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독야청청 감람나무로다!
(시 52:1~9)
1). 서론: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형장으로 끌려갈 때, 불렀다는 절개의 시“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라는 시조는 단종 임금에 대한 애끓는 충성심을 읊은 것입니다.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하겠다는 굳센 절개와 꿋꿋한 성품이 더욱 돋보입니다. ‘낙락장송’은 자신의 굳은 결의를 표현한 것이며, ‘백설이 만건곤할 제’는 추위에 모든 초목이 다 시들어 버렸을 때를 뜻하기도 하지만, 세조의 불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자신은 죽어서도 살아 있을 때 못지않은 푸르름을 항상 세상에 내뿜어 만인의 마음을 푸르게 하겠다는, 일종의 사회, 인간, 교육에 거울이 되겠다는 심상이며, 다른 사람이 다 퇴색하더라도 나만은 홀로 푸르리라 충성을 지향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다윗의 시 속에도(시 52:8),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라고 하는 것도, 다윗이 언제 사울에게 잡혀서 죽게 될지 모르는 도망자의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지조를 읊조린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험준한 세상살이 속에서도 “독야청청 감람나무로다!”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지조 있는 신앙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시편 52~55편은 일련의 다윗의 교훈 시입니다. 본문은 표제가 밝히는 바와 같이 에돔인 도엑이 다윗과 아히멜렉 제사장을 사울에게 고발하므로 제사장 족속들이 참변을 당하였을 때의 저작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악인과 의인의 대조가 뚜렷합니다. 즉 내용은 악인과 그의 종말(1~5)과 의인과 그의 종말(6~9)을 대조해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본문 시초부터 재물을 의지하는 일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 집의 뜰에서 자라나는 감람나무처럼 싱싱하여 사철 푸름과 열매를 자랑할 수 있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본문 8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푸른 감람나무”에 비교한 것은 시인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한 아름답고 지조 있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고 그 법대로 살려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그 잎사귀가 4 시절 푸르고, 철 따라 열매 맺는다.”(시 1:3)라고 했는데, 본문의 시인도 자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자연이 사람보다 훨씬 깨끗하고 순진하여 그 자체에서 하나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역사하심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원리에서는 자연은 사람을 위해 있는 존재요,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인간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기 수치를 은폐하기 시작한 때부터 인간이 가진 순박성과 깨끗함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연을 앞세우고 인간은 그 뒤에 숨어 버렸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신 하나님의 첫 질문을 받았을 때, 인간은 이미 그 자연만도 못해서 나무 사이에 자신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연의 지배를 받아 망하게 된 사실을 ‘홍수 설화’에서 알려 주고 있습니다. 흙으로 빚어져 만들어진 인간이지만 그는 죽어서 그 흙 속으로 묻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이렇게 허무한 인간, 자연의 미물만도 못하면서 창조 당시 하나님이 주신 특권만 내세우고 창조주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마음도, 생각하는 마음도 없는 오만한 인간의 운명을 이 짧은 시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 다윗은 이 오만한 인간을 여기에 사용된 원어의 뜻이 “악명 높은 영웅”(공동 번역)은 좀 과장된 표현이며, 어떤 학자는“세도가”라고 번역하는 것은 좀 지나친 직설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자신이 남다르게 가진 것이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거만하고 횡포를 부리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혀가 삭도 같이 간사하여 남을 해치는 말과 고자질은 골라가며 해서 함정에 빠지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이며, 재물이 풍부함만을 의지하는 자며(7절),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악한 계획을 치밀히 짜고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이요(1절), 그 악으로 스스로 지반을 견고케 하여 아무도 흔들어 넘어뜨릴 수 없는 구조적인 악을 구축한 사람이요(7절), 그는 독살스러운 혀를 가졌고(2절) 남을 속이는 간사한 일만 하고, 착한 일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대신, 악만 감행하는 사람입니다. (3절)
특히 그의 악은 그의 말에서 더 심함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남을 해치는 말은 골라가며 해서 듣는 사람이 함정에 빠지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물질적인 부로써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는 명령하는 말투로 선한 사람과 의로운 사람을 해치며 사람을 모함하며 함정에 넣어 자기 세력만을 구축하고 있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악인입니다. 신약 야고보서가 혀의 악함을 말한 그대로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약 3:6~10)
그런데 이렇게 거만하고 악에 가득 찬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본문의 시인은 담대히 그의 종국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멸절시키리라, 영원히 너를 이 세상에서 뿌리까지 뽑아내시리라.”(5절) 아무리 남을 해치는 권력과 세도를 가졌다고 해도 사람은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릴 수 없지만, 하나님은 정의의 채찍을 드시어 그를 영원히 이 땅에서 멸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사람이 사는 일생이 자기가 가진 재물로 행포(行暴)를 부리고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재물로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궁지에 몰아넣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혜요, 살아가는 생활철학입니다. 인간의 삶은 물질의 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한다.”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함을 말합니다.
