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약설교마당

16.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solomong 2025. 1. 13. 10:51

16.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본문: 시 46:1~11)

1). 서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내면 깊은 고통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안전함을 바라는 갈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바로 그런 순간을 맞았을 때, 우리가 불러야 수많은 노래를 주셨습니다만, 불변의 믿음을 노래하는 오래된 많은 노래 중에서도 본문 시 46편을 따라갈 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을 거쳐서 이 찬송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공포, 고통, 어두움 및 죽음이 엄습하고 있는 주의 백성에게 안식처가 되십니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도, 인간이 겪은 그 어떤 경험도 이것보다 더 나쁠 수는 없으며, 이런 시간을 만나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질문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위기 때마다 두려움에 함몰되지 말고, 하나님은 우리가 위험에 직면했을 때, 달려갈 수 있는 분이 되심으로 우리를 돕는 피난처이심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강한 분이시기에 우리를 돕는 능력자이심을 굳게 신뢰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때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맙시다. 말씀 그대로 그는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시 46:1).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어떤 환난을 가져다주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움을 결코 혼자 맞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바로 그분은 결코 우리를 홀로 버리지 않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라고 하시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2). 본문의 이해(Text): 본문 시는 47, 48편과 더불어 이스라엘이 큰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하나님이 시온의 보호자시며, 전 세계의 지배자란 것을 노래함으로 그들을 위로하시는 시입니다. 루터의 유명한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가 본문 시에 근거하였습니다. 본문 시의 저작 시기로는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림의 침공을 받았을 때, 주전 701년이라고 합니다. (왕하 18:13~16) 본문 시의 내용은 1. 하나님은 나의 힘(1~3), 2. 하나님은 시온의 보호자(4~17), 3. 하나님은 세계의 지배자(8~11) 등으로 3분 할 수 있습니다.

