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약설교마당

36. 하나님 장중(掌中)의 인생과 자연

solomong 2025. 7. 17. 10:28

36. 하나님 장중(掌中)의 인생과 자연

(시편 98:1~9)

1). 서론: 본문 시는 시인이 먼저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계의 온갖 피조물들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촉구합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1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며, 세상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존재하는 인생이기에 여호와께 새 노래로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치(統治)하시며, 기이한 일을 행하시고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2). 본론(Text): 시96편과 형태가 같고, 또 사상이 이사야 40~66장과 공통되며,따라서 메시야 예언시에 속합니다.70인역은 본 시도 “다윗의 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1.구원의 주께 찬미할 것(1~3), 2. 노래와 악기로 찬미할 것(4~6) 및 3. 만물도 찬미할 것(7~9)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본문의 시는 용어나 사상에 있어서 96, 97편과 매우 유사한 시입니다. 야웨가 공의와 공평으로 통치하신다는 사상에서(시 96:10; 97:1; 98:9) 서로 공통점이 있고 전체가 찬송을 강조함에서도 같고 또한 온 땅이 하나님을 찬양함에 그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시도 야웨 하나님이 왕이심을 찬양하는 "대관식" 시형에 속하여 9절에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으로 보며 궁켈은 야웨 하나님의 종말적인 내일을 말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 시의 배경에 있는 사상은 제2 이사야와 통하는데, 즉 1절과 이사야 42장 10절, 52장 10절(59:16; 63:5), 3절과 이사야 40장 5절, 52장 10절(66:18), 4절과 이사야 52장 9절, 5절과 이사야 51장 3절, 7절과 이사야 55장 12절 등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는 포로 이후 시대의 산물이라는 데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합니다.

본문의 시인은 그의 왕국이 건재했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선민사상이나 하나님의 특수 민족으로서 누릴 영광과 특권에 대한 것을 생각하는 대신 야웨 하나님은 이스라엘 하나님이라기보다는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란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 민족의 역사적 종말을 본문의 시인은 나라와 민족이 서로 분립하여 싸우고 화해하고 하는 정치적인 일들이 만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는 그렇게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지 아니합니다.

이스라엘의 존재에 그 의의가 있다면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한다는 것이 아니라, 만민들 앞에서 얼마나 은총을 입었으며,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가를 알리려 합니다. 특히 지금은 나라가 망했지만 야웨의 종말적인 나타나심이 있을 때, 이스라엘의 제2 출애급이라 할 수 있는 다른 구원의 사건을 받을 수 있다고 본문의 시인은 강하게 희망합니다.

그것은 첫번째 출애급 사건과 같이 이스라엘이 선민이니까 구원하셨다는 생각보다도 만군의 하나님 야웨는 만국 만민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시니 "그의 오른손과 그의 거룩하신 팔"이 역사하시면 민족적 관념을 떠나서 하나님의 구원사는 이스라엘을 위한 특전이 아니고 만민을 위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려는 일이기 때문에 다시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구원사의 사건은 "새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인은 "새 노래로 야웨께 노래하라"(1절)는 권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96편 시인이 말하는 "새 노래"에서는 오직 한 분 뿐이신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함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 98편 시는 오직 한분 뿐인 야웨의 손과 팔이 인간들을 위하여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일을 하는가를 감격해 부른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함을 노래한 출애굽기 15장의 노래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의 장에서 하나님이 자기 권위와 영광을 위하여 한 민족을 구원하시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노래한 시입니다. 바로와 같은 정치적 권력에서 해방시킴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는 일체의 사탄의 권세를 꺾어 누르고 하나님이 통치히시는 정의와 공평의 나라를 세우고 이를 다스리실 것을 노래한 시입니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신다. 그는 정의로 세계를 심판하시고 총명함으로 백성들을 심판하실 것이다."(9절) 본문의 시는 97편과는 조금 다르게 "정의와 공평"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의 통치를 설명함에 불과합니다. <공평과 공정>은 모두 하나님께서 세계를 심판하시고 통치하실 윤리적 가치요 표준들입니다. 바르고 거짓이 용납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는 구약성서의 대주제인 구원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구원과 같이 세게 만민을 그 악의 세력과 죄의 세력, 모든 불의와 부정의 세력에서 건져내어 새로운 세계를 만드실 우주적인 구원을 이룩하심을 말합니다. 본문의 시인이 "기이한 일" 또는 "놀라운 일"이라 함은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여 바다가 갈라지는 것 같은 기적을 말함이 아닙니다.

