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46. 바울의 가치관 전향(轉向)

solomong 2025. 2. 6. 11:14

46. 바울의 가치관 전향(轉向)

(본문: 빌3:1-11)

 

1). 서론: 가치관에 대한 정의(定義)를 상대적, 절대적 견지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치관이란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어떤 대상에 부여하는 가치나 의의에 관한 견해나 입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상대적인 견지에서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격이나 생활방식 그리고 그 사람의 바람직한 생애는 그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은 인생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자,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으로 볼 때,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하에서, 세상과 맞서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인생의 좌표, 잣대, 무게 중심이며,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상대적이고 주관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 살아 온 그의 전반부의 생애를 부정하고, 절대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켜서 살겠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차제에 우리들도 여기에 투영시켜 생각해 보아야만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①. 지금까지 바울은 고요하고 감격적인 어조로 자신의 간증과 빌립보교회에 대한 권면을 해 왔습니다. 이제 본문에서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를 하면서, 자신의 가치관 전향에 관한 것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육의 할례와 율법적 행위 등의 형식적인 행사를 중요시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과거 육적(肉的) 행복의 조건을 열거하면서, 육체를 신뢰하는 유대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②. 만약에 육적인 화려한 조건을 구비하지 못한 자이면, 감히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육체적으로 거의 다 구비해서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했고, 세상 사람들이 동경하고 흠모할 만한 좋은 여건과 상황 속에서 살아 본 경험자이었기에, 버젓하게 말함으로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설득력 있는 것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⑴.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율법의 명령에 비추어 보아도 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창17:12, 례12:3),

 

⑵.“이스라엘 족속이요”: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적자계통이며, ‘축복’으로는 명예스런 야곱의 혈통을 계승한 가문의 후손이란 뜻입니다. ⑶. “베냐민의 지파요”:이스라엘 12지파(야곱의 아들) 중에 베냐민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던 아내 ‘라헬’의 소생이란 것이고, 남북이 분열 할 때, 유다지파에 충성을 다한 지파(왕상12:21)라는 것입니다.⑷.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히브리인 중의 Greek어를 사용하던 Greek계 히브리인과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히브리어로만 말하는 골독한 히브리인으로서, 양친은 ‘다소’에 살면서 히브리어로 말하고, 히브리의 풍속을 엄수하는 히브리인의 정체성(Identity)을 지켜 왔다는 것입니다. ⑸. “율법으로는 바리새인”:바울은 그 당시 유명했던 학자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던(행22:3), 생래(生來)의 바리새교인이었다는 것입니다.(행23:6) 이 파는 그 기원을 마카비 독립시대(142~37 BC.)에 두었던, 유대의 가장 유력한 정통파라는 것입니다.

 

⑹.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그의 기독교회에 대한 박해의 기록은 사도행전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고(행8:1-3, 9:1-2), 하나님과 그의 가문의 율법을 위한 열성은 구약에서 최대로 칭찬할 만한 것이었습니다.(민25:11, 왕상19:10, 시69:9) 또한 바울은 자기의 과거를 자랑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그 과거를 정죄하는 것은 유대인들을 정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⑺.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바울은 율법주의자로서의 엄격했던 전반의 생애를 회고한 것입니다.

 

③. 돌이켜 볼 때, 참된 의(義)는 율법준수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것을 천명(闡明)함에 있었습니다. 하여간에, 바울은 인간적 행복의 조건이었던 가문, 학벌, 명예 및 권력 등이 <‘그리스도를 위해’>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뜻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동기가 된 변화!, 환언하면, 그리스도로 인한 자기 삶의 가치관이 전향(轉向)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 것은 전부 분토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바울은 좋은 가문과 자랑스러운 명예의 사람이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었으며, 율법적으로 거의 흠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 당시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에게 수제자로 배운 학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젊은 공회원으로서 권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인간적으로는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그의 가치관이 전향되었습니다. 그 동안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배설물로 여겼다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주변의 아우성 소리는 한마디로 말해서 부귀영화입니다. 우리들도 여기에 현혹되어 때로는 갈팡질팡 할 때도 있었습니다. 넉넉한 재산, 남들이 우러러 보면서, 부러워하고, 명예롭고 행복한 삶을 누려 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소유한 자는 계속 더 가지고 쉽고, 못 가진 자는 소유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름길, 쉬운 길을 찾아서, 어찌했던 평안히 잘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 거개의 인생살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분수와 본분을 망각하고, 욕심 부리는 자들을 향하여 성경은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낮은 형제는(영문 번역엔 ‘가난한 자’)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하나님께서 높여 주는 것),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1:9-11)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돈이 없는 것이 서럽고 가난한 것이 부끄럽지만,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를 얻었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는 모든 것을 소유한 가장 큰 부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분도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따라서 예수 안에서 “자기의 높음”,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된 점을 자랑하고 긍지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부요하고, 권력이 있고, 인기가 있는 자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것에 비하면, 이 땅의 모든 영광과 자랑은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상대적인 가치관에만 몰두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달으라고 성서는 준엄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12:16-21), 허탄한 생각을 경고한 비유(약4:13-14) 등에서 허망한 가치를 자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진주장사의 비유(마13:45-46)를 통해서, 가치관의 전향(轉向)을 간곡하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신앙생활을 굳건히 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의 아픔이 가로 놓일지라도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퇴계(退溪)는‘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이란 말을 그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매화는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으로 선비의 올곧은 기개를 상징합니다. 그의 시 가운데, 당나라 ‘황벽’ 선사의 시,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뼈를 깎는 추위를 한번 만나지 않았던들,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을 생각하면서, “뜰 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기러기 슬피 울제 생각마다 산란하다.(一樹庭梅雪滿枝 風塵湖海夢差池 玉堂坐對春宵月 鴻雁聲中有所思)”엔 선비정신이 배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옛날의 곧은 선비들은 가난하게 살아도 그 청빈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지조를 지키고 체신과 품위에 흠을 남기는 일에 삼가 했으며, 학문을 닦고 도야를 넓히는데 일생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사는 것이 아무리 고달파도 신분의 지조를 견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조상들의 청빈정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인간적으로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전부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생각함은 어찌 옛 선비정신에 비할 수 있으리오! 우리 역시 바울의 이 고결한 가치관이 우리의 가치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결론: 옛날부터 충성과 효도는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충성과 가치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한 고난도 감수할 수 있는 그가 참 기독자입니다. 진실 된 믿음이란 순간순간마다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이 유혹해 올 때, 신앙의 결단으로 전향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참 신앙에 대한 연속적인 결단이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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