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목회자의 自我正立
(본문: 딤전 1:5-7)
1). 서론: 세계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분명한 자아의식, 즉 자아정립을 하고 살았다는 점입니다. 환경이 좋아서 위대해진 것이 아니며, 인물이 뛰어나서 위대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얼마나 분명한 자아정립을 바르게 하여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모세, 예레미야를 불러 쓰실 때, 예수님이 많은 제자들을 불러서 큰 사역을 이루실 때, 하나님은 먼저 그들의 자아정립을 위한 개발에 역점을 두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목회자의 자아정립은 교회발전에 核心이라고 사료됩니다. 본문을 통해서 바울은 자기 인생의 종점에서 자아정립을 하면서, 에베소에 머물러 전도하는(牧會) 제자 디모데를 향한 자아정립을 시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음, 양심 및 믿음이 서로 연관된 것으로, 결국 신앙과 윤리의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목회자인 주의 종들도 본문을 통해서, 자아정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2). 본론(Text): 목회서신인 디모데 전서는 바울 인생황혼기의 自我整理를 하면서, 제자 디모데에게 올바른 목회 관을 가르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바울은 제1차 옥중생활까지, 그간 분주한 선교활동을 통해서 10개의 서신을 각 교회로 보내면서, 그리스도교의 기본교리를 밝힌 신학저서라고 하겠습니다. 당시는 옥중에서 석방되어 선교활동에 불타는 심정이었기에 그의 필치는 예리하고도 정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제1차 옥중에서 석방되어 宿望의 땅 서반아를 방문하고, 발길을 돌이켜 동방의 옛 선교 땅을 목회 심방하였을 때는 바울은 이미 자기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이 기간에서 제2차 옥중생활과 순교하기까지 그는 사랑하는 2 제자에게 3편의 서한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노사도의 자아정리의 책이었고, 제자들에게는 목회를 위한 영원한 指針書였습니다.
①. “청결한 마음”(καθαρᾱς καρδίας) -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눅 10:27)라는 말씀 속에는 깨끗한 마음에서 ‘사랑이 나옴을 밝히고 있으며, “마음이 청결한 자는.......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는 말씀에도 청결한 마음에서 거룩한 사랑이 胚胎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②. “선한 양심”(συνειδήρεως ἀγαθῆς) -양심이란 ‘같이(σύν) 안다’(οἶδα)라는 뜻으로, 양심을 통해 공통의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도덕적 감정 혹은 옳고 그른 것을 판정하는 내적 능력을 말합니다. 환언하면, 良心은 知覺에서 출발하여 善惡을 아는 기능이며, 동시에 情緖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선한 도덕적 정서감정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③. “거짓이 없는 믿음”(πίστεως ἀνυποκρίτου) - “거짓이 없는”것이란 형용사는 사랑을 수식하고 있습니다.(롬12:9, 고후6:6)이 절은 믿음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사랑을 수식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사랑이란 이미 받은 신앙을 수락하는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성실성의 열매라고 하겠습니다.
3). 본론(Context):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스승의 입장에서 명령조로 권하는 동기는 거짓교사들을 대항하라든지 혹은 그들을 교회에서 내쫒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목회자로서의 자아정립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바울 자신도 자신의 마지막 인생길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목회자의 바람직한 자기정비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 권면의 말씀은 바로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아정립의 基本的이며, 具體的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향하는 자아정립은 “청결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마5:8)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간절히 사모하는 신적이요, 거룩한 사랑(ἀγάπη)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며, 또한 청결한 마음에서 거룩한 사랑이 培養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동기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일차적인 자아정립이 되면, 그다음 단계로서 양떼들과 인간을 향하는 “선한 양심”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9.엔 “착한 양심”, 3:9에는 “깨끗한 양심”이란 표현이 있습니다만, 같은 뜻으로 바울이 사용한 말들입니다. 주경가 Bengel은 “믿음은 고귀한 향유와 같고, 착한 양심은 유리그릇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여간, 양심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도덕적 감정 혹은 옳고 그른 것을 판정하는 내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환언하면, 良心은 知覺에서 출발하여 善惡을 아는 기능이며, 동시에 情緖인 것입니다. 목회자의 자기 양떼와 인간을 향하는 善과 惡을 구별하는 倫理意識을 말하는 것입니다. 간혹 “아무개 목사는 비양심적이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회자이면 비양심적일 수가 없습니다. 비양심적인 목사라면, 그는 하나님도 사랑치 않는 자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기 때문에 비양심적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비해야하는 목회자의 자아정립은 “거짓이 없는 믿음”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가 선한 양심의 소유자이고, 종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진실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 양심 및 믿음의 3쌍은 목회자의 내적 마음과 삶이 발전해 가는 과정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사실적으로 말해서, 이 3가지 낱말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이며, 또한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의 결과로서 사랑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사랑의 개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구원을 얻었기에 하나님을 믿는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성실한 결과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짓이 없는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희생적인 사랑이 우리들에게 부여 되었고, 그래서 다시 그 사랑에 感泣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마음, 양심 및 믿음이 서로 연관된 것으로, 결국 신앙과 윤리의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배인도와 삶, 즉 교인들에게 경건의 훈련을 시키는 것(설교, 행정)과 교회 밖의 사회생활이 일치되어 하나의 조화로운 생활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목회)이 절대로 예배당 안에서만 국한 될 수 없고, 목회와 믿는 행위는 믿는 신자들 중에서만 아름다울 수 없고, 일반 불신자들 사이에서도 자랑할 수 있는 신앙의 증거가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신앙도, 목회도 허위요, 가식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만 잘 보이고,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비판과 미움과 원망을 사면, 그 신앙과 목회는 윤리를 무시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서가 말씀하는 신앙은 윤리도덕과 더불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정신이 그렇고,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설교가 다 그러합니다. 바라건대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삶을 살아서, 목회자의 자아정립이 확립되어야 하겠습니다.
4). 결론: 바울은 자기 인생이 종착지점에 다가왔다는 자의식에서 자기정비를 하면서, 동시에 에베소에 머물면서 목회하는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거의 명령조로 자아정립의 내용인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의 결과로서 사랑”을 강권하였습니다. 이는 <마음, 양심 및 믿음이 서로 연관된 것으로, 결국 신앙과 윤리의식>을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주의 종들인 목회자들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강권한 자아정립을 점검하고, 주님과 세상 앞에서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예배인도와 삶, 즉 교인들에게 경건의 훈련을 시키는 것(설교, 행정)과 교회 밖의 사회생활이 일치되어 하나의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신앙(목회)이 절대로 예배당 안에서만 국한 될 수 없고, 목회와 믿는 행위는 믿는 신자들 중에서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일반불신자들 사이에서도 자랑할 수 있는 신앙의 증거가 나타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됩니다. 성서가 말씀하는 신앙은 윤리도덕과 더불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정신이 그렇고,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설교가 다 그러합니다. 바라건대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삶을 살아서, 목회자의 자아정립이 확립되어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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