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싱싱한 종려나무
(시92:1~15)
1). 서론: 오래 두면 썩는 음식이 있고, 오래 둘수록 맛과 영양이 풍부해지는 발효음식이 있습니다. 사람도 늙어갈수록 인격에서 잡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고, 품격에서 그윽한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넓어지고, 고집과 아집이 사라지고, 배려와 이해가 깊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날카로운 비판이나 예리한 평가보다 은은한 미소에 넓은 가슴으로 격려하는 시니어(Senior)들이 있습니다.
날로 늘어나는 이 땅의 고령자들이 세월에 주눅 들지 아니하고, 종려나무와 백향목 같이 늙어도 빛이 청청하고 아름다운 시니어들로써, 싱싱한 종려나무처럼 왕성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더불어 온 세대가 그렇게 존경하며 인정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노령자들의 인생 석양길이 되기를 염원하는 심정에서 본문의 말씀을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안식일 찬미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찬미입니다. 예배용 찬미로 안식일, 성전예배에 사용되었고, 또 장막절 둘째 날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저작의 시기로 1. 포로기 이후, 2.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성전에서 죽임을 당했을 때(대하 24:20~24) 등의 견해가 있으나, 전자가 유력하다고 합니다. 내용은 1.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찬미,(1~9) 2. 의인의 최후 승리(10~15)를 말합니다.
3). 본론(Context): 시편에는 의인과 약인의 대립이 빈번히 나오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이 보여주듯이 이스라엘의 경건한 그 진실한 마음은 의인과 악인의 관계에서, 실망과 고민도 하고 회의와 비관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인은 의인의 기쁨과 자랑도 알고 있습니다. 악인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악인을 이길 수 있는 신앙적 자랑이 있음을 노래합니다.
그는 악마에게 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악인은 영원한 승리를 하지 못하리라는 신념에 차 있습니다. 의인의 한숨은 그의 찬송으로 할 수 있는 호흡을 조정하는 일이요, 그의 눈물은 주가 주시는 기쁨의 동산에 물을 대는 일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시편 37편과 73편은 악인이 왜 악을 짓고도 근심없이 재난도 없이 평안하고 권세를 누리고 자기 소유욕을 채우며 사는가 하는 인간 모순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92편 시인도 "의인은 괴롬받고 악인은 형통한다."는 모순된 일을 37편, 73편의 시인들과 같이 생각한 사람이지만, 그들과 같이 의심하고 번민하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심정을 가지지 아니 하고 있습니다. 그는 악인은 반드시 그 악의 보응을 조만간에 받을 것이고, 의인은 의인대로 그의 상급을 받는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은 고민하는 심정보다 악인의 운명을 내다보고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감사하며 찬송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잘 산다고 해도 겁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 악인은 풀처럼 무성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마다 번창할지라도 저들은 영원히 망할 것이다."(7절)라고 하면서, 악인의 운명을 풀에 비유했습니다. 우거진 잡초처럼 악인의 삶이 무성하지만 그 번영과 형통이 영구적이 될 수없고 그대신 멸망이 영구적이 되리라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패망은 하나님의 역사 간섭에 의함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은 악한 사람이 그 악으로 잘 살고 평안하게 사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편 37편, 73편 시인도 이러한 하나님의 벌을 받고 있지만, 현재 그들의 눈앞에는 악인이 망하는 것보다 그들이 더 잘 되는 것을 보기 때문에 고민에 싸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그런 모습을 당장에 해결하려고 안타깝게 원하지 않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리라는 자신의 확신만을 밝히고 있습니다. "야웨여 당신의 원수들을 보시옵소서. 당신의 원수들을 보시옵소서. 저들은 망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흩어질 것입니다."(9절)
시인은 악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자신이 보려고 하거나 자기에게 보여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보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 거듭해서 하나님이 악인들의 마지막 운명을 보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소원 표시가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의 멸망의 날이 올 것을 알고 계신다는 자기 신념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멸망의 날이 올 것을 알고 계신다는 자기 신념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을 11절에 다시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내 원수들을 볼 것입니다. 나를 대항하는 악인들에 대하여 들을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여기서도 시인 자신이 보게 해달라는 기도의 말을 하지 아니합니다. 그의 눈으로 원수의 멸망의 날과 그를 대항하는 악인들이 어떻게 말했다는 사실을 듣게 될 날이 올 것을 믿는 다고 말합니다.
이는 다만 9절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이 이 원수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니 그 멸망을 보고 그것에 대해 듣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합니다. 본문의 시인은 이렇게 원수나 악인이 자기가 보는 눈앞에서 당장 망하는 것을 보여달라는 간구보다도 하나님이 보게 해주실 날이 확실히 있을 것이라는 신념만을 표시했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전체 15절 중애서 악인의 종말에 대한 확신을 다만 9절과 11절에서만 말하고 나머지 전부의 시는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의인을 어떻게 대해 주시는가 함에 대한 감격의 노래만을 보여 줍니다. 그는 "감사와 찬송"에 차 있습니다. "오, 지존하신 분이여, 야웨 당신께 감사하고 당신의 이름을 찬양함이 얼마나 선한 일이옵니까!"(1절)라고 합니다.
