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예배자의 마음과 몸의 자세
1. 서론: 할아버지,아버지와 윗 어른들께 명절이나 조상 제사 기일 때, 절을 올리게 되는데, 공손한 마음씨와 몸의 자세로 왼손이 오른 손위로 올라오게 손을 포개어 눈 높이까지 올리고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면서 양손을 뻗어 바닥을 짚어주고서 왼쪽 무릎을 먼저, 그다음 오른쪽 무릎을 꿇고 천천히 엎드립니다. 3초 정도 절을 하고 일어나서 가벼운 목례를 드리게 되지요.
하믈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마음과 몸의 자세는 성전에 들어갈때부터 정중한 자세를 취해야 하겠습니다. 전인적인 순종을 다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려는 마음가짐과 지극정성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심정이어야 합니다. 깔끔하고 단정한 옷의 복장이어야 함에도 지나치게 사치스럽구나 반대로 너무 허름한 옷은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됩니다. 이제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예배자의 마음과 몸의 자세를 취하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2. 본론(Text): 본문 시의 저자는 히브리어 원전에는 무명시이지만, 70인 역에는 "다윗"의 시로 표제가 되고, 신약의 히 4:7도 다윗의 시로 뒷받침하는 듯합니다. 내용은 1. 왕에게 경배하라(1~7), 2. 그의 음성에 순종하라(8~11)로 되어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시편을 예배와 관련시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것이 근래 시편 연구가들이 강하게 내세우는 점입니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학파 사람들, 모빙겔, 잉그넬, 링그렌, 등은 시편의 대부분의 시들이 예배의식을 위하여 창작되었고 예배의식 때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예배와 시편은 그 최초부터 관련되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시편 시(詩)가 생겨난 동기도 예배이며, 이 시가 사용되고 또 후대에 유전되어 온 이유도 시편 시들이 예배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 시들의 생각이 좀 지나친 점은 시편 시가 가진 개인적 창작설을 부정하고 거의 모든 시편 시가 성전에서 특별한 사명을 가진 제의예언자가 공중예배의 성격에 따라 지었다고 함과, 이런 공중예배 중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년축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점은 전적으로 찬동할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시편 시가 맨 처음 저작된 동기는 공동예배와 관련된 것도 다소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는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느낀 고민, 탄식, 죄책감, 병고, 핍박, 추방 등의 쓰라린 경험에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다리고 의지한 내용의 시들입니다. 그리고 신년 축제는 바벨론에서 지배적인 영향을 가졌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이 축제가 토착화되어 시내산의 계약축제, 시온산 다윗의 계약 등을 기념하는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이 예배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스칸디나비아 학파의 연구로 더욱 확실한 근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종래의 시편 시는 예루살렘 성전에배때 사용된 찬송가라고 한 점을 더욱 확실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시가 비록 개인적인 신앙 경험의 산물이라 해도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됨에 따라 성전 공중예배때 사용되어 공동체 전체의 시가 된 것을 시편 95 이하 여러 시, 특히 성전 순례의 찬송시(120~134) 등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이 95편 시는 첫 귀절부터 하나님을 노래하는 시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성전에서 드리는 찬송 또는 찬양과 관련되었음을 이 시 전체가 보여줍니다. 이 시의 중심은 6절에 있는 대로 "성전에 나아가서 예배를 드리자" 또는 "성전으로 와서 예배를 드리자"의 권고 또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오라"로 시작했는데 6절에는 "가자"로 원어가 되어 있습니다.
이 두 마디를 다같이 "오라"로 번역할 수 있으나 저자가 다른 말을 사용함에는 어떤 의미의 뉘앙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예배를 드리려 성전으로 향해 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제사장이 "너희는 오라!"라고 예배에 초청을 하면 그들은 나아와서 정문 입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하고자 "사회자와 회중이 다 함께 나아가자"라고 함으로써 지성소를 향하여 향하여 나아가자고 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백성은 지성소 가까이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다만 정문 입구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서 그 자리에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원문 자체 안에 "머리"와 "허리"가 나오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경배하다"는 동사 자체가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땅에 이마를 대는 동작을 말합니다. 이 동사 하나만으로도 머리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이마를 땅에 댄다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인은 여기 다른 동사, 숙이는 동사를 사용하여 그 예배 태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밑에 <무릎을 꿇자>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존경을 표시하는 동양적 표현이 가장 완전하게 나타났다고 하겠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서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했습니다.
현대에 교회에 의자가 들어온 이후,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님께 드리는 올바른 예배 태도의 자세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본문 시를 읽으니 더욱 간절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버릇없이 꼬며, 턱을 받치고 팔을 젖히고 예배를 드려도 좋다는 생각이 상습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부터 어른 앞에서의 몸가짐을 배워왔고 또한 임금 앞에 나아가는 신하들의 몸가짐을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한다면, 오늘의 한국 기독자들은 어찌하여 의자를 쓰기 시작하여 우리의 예배 태도를 서양적인 것으로 바꾸어 버린 것인가?
<설날에 세배를 드리는 몸가짐>을 알고 있는 오늘 한국 기독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고 있는 예배 태도는 어찌하여 버릇없는 것을 그대로 용납하고 있단 말인가? 예배당 구조에서부터 서양적인 것을 그대로 모방해 온지 이미 한 세기가 지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처음 신도들은 이 존경의 몸가짐을 가지고 있었는데 물론 마음과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몸가짐이 어떻든 간에 예배만 바로 드리자고 하지만, 우리는 교회당의 의자 때문에 우리의 고유한 존경의 표시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존경의 태도는 교회 밖에서만, 우리 가정과 사회서만 쓰라는 것이 우리 양심이 편하겠습니까? 우리가 예배에 가장 좋은 마음씨를 바쳐야 한다면 왜 우리의 가장 좋은 존경의 태도는 무시해도 괜찮은 것이겠습니까? 어쩌면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편리를 위한 발전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일 좋은 날, 제일 존경하는 사람 앞에 꿇어 엎드리거나 두 발을 꿇고 앉는 것을 예의라고 하는데, 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는 이것을 하지 않아도 좋단 말입니까? 혹자는 교회당 의자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미 문화에 따라 습관화 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비록 의자에 앉아서 예배드릴찌라도 중요한 것은 <예배드릴 때의 마음 가짐과 몸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람직한 <예배자의 마음과 몸 자세>를 열거해 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 생각납니다. 1. 예배를 드리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감사의 심정이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2.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높여 거룩하게 하고, 예배자 잔신은 낮추어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들 드리자. 4. 살아온 삶을 반성하여 하나님께 회개와 용서를 간절히 구하자. 5.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자. 6.육신의 잡념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만 집중하자. 7.의자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앉지 말고, 바른 자세로 앉아 경건하게 예배드리자. 이상입니다.
4. 결론: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매주일 예배때마다 겸손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경배드려야 하겠습니다. 무릎을 조아린다(꿇는 다는 마음)는 마음 가짐을 하는 순간은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피조물로 겸손히 예배드리는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스스로 낮추는 그 마음이 하늘 보좌 위 계신 하나님께 향기로운 경배가 되는 것입니다.
매주일 예배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는 심정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제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고백하면서 예배드렸으면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무릎을 조아리는 그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세움을 받게되며,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때 우리는 세상 앞에서는 지고지순해지며, 겸손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진정한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끝.
2025. 6. 3.
山下연구원장: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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