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인생
(본문: 시71:1~24)
1). 서론: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청년시절은 詩를 쓰는 데 적합한 시기요, 노년시절은 哲學을 하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청년기는 직관(直觀)이 중심이 되고, 노년기는 사색(思索)이 중심이 됩니다. 또한 나이들면 인생의 이면(裏面)을 잘 보게 됩니다. 이면은 표면보다 아름답지 못하지만,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본문의 시인도 인생의 이면적인 고뇌와 고통이 실재하는 것을 애타게 하나님께 하소연을 드리게 되었지요.
오늘날 본문 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고뇌를 통한 신앙의 환희를 절실히 깨우치고 있습니다. 종적(縱的)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만은 버리지 않기에 기도와 찬양하는 삶으로 인생석양 길을 걸어가면서, 동시에 횡적(橫的)으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노년의 행과불행을 가르는 결정적 분수령은 어떠한 마음으로 삶을 대하느냐는 '마음 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기에 어떻게 삶을 영위하느냐를 본문을 통해서, 더욱 큰 지혜를 얻었으면 합니다.
2). 본론(Text): 누가, 언제 지은 것인지 분명치 않음으로, 저자에 대해서 추측들이 많습니다. 다윗, 예레미야, 이스라엘 회중 등이나, 역시 다윗의 저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용은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기도"로 보고 있습니다. 시편 22, 31, 35, 40편들과 유사점이 많습니다. 본문 내용은 크게 양분해서 1. 기도(1~13), 2. 찬미(14~24) 입니다.
3). 본론(Context): 본문의 시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자기의 복잡하고 괴로운 인생경험을 말함으로, 단순히 노인의 문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세상에 출생하여 자라고 노인이 되기까지의 전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다룬 인생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5, 17, 18절) 노인은 자기 과거를 돌이켜 보며 현재까지도 수난 당하고 있는 삶을 불평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본문 시의 핵심은 9절과 18절로써, 늙는다는 것은 곧 '버림을 받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동양에는 효도사상이 있어 나이 많은 부모나 노인들을 존경하고 따뜻한 관심으로 돌보아야 하지만, 지금은 이런 효(孝)를 보여주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나이 많으면 직장에서 퇴직하여야 합니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고 자리를 내어 주는데 더 큰 뜻이 있지만, 노인 자신의 체력으로나 정신력으로 언제까지나 젊을 때와 같이 능률적일 수는 없습니다.
피곤을 느끼고 기억력도 없어지며 의욕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노인은 주위 사람이나 후배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을 위해서도 공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이렇게 물러날 때, 느끼는 첫 감정은 내가 사회에서 버림을 받는 존재가 되었구나 함입니다. 이리하여 해가 갈수록 이 버림받음의 감정은 더 심화되어 갑니다. 진지하게 자기를 생각하는 노인은 누가 나를 버리지 아니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자식까지 이렇게 무관심하게 버릴 수 있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정당하게 생각하면 젊은 자식들에게 그들 가족, 사업, 학문을 돌보듯이, 노인에게 같은 관심을 보여달라 함은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나이 많은 부모편에서 볼 때, 결코 그 자식들의 후대를 받기 위해 낳고 돌보고 공부시킨 것은 아니지요. 효는 받는 사람이 바랄 것이 아니라, 바치는 사람이 성심성의로 부모를 돌보는 것이지요. 다소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버림받은 존재로 살아가야 하지요. 심지어 양로원에서 버림받은 인생의 종말을 끝마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본문의 시인은 노인의 버림받는 괴로움을 알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는 버림을 받더라도 하나님만은 버리지 말아달라고 간구함은 신앙 노인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늙었다는 것, 기력이 쇠약해졌다는 것이 비록 원치 않는 일이나,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육을 가진 인간이 겪어야 할 과정입니다. 이 당연한 과정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는 축복을 가진다면 행복한 노인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버리지 말아달라는 것이고, 이 기도에서 노인의 심령은 새로워지고 용기를 얻고 비록 백발이 성성하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손길에 붙잡혀 103편 시인이 노래하듯, "좋은 것으로 만족할 수 있고, 내 청춘을 독수리처럼 새롭게 할 수 있다."(5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고,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노인에게만이 아니라, 나이 어린 아이나 젊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 어린 아이나 젊은이는 버림을 받았다는 감정을 가질 수 없을 만큼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늙는다는 것과 젊다는 것의 차이는 나이라든지 육체의 상태가 아니라, 실상은 관심의 차이에서 온다고 하겠습니다. 젊은이라도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청년이면 그는 젊기는 했으나 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록 백발이 성성해도 그가 "나는 누구의 관심을 받고 산다."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젊은 사람이 부럽지가 않습니다.