3). 본론(Context): 마르틴 루터가 본문의 1절을 노래하며 거대한 가톨릭 전통에 도전하여 복음의 자유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는 본문 46편에서 초인적인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가 한 때 여러 가지 일로 절망에 빠졌을 때, 그의 친구 P. Melanchton에게 “친구여 시편을 노래하자.”라고 하면서 46편을 노래로 지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고 지은 이 찬송에는 개혁자의 성격이 잘 나타났고, 그의 진실한 경건과 그의 기쁨에 넘치는 확신, 그의 단순성, 그의 힘, 또한 그의 과격성 및 그의 조잡성 등을 본문 시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가 “비록 보름스(Worms, 독일 남서부에 있는 도시)에 기왓장처럼 악마가 많다고 해도 나는 가리라.”라고 한 그 용기가 본문 시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저서와 논문을 모두 취소하라는 엄명이 내렸을 때 “나는 절대로 취소할 수 없습니다. 내 양심에 거슬리는 일을 한다는 것은 지혜로운 일도 아니며 바른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 내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용감한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본문 46편 시에서 얻은 용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 공화정치 시대 가톨릭 신앙에서 이탈하여 프로테스탄트 신앙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섭정관 올리버 크롬웰은 1656년 9월 17일 국회에서 한 연설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을 굳게 하였으면 시편 46편 루터의 찬송을 부르십시오. 이 시는 우리 신자들이 읽어야 할 참 적절한 시입니다. 신자가 그 마음을 이 시에다 열고 읽으면 하나님이 그에게 분명히 알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과 피난처가 되시며 아주 곤경에 처할 때, 도움이 되십니다. 법왕과 스페인 사람, 그리고 악마와 모든 그의 부하들이 우리를 대항해 달려들어도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들을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본문의 시는 시편으로 읽어서 감동을 주는 것에 못지않게 루터의 “찬송가”도 많은 크리스천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교회사상 많은 신도가 개인적 민족적 싸움에서 이 찬송을 부름으로 인해서 승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교회를 핍박하고 신앙을 박해하는 권력가들과 세속 세력을 대항해서 영적 투쟁을 하는 많은 크리스천에게 본문의 시편은 애용되었습니다. 신앙으로 겁 없는 생활을 하는 진실한 성도들은 본문의 시로써 그 영혼을 무장하여 악마의 세력과 더불어 싸우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의 시를 지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만, 이스라엘 역사상 이런 승리의 노래를 부를 경우가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개인 생활에서 이런 시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고, 특히 이사야 같은 사람도 이 시를 지을 수 있는 경험을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개인의 이름과 본문의 시를 결부시킴보다는 하나님을 힘으로 하고 큰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를 도움이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본문 시를 지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본문의 시의 작자 문제가 아니라, 본문의 시가 주는 용기와 힘과 안전입니다. 하나님을 힘주시는 분으로 믿고, 우리가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크게 당할 때마다 적절한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다는 사상은 하나님의 능력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 생명의 관계에서 고백 될 수 있는 일입니다. 본문의 첫 구절을 우리 구약성경에는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고 했는데, 이는 원문이 어디에 강조하고 있는가를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큰”은 도움에 붙을 형용사가 아니고, “환란”에 붙을 형용사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큰 환란” “큰 어려움” 즉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 못 할 감당키 어려운 수난을 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어려움이라도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큰 도움, 작은 도움”의 구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크다”라는 형용사가 “어려움”에 붙어야 할 이유는 우리 인간으로서 감당키 어려운 “큰 어려움”을 본문의 시인은 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환란 중에 만날”이란 구절은 우리가 만나는 “환란이”전혀 상상 밖의 것, 전혀 생각지 못한 돌연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런 표현은 모두 우리 인간이 만날 어려움이 전혀 기대도 하지 못한 상상 밖의 큰 어려움임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저항 할 수 없는 고난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의 감격은 더 깊고 간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힘과 도움과 피난처를 가진 우리이기 때문에 다음 2절에 나타난 “겁 없는 삶”이 실감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절에 나타난 어려움은 가상이기는 하지만 모두 상상 밖의 어려움을 또 인간은 감히 감당할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임을 잘 설명해 줍니다.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진다는 것, 산이 운동한다는 것, 자연의 이변은 인간의 힘으로는 손쓸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비록 이런 어려움을 만난다고 해도 하나님을 힘으로 믿고 이 하나님께 피난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이런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니, 두려움 없는 삶을 산다는 노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 시의 제2부(4~7절)는 1~3절에서 볼 수 있는 부동의 신앙, 두려움이 없는 신앙,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힘과 그 안전을 직접 알려주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 예배와 관계된 겁이 없는 신앙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를 그 양식사의 입장에서 연구한 사람은 이 시가 이스라엘의 의지 신앙을 예배 의식 절차 속에서 재현시키기 위해 지어진 “제의(祭儀) 시”하고 합니다. 심지어 E. 로란드는 해마다 시온에서 드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관식 축제”에서 민족의 의지심을 각성시키고 심화시키는 노래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생각하는 사상에서 그가 그 백성 이스라엘을 모든 환란과 적에게서 건지신다는 구원 신탁을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 시 제3부(8~11)에는 제1부의 의지 신앙, 겁 없는 신앙 사상이 다시 반복되어 시 전체 Thema가 “하나님은 피난처”란 사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2부가 “여호와는 왕이다.”라고 하는 사상과는 대조가 되게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거룩한 전쟁”이란 신앙 사상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쉬게 하는 일”(9절), 이스라엘이 “가만히 있기만 하라.”(10절) 그리고 임마누엘 사상,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11절) 라는 구절 등은 “거룩한 전쟁”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피난처가 되느냐? 그것은 이 제3부에서 박혀주는 대로 첫째, 전쟁의 주도권은 여호와가 쥐고 계시며, 둘째,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싸워주시며, 셋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어 모든 어려움을 물리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이 바울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롬 8:31)라고 장담을 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크리소스톰 (John Chrysostom) 교부가 억울한 모함을 받고서 유배지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유배지로 떠나면서 남겼던 유명한 말입니다. 여러분!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인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죽음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명인걸요. 이 땅 어디에서 쫓겨나는 게 두렵겠습니까? 아닙니다.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이 땅에서 쫓겨나면 하늘의 처소가 나를 기다립니다.

나의 소유를 빼앗기는 게 두렵겠습니까? 내가 가져본 게 뭐가 있었을까요? 뺏겨봐야 모두 하늘에 쌓일 뿐입니다. 저들이 나를 산으로 몰아내면 나는 엘리야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지면 나는 예레미야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바다로 던지면 나는 요나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돌로 치면 나는 스데반이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매로 치면 나는 바울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크리소스톰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임마누엘 하십니다. 불안에 떠는 모습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안전지대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만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는 그곳이 바로 안전지대요 피난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위기를 만나도 하나님이 피난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영원한 피난처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합시다. 하나님은 환난에서 건져내시는 능력이십니다.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 만날 도움이십니다. 그리고 환난 중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저마다의 인생길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살아갑시다.

4). 결론: 우리는 본문의 시를 지은 작자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만, 이스라엘 역사상 이 시를 통해서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 시의 저자 문제가 아니라, 본문의 시가 주는 용기와 힘과 안전입니다. 하나님을 힘주시는 분으로 믿고, 우리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크게 당할 때마다 적절한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고 의지하는 신앙 사상은 하나님의 능력뿐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감읍하는 마음입니다.

본문의 시는 역대 마르틴 루터를 위시한 수많은 신앙의 용장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을 생생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전쟁의 주도권은 여호와가 쥐고 계시며, 둘째로, 실의 찬 우리를 연민에 찬 하나님의 사랑으로 싸워주시며, 셋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어 모든 어려움을 물리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을 바울은“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롬 8:31)라고 장담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위기를 만나도 하나님은 피난처이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피난처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에서 건져내시는 능력자시며,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 만날 도움이십니다. 그리고 환난 중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바로 그분은 결코 우리를 홀로 버리지 않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라고 하시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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