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약설교마당

26. 야웨 만세!

solomong 2025. 4. 28. 11:10

26. 야웨 만세!

(시 93:1~5)

1). 서론: 만세(萬歲)는 원래는 장수를 기원하는 말이었지만, 의미가 확장해서 무언가를 응원하고 찬양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본문의 시편 93편은 하나님의 통치와 그분의 영원한 주권을 찬양하는 짧고 강렬한 시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강조하며, 그분의 통치가 세상을 안정시키고, 모든 혼란과 혼돈을 제어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정말 기쁜 일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났을 때 환호하는 말. 또한 국가나 지도자를 찬양할 때 쓰기도 합니다. 두 손을 하늘 높이 올리는 몸짓(제스쳐)이 동반되지요. 말은 각기 다르지만 제스쳐는 전세계 공통으로 환호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조국의 번영을 위해서, "하니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를 하면서, 늘 가슴 한가운데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통치) 그리고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 만세"를 부르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시 93편 이하 100편까지를 (94편은 제외) 신정시(神政詩)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메시야 왕국의 그림자가 되기도 하며, 본문 시편은 금요일에 불리어 6일간의 천지 창조를 끝내신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한 것입니다. 저작의 동기와 시기는 다윗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을 때라는 학설을 취합니다. 70인역의 표제에는 "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안식일 전날에 대한 다윗의 찬양"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야웨가 통치하신다."로 번역할 수 있는 "야웨 말라크"라는 히브리 원어는 최근에 와서 모빙겔(독일의 구약 시편 연구학자)이 "신년 축제" 사상과 시편을 관련시킨 이래 많은 학자들이 "야웨는 왕이 되신다."로 번역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 말은 단순히 왕이 다스린다는 통치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신년 축제" 때에 야웨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 것을 선포하는 장엄한 의식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본래 바벨론의 신년 축제에서 말둑이 새롭게 왕이 되어 그 백성과 만물을 다스리게 되는 제사의식 때에 사용된 말로서 이스라엘이 바벨론과 같이 신년 축제를 지키게 되어 야웨가 왕이 되신 것을 선포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학자들에 따라 과연 이스라엘에도 모빙겔이 생각한 바와 같은 신년 축제가 있었느냐 함에 대해서는 반드시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바이저(독일의 구약학자)는 이런 축제가 시내산 계약의 갱신을 해마다 추수가 끝나고 새로운 해로 바꾸어짐을 기하여 야웨가 이스라엘과 만물의 왕이 되심을 선포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크라우스(독일의 구약학자)는 이 귀절을 "야웨는 왕이시다."라고 이해하여 이런 의식은 예루살렘을 중심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중요한 축제가 된 다윗의 계약제(시온산 계약 축제, 법궤를 모셔오면서 드린 축제, 삼상 6장; 왕상 8장; 시 132편) 때에 "야웨는 왕이시다."라는 선언을 할 때 사용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궁켈(H. Gunkel)은 이 선언은 바벨론 신화와 관계됨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축제와 관련됐다기보다는 야웨 하나님이 종말적 통치를 하실 때, 만물과 만민의 왕이 되신 것을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국 학자 스나이드는 이스라엘에서는 "신년 축제" 같은 것은 찾을 수 없고"안식일"을 지키는 의식 속에 야웨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하는 시에 사용된 말이라고 합니다.

이 "야웨 말라크"란 제의적 선언의 말이 시편 처음에 나오는 시는 93편을 비롯하여 97, 99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시를 궁켈은 "대관시" 형태의 시라고 합니다. 야웨가 왕이라 함을 나타내는 시는 이런 시외에도 24, 47, 132편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가 바벨론의 영향을 받았느냐 아니 받았느냐 하는 문제는 시편 주석을 할 때 시의 성격과 그 내용을 파악아는 데 필요한 지식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하여 학문적인 관심은 여기서는 접어두고, 다만 "야웨가 왕이 되신다." 또는 "야웨가 통치하신다." 중 그 어느 것을 취하든지 한가지 뚜렸한 사실은 야웨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세계 만민은 물론 하늘과 땅, 온 우주를 지배하시는 주권자로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통치자라는 사상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바벨론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에게 전해졌다고 할 수도 있으나 이스라엘의 가장 초기문서라 할 수 있는 야웨문서가 창세기 2장 이하에서 밝혀주는 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그리고 인간 이해와 만물을 설명하는 자연관 속에 이미 야웨는 왕이라는 사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왕이란 말 자체는 그들의 유목민 시대나 초기 농경문화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야웨 하나님이 세계와 만민을 다스리고 주재한다는 사상은 그의 창조론 속에 이미 들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야웨는 왕이라"는 사상을 구태어 외국의 영향이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순수한 사상 속에는 "구원자"란 말이 더 짙게 나타난 것 뿐이지 왕의 주권사상과 통치사상이 이스라엘의 삶과 사상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가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시 24:7~10)