이 시인이 인간의 관심보다 하나님의 관심을 청했다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사람의 관심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인은 자기의 인생이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시작 되었고 그 은총의 손에 붙잡혀 지나온 일생인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테에서부터 당신의 붙드신 바요 어머니 복중에서부터 당신이 나를 돌보셨기에 나는 항상 당신을 찬양하옵니다."(6절)
그의 생명의 시작이 하나님의 돌보심에서요, 그의 출생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 "나이 어릴 때부터"(5절) 그의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에서 지나온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줄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나는 어려서부터 당신이 나를 가르쳤으며,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지금까지 알게 했습니다."(17절) 그가 한 인간으로서 받은 교육, 경험 전부가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개인시라 하기보다 민족 공동체의 시라고 보아서 여기 "나이 많다."든가 "어리다."든가 하는 말은 이스라엘 역사의 후기 또는 초기 등으로 뜻한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으나, 이 시는 경건한 개인의 신앙 경험을 노래한 시입니다. 같은 "백발 성성"의 이야기를 하는 이사야 46장 3~4절은 민족 공동체의 역사를 말한 것입니다. 이 시는 그 공동체 안에 있는 한 신앙이의 일생을 그 말년에서 회고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하여 감격하고 있는 노래입니다.
전체의 시가 고난의 사정을 말하면서 강한 의지 신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이 비길 데 없음을 노래하고(19절), 이 하나님께 시인의 소망이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5, 14절) 이 시인은 비록 현재에 "그의 영혼을 대적하는 자"와 "모해하는 자"(13절)로 그의 일생이 "많고 심한 고난"(20절)으로 차 있었지만, 자기 일생을 성실하게 돌보아주심을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며(22절), 그의 혀로 종일 하나님의 의를 노래한다고(24절) 했습니다.
그의 일생은 간구하고 찬양하는 일생이었음을(1~3, 8, 14, 19, 22, 23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백발이 된 시인은 "하나님을 찬송함과 그의 존귀함을 찬양함을 종일 자기의 일로 삼고"(8절)라고 함에서 사람의 일생이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끝마치게 되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본문을 좀 더 알기 쉽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본문 시의 주제는 백발이 성성하게 늙는다는 것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엔 孝道思想이 지극하여 부모나 노인을 존경하고 따사로운 애정을 갖고 돌보았지만, 현대는 이런 孝心을 갖고 행하는 자녀나 세상 인심이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한 60~70세가 당도하면 직장에서 퇴직해야 하는 것이 국가, 사회법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1). 노인 자신도 정신력이나 체력이 쇠약해져 능률적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노인을 버려도, 종적(縱的)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만은 버리지 않기에 기도하는 삶으로 인생석양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하나님을 찬송함과 그의 존귀함을 찬양하는 일로 소일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을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했습니다.
