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8)

49. 신앙의 차원 높은 미덕

solomong 2025. 2. 13. 10:45

 

49. 신앙의 차원 높은 미덕

(본문: 살전 5:16-18)

 

1). 서론: 광명한 태양을 정면으로 향하게 되면, 검은 그림자가 우리 뒤에 드리우고, 밝은 해를 등지고 가면, 검은 그림자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껴 봄직도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신 주님을 가슴에 안고 인생길을 가노라면, 검은 Satan의 유혹과 흑암의 세력이 우리를 해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을 背信하고, 우리 홀로 가노라면 검은 그림자인 마귀가 앞서가면서 힘없다고 얕잡아 보고, 갖은 장난을 다 치면서 우리 생명을 위협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도 항상 기뻐’하고, ‘어떤 경우에 직면해도 기도’하며, ‘평범한 일에도 감사’하면서 인생길을 걷노라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고 ‘신앙의 차원 높은 美德’을 발하면, 그 어떤 세력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승리의 凱歌를 부른 바울의 그 氣槪가 우리들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高次元의 신앙적인 미덕 3가지를 좀 더 세밀히 묵상해 보기로 합시다.

 

2). 본론(Text) :①. 항상 기뻐하라. -이것은 人間的인 기쁨이 아니라, 주 안에서 가지는 성령의 기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은 환란을 극복하면서(고후7:4),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빌4:4) 이런 기쁨은 <기쁨의 서신>이라고 일컫는 빌립보서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빌1:4, 18, 2:17, 18, 3:1, 4:10)

 

②. 쉬지 말고 기도하라.-환란 중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셨기에 타개할 길을 열어 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하루 24시간 격식을 갖추어 기도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봅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정신으로 살면서, 변하는 삶의 정황에 처 할 때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짤막하나마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③. 범사에 감사하라.-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결과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는 우리들의 모든 삶의 상황을 말합니다. 조건부로 감사하는 것은 타산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불신하는 태도라고 여겨집니다. 我田引水格으로 생각지 말고, 하나님께서 궁극적인 선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면,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위 3가지는 서로 연관된 성격을 지녀서, 신앙의 차원 높은 미덕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때나(기쁨), 어떤 경우나(기도), 평범한 일에도(감사)>, 신앙의 一貫性을 유지하라는 바울의 강권적인 교훈입니다. 동시에 이는 하나님의 뜻이요, 要求이시기 때문에 삶의 座右銘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없는 기쁨이 있을 수 없고, 감사 없는 기도가 진정하지 못하며, 기쁨이 없는 감사도 없기 때문입니다.

 

3). 본론(Context):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강권적인 권면은 일맥상통하는 말씀이라고 사료됩니다. 3가지 기본 어(기쁨, 기도, 감사) 앞의 수식어는 [항상, 늘, 모든 일]이란 것은 수학에서 共通分母와 같이 3가지 기본 어 앞에 붙여서도 그 뜻이 다 통합니다. (예: 항상 기쁨, 항상 기도, 항상 감사, 늘 기쁨, 늘 기도, 늘 감사, 모든 일에 기쁨, 모든 일에 기도, 모든 일에 감사)

 

그래서 3가지는 삼위일체적인 성격을 지녀서 신앙의 높은 美德의 三面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도 없는 기쁨이 있을 수 없고, 감사 없는 기도가 진정하지 못하며, 기쁨이 없는 감사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3가지 미덕은 다 같이 그 일관성(항상, 늘, 모든 일)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신앙의 차원 높은 미덕은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불변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살다보면 기쁜 일이 생겨서 기뻐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급한 일이 생기고 어려움이 있으면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합니다. 우리를 도와 준 사람이 있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쁨, 감사 및 기도는 누구나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는 있지만, 그 앞에서 붙어 있는 수식어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렇게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 근거의 말씀으로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기록한 빌 4:4절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다시 말하니 기뻐하라. 한번 기뻐할 것 뿐 아니라, 또 강조해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요구사항입니다. 기뻐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고,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뻐하라고 했으므로 그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서 우리 자신들이 기쁘다고 고백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쁘지도 않는데 어떻게 기쁘다 고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기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요구에 순종함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쁘다고 말을 해야 되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일까요. 기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필시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실 뜻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限界狀況에 봉착해 있는 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느냐고 의문스럽지만, 슬픔과 불만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기쁨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요구와 약속사항입니다. 너무나 쉽게 기쁨부터 주시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기쁘지는 않지만, 믿고 기도하면 기쁨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인생(人生)의 生의 의미는 소(牛)가 통나무(一)위에 서 있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소가 통나무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안 하겠습니까. 언제 개울가에 떨어질지, 언제 낭떠러지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의 한계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을 스스로 피해서 자기가 원하는 기쁨을 향유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有限性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막혀 있는 죄가 벗겨지면 하나님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이로 인하여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Set로 되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이 말씀대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도 오래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잠시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人間實存 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죄의 성품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고 살아도 다시 불안해지고 절망하고 실망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과 기도가 떨어져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는 끊임없이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보통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면서 우리 자신을 省察하는 순간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도 참 힘이 듭니다. 좋은 일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만, 나쁘고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감사합니까.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잘 날 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못났을 때도 사랑하고, 내가 바로 걸어갈 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서 상처를 입었을 때도 사랑하여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이 찢기시고 피 흘려서 우리에게 죄와 용서를 주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에 만강에 넘치게 감사할 뿐입니다. 스펄전은 “촛불에 감사하는 자에게 전등불을, 전등불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별빛을,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천국을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결론: 그것도 내가 하나님 앞에 일방적으로 원하는 것을 기도할 때가 아니라, 조용히 하나님 앞에 귀를 기울일 때, 왜 내가 기뻐하지 않을 수 없고, 왜 내가 감사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가를 하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뻐하는 것, 기도하는 것 및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요구이지, 세상의 조건이 채워질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항상, 늘, 모든 일>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