여기서 야웨 하나님이 왕이란 사상과 이스라엘의 예배의식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야웨가 왕이 되신다."고 말하는 모빙켈의 이해는 마치 신년 축제가 있는 그 의식 때에 비로소 왕이 되시고 그 이전에는 왕이 아니었다는 인상을 주며, 또 과거에 왕이 되었다가도 신년 축제때 왕이 오직 한 해만 지속되는 것을 말하며, 동시에 야웨가 왕이 되시는 것은 그 자신의 능력과 권위에서가 아니라, 제의의식 때 제사장이 선포함으로 비로소 왕권이 부여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러므로써 "야웨가 통치하신다."라고 선언함보다 그 의미에 모호성과 제약성이 있습니다. 제의의식에서 선언하는 의식적인 순서가 없어도 야웨는 왕으로 계셨고, 또 계시고 또 그렇게 계신 것입니다. 차라리 크라우스와 같이 야웨는 왕이라 하는 선언이 더 분명합니다. 이 사실은 아무도 가감을 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되신 그 순간부터 통치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의 통치권을 누구에게서 부여받았다거나 그 자신의 개발과 노력으로 왕권을 쟁취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야웨는 권위의 옷을 입고, 능력의 옷을 입고 통치하시는 왕이라 했습니다.(1절) 야웨가 자기 권위와 능력으로 통치하시기 때문에 세계가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1절) 고 했습니다. 인간 세계의 질서는 하나님의 통치력에 의하여 유지가 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지키시고 돌보시는 통치가 없다면 인간의 악의와 자기만 위하고 자기 민족, 자기 국가만을 위하는 이기심 때문에 세계는 스스로 자멸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시인은 "당신의 왕좌는 태초부터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었다."고 하며, 이 영원한 보좌는 야웨 자신이 변치 아니하시는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라 합니다.(3절) 그리고 이 하나님의 그 능력을 비교해서 "큰 물"과 "요란한 소리 같다"고 합니다.(4절)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태고 때부터 있었던 "원시적인 혼돈과 어둠"(창 1:2)을 극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태고의 바다", 신화의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힘과 어두움을 지배한다는 혼돈의 세력을 이기신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 사실을 이스라엘은 그들의 역사에서 증거해 주심을 통해 알았습니다. 능력과 권위로 구원사의 역사를 보게 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거입니다.(5절)

이 사실을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의 왕이 되심과 그의 통치히시는 역사를 친히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야웨 하나님이 왕이라 함에서 우리는 그의 통치를 받고 보호를 받고 그의 주시는 모든 필요한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왕에게 만세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웨 만세, 만세, 만세!

이상과 같이 본문을 좀 쉽게 풀이하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이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왕권, 전능하심, 능력을 노래하는 시편이기 때문에, 내용이 장엄하고 묵직합니다. 인간의 왕은 장식품이 많이 달린 옷을 입고, 손에 들고 있는 홀로 위엄의 권위를 차리나 결국은 죽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권위를 입으시고, 하나님의 보좌는 견고히 영원합니다. 본문 시인이 보기에 세상은 너무도 안정되어 있습니다. 권위와 능력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당시 신화에서 항상 바다는 혼돈의 세력을 상징했으며 .시인의 시대에는 정말 바다는 지금의 우주만큼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바다는 항상 혼돈의 세력, 또는 악의 세력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혼돈의 세력보다 능력이 크신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왕이신데, 누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시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찬양합니다. 인간의 왕은 법을 세워서 나라를 통치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의 왕에게 율법을 주셔서 세상을 통치케 하며, 사람들을 다스리시고 이끌게 하십니다. 거룩하신 분이시며, 항상 옳으신 분께서 법을 주셨으니,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시인의 요청입니다. 본분의 말씀들은 모두가 그분의 법에 따르고,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시편 93편이 우리들의 기도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늘 이런 기도가 우리들의 마음과 입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권위와 능력으로 온 세상을 선하게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분의 법은 따름이 마땅하고, 그분은 찬양받아 마땅합니다. 이 외에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엎드릴 뿐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을 통해서 기도와 찬양을 하면서 심중엔 야웨 만세 소리가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4). 결론: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분의 통치가 세상과 우리의 삶을 안정시키는 원천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혼돈을 다스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그분의 영원한 주권에 의지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세우고, 그분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 한가운데서는 "하나님! 만세!"를 부르면서 살아 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끝.

2025년 4월 28일

山下연구원장: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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