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사랑과 진실
(본문: 시편 89: 1~52)
1). 서론: 사랑과 진실이 가득한 <첫 연애 편지>( 본문엔 계약관계)를 쓰는 심정으로 두군거리는 가슴에 듬뿍 담아서, 사랑과 잔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이 담긴 축복의 해답을 받아서 감사하며 즐거워서 행복이 가득한 삶이 여물어 가는 인생살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생각만 할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우리 모두 본문 말씀을 통해서 더욱 노력해 봅시다.
2). 본론(Text): 본문은 장문(長文)의 시로써, 그 내용이 다윗언약에 대한 부동의 신앙과 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인의 작품입니다. "사랑과 진실"이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 (본문엔 "인자와 성실")에 대하여 강한 발언을 하고 있는 동시에 이 "사랑과 진실"과는 배치되는 이스라엘의 패망과 수치가 언급되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1.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하심과 다윗언약을 주심을 찬양함.(1~4절), 2.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함(5~18절), 3. 다윗언약을 강조함(19~37절), 4. 그 언약과 대조되는 비참한 현상의 다윗후손(38~52절). 본문 시의 주제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이며, 구약 신앙의 기초와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하여 이 사랑과 진실은 독특한 자리를 차지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역사는 계약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관계도 계약관계였으며,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고 그들의 역사를 가나안 땅에서 시작하게 된 전 역사과정이 계약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할 때,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라는 말로써 계약관계가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민족 중에서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 자체에 어떤 선함이나 잘난 것, 또는 그 수효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이 특별한 사랑을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으로 맺은 그 계약관계는 어떻게 유지되 온 것이겠습니까? 구약의 기자들, 역사가나 예언자들, 시인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바는 <진실>이 이 계약관계를 유지시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계약을 진실하게 지키고,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진실에 응답하는 진실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 진실이 파괴될 때, 그 계약관게는 파기(破棄)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낡은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말한 것도(렘 31: 31절 이하) 이스라엘이 이미 하나님과 더불어 맺은 그 게약을 스스로 파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세아의 말을 빌리면 결혼한 아내가 그 사랑의 진실을 떠나서 음행을 할 때, 그 결혼 관계는 파기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야웨 하나님과 맺은 첫사랑(호 11:1)을 배신하고 그 사랑에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야웨를 버리고 바알에게로 돌아간 비진실(非眞實)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관계를 먼저 파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에 응답할 수 있는 새로운 계약을 예레미야가 알려주었습니다. 이 새 계약이 구약에서는 역사화하지 못하고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인류, 세계 만민과 하나님과의 새로운 계약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그의 피로써 맺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계약관계에서 그를 사랑하고 우리의 진실을 이 사랑에 최선을 다해 나타내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입니다. 이렇게 구약 신앙과 신약의 신앙을 연결지어 주는 것은 사랑과 진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접촉하는 길이 사랑과 진실이고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 그를 믿는다는 것은 곧 우리의 순전한 사랑과 변치 않는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성경 전체의 배경에서 볼 때, 이 89편 시인은 성서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중심하고 자기 시를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출애굽사건도 이 사랑과 진실에서 보고(9~10절), 이스라엘 역사의 중추가 되는 다윗 왕조의 역사를 이 사랑과 진실의 관계에서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선택된 사람이고, 그의 왕국은 하나님의 진실에 의하여 유지 보호되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진실과 사랑이 저와 함께 한다."고 함은(24절) 다윗이 사랑과 진실에 의해서 선택받고 또 이 사랑과 진실로써 강하고 유능한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뿔이 높아진다."는 말입니다.(24절) 이 사랑과 진실의 관게에서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요, 하나님이요 구원의 바위가 되셨다."(26절)라고 했으며, 또 하나님은 그와 더불어 진실과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신다."라고 했습니다.(27절)
하나님의 손이 다윗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팔이 그를 힘있게 하셨습니다.(21절) 그래서 원수는 그를 넘어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는 대적을 박멸할 수 있었습니다.(22,23절) 그러나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의 진실과 사랑을 다윗에게 무조건 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와 그의 후손이 하나님의 율법과 게명을 지키기를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실과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지키고 그 계명을 꼭 지켜야만 그 모든 축복, 감함, 권위, 영화, 영구적인 왕위를 주신다고 했습니다.(30~32절) 그런데 본문의 시인은 38절 이하에서 이스라엘 역사의 비극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이 배신 당한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왕관은 땅바닥에 딩굴며(39절) 국권은 훼파(毁破)되어 이웃 나라들의 조롱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국난의 사건이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망국의 비애를 본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르호보암 시대 시삭의 침공(왕상 14:25 이하; 대하 12: 2절 이하)을 말하는 것인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진실과 사랑을 배신하면 언제나 또 어느 민족이나 이런 수난과 비극을 맞게 된다는 것을 본문 시는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죽음을 막을 수 없는 허무한 인생이라도(47,48절) 하나님의 진실과 사랑에 대한 바른 응답을 하는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살고 또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본문 시편을 쉽게 풀이 해 보았습니다. 본문 시편의 핵심적 요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하신 두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양면적 속성(사랑과진실)을 선수적으로 받았으니, 감읍하는 심정애서 우리들의 전실존을 하나님께 보답야 한다는 다짐의 삶을 천명(闡明)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나다.
실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라들의 어느 시공(時空)에서도 최고의 가치가 있는 보편적 삶의 표준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믿는 것도, 성경 읽는 것도, 교회 출석하는 것도, 헌금을 내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예배를 드리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사랑'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모든 행사, 특히 사랑이 진실하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하겠습나다. 그래서 그 사랑에 고마움에 상답(上答)으로 진실한 사랑을 드려야 하겠습나다. 기독자의 삶에서 본질적인 성품은 매사에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한층 우리 자신의 진실성을 근원적으로 진실한지 점검해봐야 하겠습니다.
(1). 내 스스로 진실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지의 여부, (2). 나의 진실성을 조금씩 왜곡하려는 경향성의 여부, (3).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용납하는지의 여부, (4).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진실하기를 기대하는지의 여부 등등,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언고 정직한 판단을 해서, 새로운 결단적인 삶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위와 같은 질문들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확인하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인간사회 윤리가 새로운 면모로 닥아올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상이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니까 자신도 그러한 사회에서 거짓을 해도 괜찮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치만, 우리는 진실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본문 시편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하신 양면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선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통해서 받았으니, 감읍하는 심정애서 우리들의 전실존을 하나님께 보답하는 삶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나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삶을 사노라면 위선된 사랑과 진실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진실된 가슴만이 사랑과 진실을 안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슴이 안내하는 대로 삶을 살면, 사랑과 진실의 하나님께서도 진실하다고 인정하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풀 것입니다. 끝.
2024년 12월 12일
山下연구소장: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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