시편 49편의 시인이 말한 바와 같이 재물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허무한 줄 모르면 그는 죽고 마는 짐승 같은 허무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치부하여 그 영광이 더해가는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죽을 때 그 재물과 영광을 지하로 가져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이 사랑을 의지함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 “헷세드”는 하나님의 계약 사랑이라 한번 사람을 돌보시고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그 사랑은 변치 않으시고 성실하게 그 사랑을 계속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의지한다는 것은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날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습니다. (롬 8:36)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증거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가뭄 속에서도 싱싱하게 자라가는 하나님 전에 있는 감람나무처럼 하나님이 사랑을 의지하는 사람이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상에서 재물을 의지하는 악인의 종말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의인의 번성에 대해서 풀이를 해 보았습니다. 악인은 악을 사랑하며 재물과 권력을 의지하지만, 그의 종말은 살아있는 땅에서 뿌리까지 뽑히는 철저한 멸망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악인은 사울 왕의 심복 ‘도엑’으로 혀가 삭도 같이 간사하여 제사장인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먹을 것과 무기를 주었다고 사울 왕에게 고자질하여 결국 아히멜렉까지 죽이는 악한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시인인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8절)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현대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다윗 자신은“독야청청 감람나무로다!”라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울 왕에게 10여 년간 쫓겨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던 다윗의 처지였으나, 다윗 자신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다고 고백한 것은 지금 그는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자이었으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록 그가 도망자의 신세이지만 다윗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집에 머물고 있다고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언제 사울에게 잡혀서 죽게 될지 모르는 도망자의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하나님의 집에 있는 감람나무와 같다고 선포하듯,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이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 일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우리 안에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면 지금 힘든 그곳도 성전이고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도 하나님이 집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푸른 감람나무>는 가나안 땅(중동지역), 사막과 같이 황폐하고 열악한 들판에 늘 푸름과 윤기 있게 자라나는 나무입니다. 감람나무 열매는 모든 질병을 파멸시키는 약재료로도 쓰이며, 감람나무 열매에서 추출되는 기름으로 성전을 밝히는 등불이 되며, 제사를 위해서 사용되는 모든 기름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다윗이 있던 광야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집이고, 자타가 인정하는 <독야청청 감람나무로다!> 라는 호칭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광야의 한 복판 같더라도 주님이 주실 푸른 감람나무의 은총을 기대하면서 언제나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사모하는 심정으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세상만사를 보면 악인은 잘되고 의인은 항상 불이익을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도엑은 악을 사랑하며 재물과 권력을 의지한 나머지, 그의 종말은 살아있는 땅에서 뿌리까지 뽑히는 철저한 멸망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윗은 언제 사울에게 잡힐 몸이 될지 생사가 미지수지만, 도망자의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를 오늘날 시적 표현으로 “독야청청 감람나무로다!”라는 선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역시 인생길이 힘들고 세상살이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우리 안에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면 지금 힘든 그곳도 성전이고,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도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집에 머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자타가 인정하는 <독야청청 감람나무로다!> 라는 호칭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광야의 한 복판 같더라도 주님이 주실 푸른 감람나무의 은총을 기대하면서 언제나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사모하는 심정으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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