인도의 유명한 시성 타고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나는 점점 나이가 많아 가므로 내가 젓는 노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제는 돛대를 높이 달고 바람을 의지하노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점점 많아짐으로 자신의 육체가 쇠약해 간다고 한탄하지 말고, 믿음의 돛대를 높이 달고 하나님께서 바람을 주시는 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삶을 영위해야 할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 때, 신령한 눈이 밝아집니다. 하늘 나라를 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요한은 젊을 때에 <계시>를 받지 못하고, 나이 많은 노인 때에 밧모 섬에 가서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될 때에 하늘 나라의 영광이 그 눈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노년기의 가장 큰 행복은 믿음과 사랑을 극진히 바쳐드리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사랑과 은혜가 그렇게 행복할 수 없는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런 축복은 누구나 지극 정성의 믿음으로 사는 노년기에 다 허락된 축복입니다. 나뭇잎도 떨어질 때, 과실은 가을에 다 익을 때에, 곡식도 거두게 될 때가, 햇빛도 서산 낙조가 제일 아름답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기는 인격과 믿음이 완숙하고 아름다워질 때입니다. 온유, 겸손, 진실 및 이해성이 무르익게 되어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인격을 반추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그 다음의 행복한 사람은 횡적(橫的)으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진실된 마음 가짐을 여하히 가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 자신이 <노년기가 행복하기 위해서 몇 가지의 준비만 한다면, 행복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마다 사는 환경과 위치에 따라서 같을 수는 없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생물학적인 욕망을 충족할 수만 있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노년기를 상실의 계절이라고 보지 말고, '방학숙제'를 모두 마친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의 기쁨을 누리는 때라고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향기 넘치는 알찬 열매를 거두는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노년기야말로 인생의 가장 찬란하고 멋진 때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노년의 행복을 위하여 절제하며 준비한 사람은 비교적 흡족한 생활을 할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생의 끝자락이 초라하게 될 것입니다. 노년의 행과불행을 가르는 결정적 분수령은 어떠한 마음으로 삶을 대하느냐는 '마음 먹기'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신체적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과 정신적으로는 매일 日記쓰기 및 필자처럼 자신의 Blog에 글 올리기 위한 독서와 글쓰기를 함으로 육체와 정신이 건강함으로 행복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마음입니다. 현재 위치에서 불평과 불만을 버리고 의식적으로 라도 행복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억지로라도 행복한 마음을 가지면, 행복해 진다는 것이 현대석학들이 얻은 결론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데 어떻게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당장 조금만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음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조금은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담담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어려움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한다면, 잡다한 고통마저도 잔잔한 즐거움으로 변하는 놀라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발 물러서서 삶을 감사하며 아름답게 관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노년기에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하여 삶의 끝자락을 아름답게 만들어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에 한가하고 여유로운 노년의 생활을 만끽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바는, 이런 마음의 행복한 자세를 한층 더 승화시키는 길은 연민에 찬 사랑의 얼굴 빛을 발해 줍시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심과 긍휼히 여기심으로 인생 석양길을 더욱 행복하게 살게해 주십니다.
4) 결론: 본문 시의 주제는 백발이 성성하게 늙는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쇠약해 짐으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틈을 타서 악인과 불의한 자가 많은 오해와 박해를 가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피난처되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60~70세에 당도하면 정신력과 체력이 연약해짐으로 능률적일 수가 없기에, 직장에서 퇴직해야 한다는 국가법과 사회법에 의해서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심리적으로 노인 자신은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존재라는 생각속에서 자학(自虐)과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은 버리지 않기에,인생석양 길을 기도와 찬양으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비참하게 버려진 자기 실존>으로 하여금, 정신과육체가 별스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노년기를 상실의 계절이라고 보지 말고, '방학숙제'를 모두 마친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의 기쁨을 누리는 때라고 생각하면서, 종적(縱的)으로는 신앙의 돛대를 높이 달고 하나님께서 바람을 주시는 대로 그 능력을 의지하는 삶을 영위하면서, 횡적(橫的)으로는 신체적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과 정신적으로는 매일 日記쓰기 및 필자처럼 자신의 Blog에 글 올리기 위한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 살게 되면, 영육(靈肉)이 건강해지면서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동시에 사소한 일에도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끝.
2024년 3월 12일
山下연구원: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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