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44. 聖三位의 하나님

solomong 2025. 2. 4. 11:50

44. 聖三位의 하나님

(벧전 1:2)

 

1). 서론: 하나님의 본체는 한분 하나님이시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써 세 位格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의 성경말씀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라는 말씀에 준해서 본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는 피조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의 말씀을 상고해 보면,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조금 이해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사람의 본체는 한 사람이요, 位格은 셋입니다. 우리 한 사람에게는 영, 혼, 몸으로서 세 位格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의 실존은 삼위일체성적입니다. 즉, 우리 사람의 마음은 知性, 感性, 意志로써 세 位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聖三位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삼위일체의 본체는 하나이요, 位格이 셋이라는 의미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란 말씀인데, 이는 바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피조 되었기에, 여기에 투영시켜 생각해 볼 때, 우리 사람은 영, 혼, 몸의 세 位格으로 구성 되었으며, 우리 사람의 속마음은 知性, 感情, 意志로 삼위일체성적으로 調和된 것을 볼 때, <聖三位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가 됩니다.

 

이제 <성삼위의 하나님>(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역사적으로 논의된 것과 성서말씀 속에서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음을 살펴보고서, 본문성경 말씀을 음미하면서, 본문의 <성삼위의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들에게 役事하시는 면과, 이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할지를 좀 더 세밀히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이 짧은 한절에 우리가 믿는 신앙의 중요한 교리인 三位一體, 예정, 구속 및 성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교리는 우리들의 구원에 관련된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성부 하나님의 역사- 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입은 자들”- 성부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지만(1:3), 또한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1:17) 하나님의 父性(Fatherhood)은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아버지시었습니다.(출4:22) 그러나 이 사상은 후기 예언자에 이르러 점차 신령화(spiritualization) 하였고, 포로기 때에는 개인화(individualization)하여, 신약시대 父性觀의 배경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즉, 신약시대의 부성이란 본질적으로 성자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뜻하고, 이 성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요1:12, 롬8:15) 모든 신자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⑵. “미리 아신”-이는 베드로의 낱말로서 여기와 그의 설교(행2:23)에서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바울의 <예정함, προορίζω>과 동일시제이나, 사실은 예지는 예정의 전제인 것입니다.(롬8:29) 하나님은 모든 미래사를 현재적으로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 하나님의 예지성(foreknowledge)은 하나님의 전지성(omniscience)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⑶. “택하심”(ἐκλεκτὸς) -구약시대에서는 이스라엘민족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신4:37) 택하심은 하나님의 자유의지이며, 택함을 입은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는 특권을 향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상은 신약시대에서는 신령화하고 개인화하여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신자들은 참 이스라엘로서 현세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의 대상이 되고, 영원한 기업을 얻도록 하여 주신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의 롬8~11장 및 엡1장과 더불어 유명한 예정교리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있습니다.

 

이 예정교리에 있어서 장로교의 창시자인 Calvin은 하나님의 주권에 그 전적인 근거를 두어서, 유명한 돌트(Dort)의 5개 조항(1619, 1. 무조건 선택, 2. 제한속죄, 3. 완전타락, 4.불가항력 은혜, 5. 구원의 안전성)으로 결정되었으나, 이 5개 조항과 대조적인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를 따르는 J. Wesley는 인간의 노력에 중점을 두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나, 최후의 결정은 미래에 있어서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들의 복종여하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②. 성자 하나님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피 뿌림, ῥαντισμὸν αἵματος)는 히브리서(9:13, 21, 10:22, 12:24)와 본문에 보이는 말이며 바울 서신에는 없습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법의 용어입니다. 구약에서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태운 물(뿌리는 물, 또는 구별의 물)을 뿌려서 결례에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민19:1-19) 구약에서 피를 뿌린다는 것은 나병환자를 깨끗이 할 때(레14:6-7), 제사장을 입적할 때(출29:21),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들려주면서 백성에게 뿌린 일(출24:3-8)들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제사법은 그대로 그리스도의 피로 죄인들을 속량하는 그림자이었습니다. 즉 신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므로(눅22:20) 신자는 그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 그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죽음은 양면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피는 창조된 인류의 운명을 완성시키기 위함이었고, 죽음은 타락한 인류의 운명을 완성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③. 성령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성령의 역사는 성도를 거룩하게 함으로써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⑴. <거룩하게 하심, ἁγιαμὸς> ‘거룩’은 하나님의 屬性으로, 完全無缺하심을 말하는 것이며, 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속성은 신자에게 부여되고, 그 役事는 성령이 하시는 영역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바친 사람(제사장처럼, 레21:6), 장소(지성소처럼, 출26:33), 물건(성전 내의 물건처럼, 출35:10-19), 시간(안식일처럼, 출208) 등은 거룩하게 하심을 입었으나, 신약에서는 성도들에게 이 은사가 부여 된 것입니다. ‘거룩’이란 원칙적으로 ‘구별’한다는 뜻으로, 성도들은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가 된 것입니다.

