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승리의 깃발을 날리리라.
(본문: 시 20: 1~9)
1). 서론: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 작품에 나오는 대사처럼, 출정식에 당도한 병사들의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공포의식입니다. 그래서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용기입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무엇인가의 큰 힘이 보장된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고 용기백배하여 의기가 충천하게 됩니다.
본문 시편 20편도 모든 백성이 출정식에 나온 왕과 병사들을 향해 축복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승리하리라는 확신에 찬 신념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영적 전투입니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깃발을 날리면서 개선의 찬미를 부르는 우리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본문은 전쟁터로 나가는 왕을 위한 기도로 보고 있으며, 시기는 다윗왕이 암몬과 전쟁에 출전했을 때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1). 출전하는 왕을 위한 백성의 기도(1~5)와 (2). 승리의 확신으로 백성의 기도에 대제사장이 승리를 선언(6~8) 다음, 다 함께 합창으로 기원합니다. (9)
3). 본론(Context): 본문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모여 그 전쟁에서 왕과 그의 백성이 승리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제사장과 백성들이 일심전력으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는 그 시가 저작된 “삶의 정황”(Sitz im Leben)이 왕과 그의 군사들이 출전하기 직전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 의식 때 부르는 찬송가로 저작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대적해 싸울 때, 그 백성들은 그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사무엘에게 와서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삼상 7:8)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 시의 전체 내용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날리리라.” 5절) 라는 한 구절 속에 요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과 더불어 싸워 이기고 적군의 진지에서 승리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통쾌한 일일 것입니다. 이 시인은 전쟁에 나가는 왕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적군을 물리치고 승리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음을 그의 기도 속에서 보게 됩니다. 이것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저들을 위하여 싸워 주시리라는 확신이 더 큽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라고 한 출애굽의 승리가 이 시인에게 확신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승리의 확신을 시 자체에서 살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리라 하는 기도의 응답 약속이 본문의 첫머리에 나왔다는 것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말 번역에는 “환란의 날”이란 인간의 사정이 먼저 나왔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전면에 내세울 만큼 이스라엘의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인간이 당면하는 고난이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을 고난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만 확실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리라.”라 는 말로 그 기도의 응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여기 “야곱의 하나님”을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신앙 전통에서 야곱의 고난 경험이 얼마나 험악했던가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러한 야곱의 시련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그 백성의 고난을 넉넉히 이기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하는 근거가 됩니다.
특히 그 “이름”을 말한 것은 9장 10절에서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다.”라는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함이 곧 구원에 이르는 첩경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름 그것이 곧 이스라엘의 방패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그를 의지하고 구하는 사람을 안전한 데로 인도하신다는 신앙이란 것입니다.
여기 전쟁에 나가는 왕이 하나님께 소제와 번제를 드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3절). 이런 제사 행위는 나라의 삶과 죽음을 앞둔 왕의 치성(致誠)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제사 행위가 형식적일 수가 없고, 예배자 자신의 개인 축복이나 그의 부귀영화, 생명을 간구함이 아니고, 한 민족을 대표한 왕의 제사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행위는 하나님께서 즐겨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신다.”라는 말은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왕의 어려움을 친히 돌보실 것을 말함입니다. 그러하기에 그의 마음의 소원은 허락될 것이고 그의 계획은 성취되고 그로 말미암아 승리를 안고 돌아올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하나님의 성호를 적은 승리의 깃발을 날릴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승리는 왕과 그 백성들에게 시사하는 교훈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구원하심은 하나님의 사명을 백성들 앞에서 또 백성들을 위해서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왕 자신의 권세나 그의 영화를 위한 구원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하나님 백성의 안녕질서와 행복과 그들의 선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나님은 왕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시인, 예언자, 역사가들은 왕의 권위의 소중함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왕이 백성을 대표하는 의미에서 왕을 존경했던 것입니다.
왕을 위한 기도도 왕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왕이 그나마 하나님의 맡겨주신 사명을 백성을 위하여 잘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도우심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자랑은 다만 하나님 한 분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다른 왕들은 그들의 무기 혹은 말(馬)을 의지하여(고대 전쟁에서 절대적인 것) 싸움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랑하겠다.”(7절) 라고 함은 다만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승리와 구원을 주시기 때문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군사력, 물질적인 부유를 의지하는 나라들은 멸망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일어서고 승리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으로 하는 나라는 복이 있다.”(시 33:12)라고 했습니다.