본문의 시인은 자신이 악인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정을 조금도 나타내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 사랑, 그 공의의 심판, 그의 구원과 도움을 확신하고 있는 시인에게는 악인이 잘 되고 의인이 괴롬 받고 핍박받는다는 현실적인 모순이 그의 심령을 흔들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와 찬송의 기회로 삼습니다. 이런 모순을 통하여 인간적인 일보다 하나님의 뜻에 더 관심할 수 있께 되니까!, 그것을 다음 귀절애서 밝히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을 저녁에는 당신의 진실을 보여주시오니 열 줄 비파와 거문고로 수금에 맞추어 노래를 부릅니다."(2~3절)라고 합니다. 본문의 시인도 89편 시인과 같이 그의 노래의 주제를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로 삼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비파와 거문고와 수금을 타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행사를 명상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37편과 73편에서는 이런 찬양과 노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 모순이 많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을 믿는 사람이 불평이나 원망(怨望) (시 37:1) 대신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찬송하고 노래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영혼의 모습입니다. 왜 이런 기쁜 노래를 해야 합나까? "오 야웨, 당신의 일로써 나를 기쁘게 하셨기에 당신 손으로 하신 일들을 어찌 기뻐 외치지 않으리까?(4절)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모순된 일이 가득 찼고 인간의 삶에는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기 같은 일들이 많아 하나님의 계심도 그 권능도 그 사랑도 의심할 수 밖에 없지만 본문의 시인은 그 자신의 삶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의 민족사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여러 가지 구원사를 생각할 때, 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한 찬양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 야웨, 당신의 하신 일은 어이 그리 크십니까? 당신의 생각은 한없이 깊으십니다." (3절)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 그의 심오한 생각, 인간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깊이 생각해 주시는 하나님께 찬송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크고 깊은 하나님의 일과 생각을 알지 못하는 자는 다만 그가 무지하고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합니다.(6절)
하나님의 이렇게 깊이 생각해 주시고 돌보시는 은총을 받는 의인은 마치 "종려나무같이 푸르고 레바논 백향목처럼 힘차게 자라고 비록 늙어도 여전히 열매를 맺고 물기는 항상 충분하여 항상 싱싱함을 자랑한다."라고 했습니다.(13, 14절) 의인은 하나님의 종려나무입니다.
악인들에게 수난과 핍박을 당하나 하나님의 집, 그의 영광과 은혜의 샘터인 하나님과 가까운 교제를 함으로써 그는 항상 푸르르고 언제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시편 1편 시인이 말한 "푸른 신앙"을 가진 의인은 인간 모순, 사회 모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이상으로 본문의 말씀을 좀 쉽게 풀이 해보았습니다. 본문 전체를 통해서 의인과 악인의 대립이 빈번히 나오고 있습니다만, 특히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92: 12~14)라는 축복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적 우리들에게 시사해 주는 교훈의 말씀은 고난의 세월을 믿음으로 이겨내고 교회 내외에서 빛나는 삶을 사는 노인들의 품격에서 그윽한 향기를 풍겨내는 행복과 아름다음이 돋보이게 됩니다. 종려나무는 늘씬한 키에 뿌리가 깊고 튼튼하여 먼 곳에서도 물을 빨아올리니 그 수액은 고급 음료로도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종려나무는 장수와 축복의 상징입니다. 줄기마다 수많은 열매를 맺기에 번성의 상징이며, 부채 모양의 잎사귀는 승리와 환희의 상징입니다.
또한 레바논의 백향목은 소나무처럼 추위와 더위를 잘 견딥니다. 재질이 좋고 단단하여 솔로몬 성전의 건축에 쓰였고, 악기나 가구의 제작에 사용되었으며, 향이 좋아 벌레나 해충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레바논의 백향목은 모진 고난과 시련을 견뎌온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을 상징합니다.
인생의 아픔과 고난을 이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향기를 잃지 않는 사람, 품격 있는 품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 바로 그 종려나무요 레바논의 백향목입니다. 구약성서에서 갈렙은 늙었으나 영성과 믿음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도종환의 산문집에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장미는 아름답다. 그 옆에 서 보고 싶고, 그 옆에 서서 장미 때문에 나도 더 황홀해지고 싶다…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라고 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주신 선물이라면 그때마다 아름다움이 있고 맛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행복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청년시절은 詩를 쓰는 데 적합한 시기요, 노년시절은 哲學을 하기에 적합한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청년기는 직관(直觀)이 중심이 되고, 노년기는 사색(思索)이 중심이 됩니다. 또한 나이들면 인생의 이면(裏面)을 잘 보게 됩니다. 이면은 표면보다 아름답지 못하지만,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본문의 시인도 인생의 이면적인 고뇌와 고통이 실재하는 것을 애타게 하나님께 하소연을 드리게 되었지요.
오늘날 본문 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고뇌를 통한 신앙의 환희를 절실히 깨우치고 있습니다. 종적(縱的)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만은 버리지 않기에 기도와 찬양하는 삶으로 인생석양 길을 걸어가면서, 동시에 횡적(橫的)으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노년의 행과불행을 가르는 결정적 분수령은 어떠한 마음으로 삶을 대하느냐는 '마음 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기에 어떻게 삶을 영위하느냐를 본문을 통해서, 더욱 큰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4). 결론: 악인은 풀과 같이 빨리 성장하고 흥왕할 수 있으나 일시적이며 종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하지만, 의인은 악인에게 수난과 수모를 당하지만 항구적이며 참 번영을 종려나무와 백향목에 비유한 시인은 의인은 늙도록 청청하게 노익장한 것은 상선벌악하시는 여호와의 정직하게 도우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종려나무는 곧고 높게 자라고, 오래 살면서 싱싱하고 아름다운 열매로 유명하며, 레바론의 백향목은 그 향기와 양질의 목재로 유명하여 나무의 여왕으로 취급을 받듯이, 여호와를 앙모하는 의인 '시니어'들은 늙어도 그대로 정력이 풍성하고 싱싱하여 백발이 성성한 노년기에 노익장하게 살면서 지극 정성을 다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과 사랑의 삶을 바치는 인생 석양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끝.
2025. 3. 24.
山下연구원: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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