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하나님의 사랑과 미움
(시97:1~12)
1). 서론: 본문 시 97편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시작하며, 그의 통치가 온 땅에 미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 그리고 공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실 때 온 세상이 기뻐하며, 그의 보좌가 의와 공평 위에 세워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강력한 심판 앞에서 세상의 모든 대적과 헛된 우상은 무력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악인들에게는 두려움이지만, 그의 백성에게는 기쁨과 해방의 소식임을 보여 줍니다. 시온과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것을 소망하며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악을 미워하고 의로운 삶을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빛과 기쁨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시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의 삶과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믿으며 안식과 평안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안에서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는 복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인이심을 드러내시고, 당신에게 빛과 기쁨을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2). 본론(Text): 시편 96편과 같은 신정시이나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이 보다 장엄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내용은 1. 하나님의 위엄찬 통치(1~6), 2. 우상을 버리고 의를 행할 것(7~12)으로 양분 되어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본문의 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한 시로 야웨의 왕권에 대한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시93편과 같이 "야웨 말라크", "야웨가 왕이 되신다." 또는 "야웨가 왕이시다."라는 선포를 공동예배 때 선포하는 시로 학자에 따라서 그 해석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 시에서 신화적인 관련설이나 이스라엘의 계약축제와의 관련설을 떠나서 본문 시인이 말하는 "사랑과 미움"에 대한 생각만 해도 본문 시는 높은 종교적인 가치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사랑과 미움"을 말하게 된 전후 관계 사정을 살피면 하나님의 통치사상이 인간들과 관계될 때, 사람은 이 왕이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동시에 그는 악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미움"이 인간의 상호관계, 또는 사회관계의 차원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그의 통치와 권위와 영광과의 관련에서 "사랑과 미움"을 생각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권위가 행사될 때 온 지구 위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여기 "땅과 섬"을 말했는데 이는 온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 세계에 기쁨과 즐거움이 항구적이 못되고 슬픔과 괴로움의 고장이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의 삶과 역사를 지배하지 못하고 인간의 통치와 권위가 이기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란 것은 한 잔 술이나 노래 한 곡조로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에서 찾는 "기쁨과 즐거움"은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한번 구했다가도 곧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는 물질의 힘, 권력, 또는 군대의 힘으로 다스리는 세계가 아니고, 본문의 시인이 2절에서 밝히는 대로 "정의와 공평"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불평과 원망을 살 수 있는 통치가 아니고 모든 사람, 있는 자, 없는 자, 지배자와 똑같이 피지배자도 공정한 인권의 보장과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아무 것에나 차별이 없고 특혜자나 소외층의 사람이 생기지 아닌하고 모두가 다같이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세계를 말합니다.
사회정의가 보장되어 권력자의 횡포도 없고 가난하고 힘 없는 자에 대한 멸시와 억압, 착취와 핍박 없는 사회 질서가 세워진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 세계에서 인간들이 저지르는 불의를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그의 치리(治理)는 공평하십니디. 누구에게나 똑같은 동등감을 갖게하는 균일한 생활의 능력과 바탕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공의와 공평이 그 기초다."(2절)라고 함은 인간이 이 땅 위에서 바라고 또 세우고자 하는 이상(理想) 세계입니다. 이러한 이상세계는 인간 권력의 지배가 하나님 권위의 지배 아래 복종될 때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세계가 이루어질 대 하늘과 땅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가 언제 어디서 이루어질 것이냐 함에 대하여 본문의 시인은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역사를 꿰뚫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인간은 아직 유토피아를 성취함에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가능하다는 신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이 엄숙하게 시행될 때만 가능합니다. 이 공의와 공평은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이 아니라, 옳는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는 판단을 명확히 하고 그 판단대로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공의의 판단이 시행될 때 모든 불의와 부정은 하나님의 채찍을 맞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세상 사람과 세계는 무서워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불이 나와 모든 대적을 사르는 것"과 같으며(3절) 번개가 비치어 모든 만물을 그 공의의 빛 아래 두어 그 어두움 축출하는 것 같습니다.(4절)
불의와 부정으로 이룩된 세계가 아무리 산과 같이 우람하게 서서 역사를 지배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 앞에는 그 산악(山岳)도 불에 밀이 녹듯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합니다.(5절) 이렇게 불의와 악의 세력이 사라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만물을 비추어 하나님의 위엄을 높여주는 것입니다.(6절) 이런 하나님의 영광이 세게를 두루 비출 때, 이 땅 위에서 헛된 것을 섬기는 자들은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7절)
헛된 것이란 헛된 신앙과 우상뿐이 아니라, 물질과 권력을 우상처럼 모시는 자나, 어떤 아이디어를 신처럼 모시는 사람도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 앞에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의 원리를 그가 사는 시대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7절)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할 때 시온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본문의 시인은 1절에서 말하고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온과 유다의 모든 성도들에개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축복은 이스라엘 사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이 세상 만민 누구에게나,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 위에 뛰어난 이 공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기쁨과 즐거움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까?
