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바울이 전하는 以信義認의 복음
(본문: 롬3:21-31)
1). 서론: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는 하나님의 원리인 義認은 하나님 편에서는 희생입니다. 즉 예수님의 피를 흘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인간이 할 도리는 믿음입니다. 즉 예수님의 피의 가치를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인간이 자랑할 분야는 없습니다. 오직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생활의 결과는 성결(聖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以信義認의 기본 교리는 하나님의 義의 출현(본문 3:21-26)과 인간의 믿음의 길(본문 3:27-31)입니다. 이는 義認敎理의 二大前提입니다. 義認은 하나님 편, 信仰은 인간 편의 기본적인 자세인 것입니다. 전자는 능동적이요, 후자는 수동적입니다. 義認은 인간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요, 信仰은 그것을 받는 인간의 태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의 전제인 동시에 절대적인 전제인 것입니다. 이상의 것이 <바울이 전하는 以信義認의 복음>의 핵심입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묵상해 보기로 합시다.
2). 본론(Text): ①.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義가 미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범죄 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였으매’(ἥμαρτον)의 범죄 한다는 헬라어가 부정과거형으로 쓰일 때는, <전인간의 죄의 총화>(결정적인 역사적 사실)를 가리키는 것으로, 아담의 범죄로 전 인류가 타락한 사건을 지칭합니다.
②. 3:24-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이 말은 전절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와 연관된 말입니다. 즉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형상에서, 義롭게 하심을 얻은 형상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 전환은 값없이 주신 선물이요, 또한 이 선물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성취한 것입니다.
③. 3:25-26- ⑴.“예수를 하나님이.......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여기 롬3:25-26 兩節은 <신학의 정수(精髓)>라고 불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써 神. 人間의 화목제물이 되게 하시고, 인간의 죄를 赦하시사 그들에게 義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불의한 자를 義롭게 하심에서 하나님의 義는 나타난 것입니다.
⑵. ‘화목제물’(ἱλαστήριον)이란 이 낱말은 신약에서 본문 이외로 히9:5(贖罪所의 뜻)에만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동의어로서 ἱλασκομαι는 눅 18:13에 ‘불쌍히 여기옵소서!’라는 뜻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죄소란 장소보다 속죄하는 제물입니다. 그리스도는 속제의 제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화목의 교리에 우선적인 조건은 하나님 편의 만족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公義性의 만족 없이 화목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⑶.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참으시는’(ἀνοκή) 이 낱말의 뜻은 힘 드는 일에 참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간과하심’(πάρεσις)이란 죄를 사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죄가 형벌 없이 무조건 무시되는 법은 하나님의 공의성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롬1:18-32) 이는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하나님께서 죄를 취급하신 태도를 말씀하는 의미입니다.
④. 3:27-31-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義認의 기초로서 하나님의 義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원리는 인간 편의 믿음입니다. 거기에는 일체의 인간적인 功德이 배제되기에, 그러므로 인간의 자랑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3. 29)라는 말씀처럼 믿음의 길은 유대인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이셨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신약의 하나님은 유대인에게만 독점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은 이방인을 구원에 참여시키는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以信義認이란 새로운 구원의 공로가 공포된 限에는, 구원은 유대인의 한계를 넘어서,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서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바울이 전하는 以信義認의 복음은 멀고도 풍부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은 소극적 또는 적극적으로 의신의인의 복음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소극적으로 구약의 대강령인 모세의 율법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실패한 것은 롬3:20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는 아브라함은 선민의 조상이나 그가 의롭게 된 것이 믿음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창15:6, 롬4:3) 인류가 그 시조 아담에게서 전적으로 타락하여 멸망 아래 있었고,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에게서 구원에 이른다는 것(롬5장)은, 이 복음의 필연적인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의지한 이스라엘이 실패함으로 이방인이 먼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이스라엘이 또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러, 전 인류가 구원의 대단원을 이룩한다는 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실증이며 바울의 역사철학이었던 것입니다.
義로 ‘인정한다.’(δικιόω)는 뜻은 “의로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롭게 만드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할 경우(롬3:4, 24), 아무도 하나님을 의롭게는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만, 그의 의를 증명할 뿐입니다. 의로 증명할 분은 스스로 의로운 분, 즉 하나님 외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의로우시고 또한 믿는 자를 의롭게 하십니다.(3:26)
인간이 의로 인정되어야 함은 그가 현재 죄인의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가 이점을 극히 명백히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복음을 논하기 전에 서론적으로 우주적인 죄악 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롬 1:18-3:20) 죄인 된 인간이 의로 인정되는 길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참 인격이신 그리스도(하나님)와의 진실 된 관계입니다. 그에 대한 신뢰이며 복종인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의로 인정되는 믿음이란 이런 엄격한 의미에서 그 믿음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궁극적 정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면, 믿음에는 그 대상인 그리스도가 극히 중요한 意義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믿는다는 동작 자체에 있지 않고, 누구를 믿는가에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그가 자기의 오래간 찾고 있던 그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예언한 바요, 신약에서 선포된 바이며, 신. 구약의 초점이십니다.
