聖潔은 계속적이요. 반복적인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아무리 불효막심한 자녀일지라도, 부모가 남긴 유서는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부모가 생사의 기로에서 쓴 유서는 진실하면서도 애절한 소원을 남기는 법입니다. 하물며 우리들의 구속은총을 베풀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러 가시면서, 이 유언서를 남긴 그리스도의 부탁을 어찌 무심코 넘길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만은 꼭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환경도 빼앗아 가지 못할 절대적인 주님의 평안을 항상 감격스럽게 생각하면서 평안 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살아있는 有機體로서, 주님께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으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주줄이 열리게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종적으로는 주님을 사랑해야함은 물론이고, 횡적으로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遺訓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환난(θλῖψις=누름, 압제, 시련이란 뜻.)을 당하지만,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보호자 성령께서 보호하시는데, 겁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주 풍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風雨大作하는 삶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환란을 극복케 하시며,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요리해 먹으면서 살아갑시다.(출15:23-27)

주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ἁγιάζω)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거룩하게’라는 뜻은 인간 또는 물건을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출28:41, 레22:2~3) 聖潔이란 믿음으로 구원받은(義認) 이후에, 일생을 통해 노력할 우리들의 삶을 말합니다. 義認은 순간적이요. 일시적이지만, 聖潔은 계속적이요. 반복적인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