 

⑵. <순종함과> -택하심을 받은 성도의 특성은 순종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또는 하나님의 율법에 흔연히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특히 베드로전서가 높이는 미덕입니다.(1:14, 22, 3:6) 바울은 ‘믿음의 순종’(ὑπακοῂ πίστεως 롬1:5)을 말하고 있거니와 순종은 믿음의 요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위시한 모든 교리, 성서나 교회에 대한 믿음이란 거기에 대한 순종의 태도에서 믿음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3). 본론(Context): 이 베드로 전서는 주후 64년 로마 네로황제 박해 시초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할 때, 박해 하에 고난 속에 ‘흩어진 나그네 인생살이’를 하고 있는 신도들을 향한 위로의 서신을 송신하면서, 그 서두의 짧은 인사 말 속에 <聖三位의 하나님>(三位一體의 敎理)의 교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나마 성부에 관련된 예정, 성자와 관계 된 속죄, 성령에 대한 성결 등의 기독교의 중요한 기본 교리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역사적으로 논의 된 것과 성서말씀 속에서 명확하게 입증하고 있음을 요약해서 살펴봄과 동시에 본문의 <성삼위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역사하심에 응답으로서의 철저한 순종을 해야 하겠습니다.

 

삼위일체(Trinity)란 성서에 사용된 낱말은 아니지만, 완전히 성서적인 교리인 것입니다. 이 용어는 터툴리안(Tertullian, AD.160-240)이 처음으로 사용한 낱말로서, 어거스틴(Augustine)을 위시한 무게 있는 고전학자들을 통해서 완성된 기독교의 기본교리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본 서신에서 성부(1:2, 3, 15, 17, 21, 23), 성자(1: 2, 3, 7, 11, 13, 19, 2:3) 및 성령(1:2, 11, 12, 22)을 여러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터툴리안 이후 오리겐(Origen, 185-251)은 더 명백히 성삼위의 하나님에 대한역설을 가했으나, 이 교리가 결정적으로 성립한 것은 니케야 회의(325)와 콘스탄티노풀 회의(381)에서 신조화 하였던 것입니다. 즉 콘스탄티노풀 회의에서 제정한 신조는 니케아신조의 단순한 “우리는 성령을 믿사오며”를 수정하여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같이 예배의 대상인 것을 밝혔던 것입니다.

 

오리겐은 그리스도교 교리사상에 위대한 학자이었으나, 애매한 점도 많았습니다. 그는 소위 차위설(Subordination)을 주장하여, 성자는 본질적으로 성부에 종속하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 종속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차위설은 그 후 Augustine에 의해서 부정되었고, 그것이 스칼라시대의 오랜 전통으로 흘러왔으며, Calvin에 이르러 세 位格 모두 완전한 하나님임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교리가 성서적 술어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 교리가 성서에 깊이 입각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구약에서는 천지의 창조자시며(창1장), 주관자이신(시96편) 하나님과 더불어 여호와의 사자(창16:10) 및 구약전서를 일괄해 있는 Messiah 예언에서 성자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령(The Spirit of God, 사48:16)으로 표현되어 있는 성령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Elohim>이란 낱말이 복수이면서도 단수형 동사와 같이 사용된 것(창1:1)을 간과 할 수 없는 성서적인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것이 더 명료해지고 구체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입을 통하여 ‘아버지’로 말씀하셨고, 성자는 독생자로서 창세 이전부터 선재하셨다가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요1:1-18, 빌2:5-11, 골1:16-17), 성령 또한 성부와 성자의 보내심을 받고 성도에게 오시며(요15:26), 뚜렷한 인격(요14:17, 행8:29)과 신성(고전2:10, 11, 요4:24)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삼위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회동하셨던 것입니다.(마3:16-17)

 

본문에서 성부 하나님의 역사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란 것입니다. 성부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지만(1:3), 또한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1:17) 하나님의 父性(Fatherhood)은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아버지시었습니다.(출4:22) 그러나 이 사상은 후기 예언자에 이르러 점차 신령화(spiritualization)하였고, 포로기 때에는 개인화(individualization)하여, 신약시대 父性觀의 배경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즉, 신약시대의 부성이란 본질적으로 성자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뜻하고, 이 성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요1:12, 롬8:15) 모든 신자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미리 아신”다는 말씀은 베드로의 專用 용어로서, 여기와 그의 설교(행2:23)에서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바울의 <예정함, προορίζω>과 동일시제이나, 사실은 예지는 예정의 전제인 것입니다.(롬8:29) 하나님은 모든 미래사를 현재적으로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 하나님의 예지성(foreknowledge)은 하나님의 전지성(omniscience)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택하심”(ἐκλεκτὸς)이란 구약시대에서는 이스라엘민족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신4:37) 택하심은 하나님의 자유의지이며, 택함을 입은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는 특권을 향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상은 신약시대에서는 신령화하고 개인화하여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신자들은 참 이스라엘로서 현세에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의 대상이 되고, 영원한 기업을 얻도록 하여 주신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의 롬8~11장 및 엡1장과 더불어 유명한 예정교리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있습니다.