이상이 본문 내용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출정식에 앞서 <승리의 깃발을 날리리라. >라는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의 의미를 묵상해 봅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왕정 시대가 아니고, 자유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학적 견지에서 볼 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하지만, <기능론과 갈등론>의 시각에서 본문의 교훈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인간의 몸은 유기체로써, 팔다리와 내장 기관마다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한 군데가 아프면 다른 곳이 이를 보충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기능론은 개인도, 가족도, 정부도, 회사도 모두 사회라는 유기체에 부속된 장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능론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해야 할 일에 충실할 때 사회가 안정된다고 보는 관점을 가진 이론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이론이고, 사회 질서와 통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인간을 사회의 부속품처럼 취급하는 전체주의적 성격이 강하고, 사회의 기본 구조를 바꾸지 않으려는 보수성을 띤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반면에, 기능론이 사회의 안정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에 반발로 등장한 것이 갈등론입니다. 우리 사회만 봐도 노사관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현대 사회에서는 의견이 일치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경우보다는 긴장과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빈번합니다. 사회적 관계들은 대립적이고 경쟁적인 경우가 많고, 갈등론은 여기서 비롯된 갈등이 사회 혁신과 새로운 창조를 위한 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양 이론의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기에, 어느 이론이 좋다고 쉽게 단정 지울 수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이론 이야기부터 거론하는 것은 우리 인간 실존 자체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아무리 기독 신자일지라도 사회를 등지고 사는 삶이 아닙니다. 또한 안정되고 무풍지대의 삶도 아니고, 그렇다고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삶 속에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직면한 현실은 살기 위해서 <일터>가 있어야 하고, 그 일터는 底流 하는 生存競爭의 전쟁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승리의 깃발을 날리리라. >라는 본문의 교훈과 정신에서 오늘날 지금도 우리는 생활전선에서 믿음과 기도로 승리의 깃발을 휘날려야 하겠습니다. 왕이 출정식에 앞서 하나님께 武勳을 비는 제사와 기도드림은 자신을 먼저 생각해서가 아니고, 국가와 백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개체인 기독 신자이지만, 일터인 직장, 정가, 학원, 시장 등등, 아침에 출근하는 것은 출정식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자와 비신자가 혼합된 사회 공동체 속으로 출근하는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치열한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의 싸움터로 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기독 신자 개개인의 영성, 의식, 언어,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자신들의 무기라고 생각할 때, 처신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 기독교회, 복음 선교, 자신, 등의 명예가 빛을 발하느냐, 아니면 먹칠을 당하느냐가 결정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터에 출근하는 家長을 위한 가족, 친지, 친구 등이 간절한 後援의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더 구체적 무기는“선한 싸움(딤전 4:7), 청결한 마음 바탕 (마 5:8),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딤전 1:5)”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경쟁의 싸움터일지라도 선한 싸움이 되어야 하고, 청결한 마음 바탕은 외식과 두 마음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을 볼 것이요, 선한 양심은 수평적인 대인과 대물과의 윤리 도덕의 문제이요,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인 영적 생활(기도)을 말함입니다. 아침 일터에 출전하기 전에 기독 신자의 위와 같은 무기를 갖추어서 나갈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개선의 찬미를 부르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4). 결론: 본문은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 의식에서 이스라엘의 왕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암몬과 전쟁에서 왕과 그의 백성이 승전하고 개선의 깃발을 날리면서 돌아올 수 있기 위하여 제사장과 백성들이 일심전력의 出戰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본문 시의 주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날리리라.”(5절) 라는 말씀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또한 전쟁에 나가는 왕과 군사들을 위하여, 제사장이 하나님께 소제와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3절) 이것은 나라의 삶과 죽음을 앞둔 왕과 백성을 위한 致誠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즐겨 받으시고, 구원의 확신을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일어서고 승리한다는 믿음과 축복이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영적 전투입니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선한 싸움(딤전 4:7), 청결한 마음 바탕 (마 5:8),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 (딤전 1:5)”이라는 것이 우리 기독 신자의 무기임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아침 일터에 출전하기 전에 기독 신자의 위와 같은 무기를 갖추어서 나갈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승리의 깃발을 날리며 개선의 찬미를 부르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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