‘바울이 전하는 以信義認의 복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식이며 그리스도는 복음 그자체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인 양성을 겸전하시므로 의인에의 터전인 거룩한 役事를 성취하셨습니다.(3:24-25) 이와 같이 신인 간의 유일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엄격한 의미의 믿음은 있을 수 없고, 죄인의 義認이란 사실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義認에의 유일의 길입니다.
인방인은 본성적인 도덕으로 義認의 길을 찾으나, 그 본성이 타락하여 義認의 이르지 못하였습니다.(롬1:18-32) 유대인은 율법을 엄수함으로 義認을 받고자 하였으나, 율법은 오히려 그 무능성만 증명하였고(롬3:20), 그들은 의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롬2:1-3, 8) 여기에 하나님은 율법 외에 義認의 길을 주셨으니(3:24), 곧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義認에의 유일의 길이며 이 양자는 필연적인 因果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행함이 필연적으로 따라오나, 믿음 그 자체는 행함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반대입니다. 믿음이란 행함이 전연 없이 하나님의 恩惠로 주시는 의인의 선물을 받는 행동입니다.(롬4:2-5) 義認은 그의 과거나 현재가 어떠하든 회개하며 단순히 “내가 믿노라.”(πιστεύω)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사실인 것입니다. 행함이란 義認의 선행 조건이 아니라, 그 필연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義認이 되기 위해서는 사죄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속죄적인 죽음이 義認이 되는 근거가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義認은 사죄 이상의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교제를 원하셔서 인간을 당신의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창1:27) 그러나 인간은 범죄 함으로 하나님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그와의 교제도 상실하였습니다.
죄를 寬容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의로 認定하신다는 것은, 신. 인간의 평화가 수립되고(롬5:1), 잃어버린 교제가 회복되어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전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첫 번째의 교제처럼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인 것입니다.(롬8:15-17) 또한 그것은 단순히 아들이 되는 것 이상으로 성령을 받는 것이며(롬5:5, 8:15-17)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8:1), 그래서 하나님과 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 그는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라고 영원한 개가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以信義認>이란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구약에서 예언되고, 신약에서 발전된 바이며, 그리스도교 진리의 대강령을 가리키는 것이 됩니다. 이는 구약의 오랜 준비기간 중에 율법이란 토양 속에 묻혀 왔으나, 때가 되어(엡1:9), 사도바울을 통하여 찬연히 계시되고 선포된 구원의 公道인 것입니다.
그 후 교회가 팽창되고 Catholicism의 교권주의가 이 공도를 흐리게 하였을 때, <오직 믿음, sola fide>의 기치 하에 개혁가들은 바울이 전하는 以信義認의 복음을 재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以信義認의 복음의 적은 율법주의나 교권주의만이 아니라, 시대를 따라서 각양각색의 형태로써 진정한 신앙 자들에게 엄습해 오고 있습니다.
믿음은 심중의 문제이며, 믿음으로 義로 인정되는 것은 심중의 공도입니다. 우리 신앙 자들은 이 밝은 구원의 공도를 심중에 堅持하고, 외부로부터 엄습해 오는 그 어떤 믿음의 적도 그 정체를 예리하게 규명하여 과감히 배격하면서, 이 ‘바울이 전하는 依信義認의 복음’을 늘 감격한 심정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4). 결론: 인류의 시조 아담의 원죄로 전 인류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죄가 형벌 없이 무조건 黙過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성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간 구약의 대강령인 모세의 율법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실패하여,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었고, 다만 율법으로 죄를 깨달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屬性인 公義에 만족치 않고는 神. 人 사이에 和睦은 있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써 神. 人間의 화목제물이 되게 하시고, 인간의 죄를 赦하시사 사람들에게 義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義를 이루려는 하나님의 원리인 義認은 하나님 편에서는 희생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피를 흘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인간이 할 도리는 오직 믿음입니다. 즉 예수의 피의 가치를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인간이 자랑할 분야는 없습니다. 오직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以信義認의 기본 교리는 하나님의 義의 출현(본문 3:21-26)과 인간의 믿음의 길(본문 3:27-31)입니다. 義認은 하나님 편, 信仰은 인간 편의 기본적인 자세인 것입니다. 전자는 능동적이요, 후자는 수동적입니다. 義認은 인간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요, 信仰은 그것을 받는 인간의 태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의 전제인 동시에 절대적인 전제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전하는 以信義認(Justification)의 복음’을 늘 감격한 심정으로 살면서, 매일의 삶은 聖化(Sanctification)의 길로 전진해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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