본문의 시인은 여기서 자기의 주제인 "사랑과 미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야웨를 사랑하는 자는 악을 미워하라."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사랑을 야웨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21)함이나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라는 말 등은 하나님의 공의가 지배하는 세계를 원하는 사람의 당연한 결단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성도의 영혼을 보존하는 길아라 합니다.(10절) 우리 인간의 영혼을 보전하는 길, 그것은 다만 "사랑과 미움"을 여기 본문의 시인의 말대로 올바로 판단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성도"란 말 자체가 "헷세드"(하나님의 사랑)라는 말에서 왔기 때문에 "성도"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 이외 딴 것에 대한 것일 때 성도라 할 수 없다는 뜻도 됩니다. 성도는 "야웨로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이다."(12절)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 기쁨을 주신다고 합니다.(11절) "사랑과 미움" 이것은 인간의 삶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순과 당착(撞着)의 현상이지만 이것을 하나님의 통치와 그 공의와 공평에서 찾을 수 있다는 본문의 시인은 깊은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 이상에서 본문을 쉽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본문 시 97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의로운 자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과 기쁨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악을 미워해야 하며, 하나님은 그들의 영혼을 보호하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구원하십니다. 의로운 자들에게는 빛과 기쁨이 뿌려지며, 그들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의를 따를 때, 그분의 보호와 축복을 받게 된다는 약속을 줍니다.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그분의 뜻을 따르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빛과 기쁨을 주시며, 그들을 악에서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그러면 하나님의 정서 감정인 <사랑과 미움?을 간략히 분석해 봅시다:
(1). 하나님 사랑의 상처: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지만, 하나님 마음의 깊은 상처는 사랑하는 인간들이 배신하거나 실망시키면, 그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기대와 현실의 차이:하나님은 종종 인간들에게 큰 기대를 합니다.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거나 다른 모습일 때, 하나님은 실망감과 배신의 분노를 느끼시게 됩니다.
(3). 인간의 집착과 의존 상태: 인간이 다른 대상을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집착하는 경향과 결합이 있을 때, 하나님의 실망과 더불어 미움의 정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4). 또한 하나님에 대한 인간 사랑의 혼란: 하나님에 대한 인간사랑의 정서가 극도로 혼란스러울 때나 자주 감정의 기복이 심할 때, 하나님은 미움의 정서 감정으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감정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 하나님의 미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신의 정서 감정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그 공의와 공평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 자신이 왜 그런 나쁜 정서 감정을 가졌는지, 또한 인간 자신이 어떤 사건이나 상황 때문에 야기된 원인을 반성하고서 가슴 깊이 아파하면서, 회오애 찬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4). 결론: 본문 시97편은 하나님의 통치와 그분의 의로움을 찬양하며, 우상 숭배자들에게는 경고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감사의 삶을 권면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그분의 통치는 언제나 완전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통치에 기뻐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신뢰하며, 그분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통해, 우리가 받은 사랑의 빛과 기쁨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이 시편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와 의로움을 다시금 깊이 묵상하며,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의 다스리심에 사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결단합시다. 끝.
2025. 7. 3.
山下연구원: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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