악을 지배하는 사탄의 세력을 파멸시키는 위대함을 보여 주심입니다. 이것은 인간 악을 그 근거에서부터 무력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의(義)의 승리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민족사에서 세계 민족사로 옮겨간 세계 만민을 위한 구원입니다. 본문의 시를 종말적인 시로 이해하게 됨은 이러한 구원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으로 세계사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의 왕국이 이렇게 누구와 더불어 세워지고 운영될 것인가를 본문의 시인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문의 시는 세계 만민의 구원을 노래한 시이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불러야 할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행하셨고, 이 구원을 알게 하셨다고 했습니다.(2절)

이 구원이 하나님의 정의의 원칙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열방의 눈앞에 밝히 보여주셨다.”라고 합니다.(2절) 이것은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에서 이룩된 구원이었지만. 이제는 “땅의 모든 백성이 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었다.”라고 합니다.(3절)

여기 분명하게 하나님의 구원사가 이스라엘의 민족사 테두리를 벗어나서 세계 만민의 역사인 인류사로 옮겨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교회를 민족주의 관념에서 규정하고 고정하려고 함은 이 시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민족 교회” 는 반드시 “세계 만민의 교회”를 위한 선교의 준비 단계로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에쿠메니즘이 지향하는 것도 하나님이 이룩하신 만민의 구속을 자기 민족으로부터 비롯하되 절대로 거기에 머물지 말고 만민에게로 뻗어나가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의 세계사적인 관심과 인류를 위한 노력은 가장 성서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토착적 신앙과 배치됨도 아닙니다.

토착화된 신앙은 다만 그 특성을 가지고 어떻게 만민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세계사적 레벨에서 선포해야 할 것인가가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본문의 시인이 말하는 대로 “온 땅이 야웨를 찬송해야 하고 즐거운 노래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4절)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같이 세계가 야웨를 찬송함에 합쳐져야 합니다.(7절)

마치 바닷물이 나라와 민족의 구별 없이 박수하듯 또한 산악들이 높이 솟아 하나님을 찬미하듯(8, 9절) 우리 인간은 이 구원의 주를 찬양해야 합니다. 본문 시인의 노래는 실로 만물과 만민에 통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의 손에 붙잡히고 그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팔에 안겨 있음에 야웨 하나님을 향해 새 노래를 부르지 않고 못견디게 됩니다.

* 이상에서 본문을 좀도 쉬운 내용으로 풀이해 보았습니다. 다시금 언급하거니와 본문의 시는 <하나님의 통치 시>입니다. 본문의 주제는 <창조자요, 구속자 되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통치>에 따른 우리의 겸손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한계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때 겸손은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대주의가 겸손을 오인하면 서로 견주어 누구보다 나은 성품으로 이해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오늘 우리는 하나님 장중(掌中)에 존재하는 인생으로써, <겸손의 의미>를 성경적인 근거에서 여섯 가지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겸손은 지식이나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삶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째, 겸손이란, 예수님처럼 살려는 몸부림입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3-24).”라고 되어 있습니다.

셋째, 겸손이란 자긍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긍은 자신에 대한 긍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긍지는 자아에 대한 남다른 우월감입니다. 자긍하는 자는,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벧후 2:10-11).”라고 했습니다.

넷째, 겸손이란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고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빌 1:2).”라는 ‘은혜와 평강’은 십자가의 모형 그대로, 은혜와 평강은 수직적인 관계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하셨습니다. 또한 성화를 이뤄가는 데도,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겸손이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비판이나 비난을 달게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고후 5:11).”라고 되어있으니, 곧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딛 2:15).”고 하셨습니다.

여섯째, 겸손이란 우리의 숨겨진 모습이 낱낱이 드러날 때가 올 것을 알고 이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고 하셨습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겸손하다는 것은, ① 하나님께 속한 삶이고, ② 그리스도 예수의 삶을 따라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③ 오직 진리를 위해 자긍하지 않고, ④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고, ⑤ 자신의 죄를 인정함으로 비난도 달게 받아들이고, ⑥ 숨은 죄가 낱낱이 드러날 것을 대비하여 회개하는 삶입니다.

4). 결론: 본문 시편은 하나님의 구원과 의를 온 세상에 알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찬양 시입니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구원의 은혜를 되새기고, 그분의 뜻에 <겸손히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결단하는 삶이 매일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고요히 내려앉은 아침 이슬이 아니라, 온 땅을 흔드는 천둥처럼 위대한 하나님 통치의 선언입니다. 그 구원의 노래는 오래된 멜로디가 아니라,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혜의 찬송이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품에 안기고 하나님 장중(掌中)의 피조물로서, 모든 숨 쉬는 것들과 함께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주께서 오시면서, 공의로 세상을 감싸주시기 때문입니다. 끝.

2025년 7월 17일

山下연구원: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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