 

이 예정교리에 있어서 장로교의 창시자인 Calvin은 하나님의 주권에 그 전적인 근거를 두어서, 유명한 돌트(Dort)의 5개 조항(1619, 1. 무조건 선택, 2. 제한속죄, 3. 완전타락, 4.불가항력 은혜, 5. 구원의 안전성)으로 결정되었으나, 이 5개 조항과 대조적인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를 따르는 J. Wesley는 인간의 노력에 중점을 두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나, 최후의 결정은 미래에 있어서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들의 복종여하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다음 성자 하나님의 역사하신다는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라는 말씀인데, <피 뿌림, ῥαντισμὸν αἵματος>이라는 말씀은 히브리서(9:13, 21, 10:22, 12:24)와 본문에 보이는 말이며 바울 서신에는 없습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법의 용어였습니다. 구약에서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태운 물(뿌리는 물, 또는 구별의 물)을 뿌려서 결례에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민19:1-19) 구약에서 피를 뿌린다는 것은 나병환자를 깨끗이 할 때(레14:6-7), 제사장을 입적할 때(출29:21),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들려주면서 백성에게 뿌린 일(출24:3-8) 등입니다.

 

위와 같은 제사법은 그대로 그리스도의 피로 죄인들을 속량하는 그림자이었습니다. 즉 신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므로(눅22:20) 신자는 그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 그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죽음은 양면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피는 창조된 인류의 운명을 완성시키기 위함이었고, 죽음은 타락한 인류의 운명을 완성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업을 단 한번 희생의 제물이 되심으로, 성부 하나님과 인간간의 죄로 말미암은 장벽이 가로 막혀서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을 성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푸시고 그리스도의 代贖으로 만족하셔서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 것에 우리들은 滿腔에 넘치는 감사를 두고두고 드려야 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말씀인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성령의 역사는 성도를 거룩하게 함으로써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드는데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심, ἁγιαμὸς>의 ‘거룩’은 하나님의 屬性으로, 完全無缺하심을 말하는 것이며, 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속성은 신자에게 부여되고, 그 役事는 성령이 하시는 영역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바친 사람(제사장처럼, 레21:6), 장소(지성소처럼, 출26:33), 물건(성전 내의 물건처럼, 출35:10-19), 시간(안식일처럼, 출208) 등은 거룩하게 하심을 입었으나, 신약에서는 성도들에게 이 은사가 부여 된 것입니다. ‘거룩’이란 원칙적으로 ‘구별’한다는 뜻으로, 성도들은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聖化(Sanctification)함에는 <순종함>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택하심을 받은 성도의 특성은 순종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흔연히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특히 베드로전서가 높이는 미덕입니다.(1:14, 22, 3:6) 바울은 ‘믿음의 순종’(ὑπακοῂ πίστεως 롬1:5)을 말하고 있거니와 순종은 믿음의 요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위시한 모든 교리, 성서나 교회에 대한 믿음이란 거기에 대한 순종의 태도에서 믿음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聖三位의 하나님>의 은혜로운 役事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형상에 준해서 지으시고, 오래 전부터 현재의 우리 자신의 실존을 다 아시고, 우리 자신을 부모의 심정으로 그릇될까 염려하시어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 주심에 感泣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또한 성자 하나님께서 단 한 번의 희생의 제물이 되심으로 저희들을 죄에서 속량해 주심으로 이렇게 행복을 누리게 하심에 한시라도 이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인도하시면서 매일매시 성화토록하시며, 오직 저희들의 순종을 바라심에 흔쾌히 응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때마다 “성부 하나님의 전능으로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一片丹心으로 찬양하면서, 성령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따라서 우리들도 날마다 성화시킴에 순종하겠다는 다짐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4). 결론: 박해 하에 흩어져서 나그네로서 고달프고 아픔의 정황 속에서도 성부 하나님의 전지, 전능을 믿으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들을 구속해 주신 성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성령 하나님의 성결로 인도되고 점철되는 성화의 삶을 살기를 기원했던 베드로의 간곡한 위로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오늘날 우리들도 어떤 정황 속에서도 <성삼위의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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