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신약설교마당(135)

15. 디아스포라의 낭만주의

solomong 2024. 11. 29. 11:56

15. 디아스포라의 낭만주의

(본문: 베드로전서 1장 1~2절, 17~25절)

 

1). 서론 :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흩어져서 나그네처럼 사는 유대인’을 지칭하지만 지금은 신령한 의미로 성도들이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향한 지상의 삶을 의미합니다. ‘보헤미안’(Bohemian)은 5~6세기 중부 유럽에 있었던 보헤미아 왕국이 19세기에 체코슬로바키아에 흡수된 후 ‘나라를 잃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보헤미안들은 나그네처럼 정처 없이 유랑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집시(Gipsy, Gypsy) 삶을 살았기에 ‘보헤미안 집시’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집시’(Gypsies)는 또한 인종적으로는 ‘코카서스’ 인종의 유랑 민족을 의미합니다. 인도에서 발상하여 헝가리를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입술은 두껍고, 검은 고수머리에 피부는 갈색입니다. 성격은 쾌활하며 음악에 대한 감성이 뛰어납니다. 이들은 마도위(말을 팔고 사고할 때에 흥정을 붙이는 사람)·땜장이·악사 등의 직종에 종사하며 냉대를 받으면서 방랑 생활을 합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인생 전체가 디아스포라요, 보헤미안이요, 집시의 삶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본문 말씀에 수사도 베드로는 “너희는 본도·갈라디아·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나그네’처럼 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예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성결케 되고, 성령께 순종한 선택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한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이 베드로 전서는 주후 64년 로마 네로황제 박해 시초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할 때, 박해 하에 고난 속에 살고 있는 신도들을 향한 위로하기 위한 서신입니다.

 

2). 본론: 본문의 말씀엔 ‘흩어지는 자들’(디아스포라)이라는 표현의 말씀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 하에서 신음하는 성도들에게 위로편지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정황이 험준할 때를 의미합니다. 디아스포라는 단적으로 말해서 ‘본국을 떠나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인들’을 의미합니다.

 

이 말이 함축된 역사적 사실은 “너희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창 12:1~4), 이렇게 시작된 이스라엘은 그대로 디아스포라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기업의 땅으로 허락을 받았으나, 그곳을 지나 애굽으로 가서 430년간의 나그네의 생활을 보냈습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귀환 도중에도 40년간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하였습니다.

 

또 주전 722년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 포로로, 586년의 남조 유대는 바벨론 포로의 고달픈 삶을 영위했습니다. 이들은 갈대아 지방에 흩어져 살다가 포로생활 70년이 지난 후에 일단 조국에 귀환했으나 그 지방에 계속 머문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희랍의 알렉산더(주전320년)와 푸톨레미 1세는 대량의 유대인을 애굽으로 이동시켰고, 그 수는 신약시대에 와서 백만을 헤아렸다고 역사가 요세푸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리아의 인티오커스 대제는(주전 170년 경) 약 2000호의 유대인들을 소아시아로 이동시켰고, 로마의 포페이 장군은(주전 63년) 예루살렘에서 포로된 유대인을 로마로 이동시켰습니다. 20세기 제2차대전 시, 독일 히틀러는 전전긍긍하는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학살한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강제적·단체적 이동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상업 기타의 목적으로 자진해서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갔습니다. 이리하여 신약시대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도처에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국은 되었지만, 전 세계에 산재하여 설움과 냉대를 받으면서 여전히 디아스포라의 민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디아스포라는 원래 유대인을 지칭했으나, 이는 점차 영원한 피안의 삶을 위한 임시적으로 우거하는 나그네의 삶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에게는 언제나 박해와 냉대가 따라 다니는 법입니다.

 

서론에서 ‘디아스포라’는 어쩌면 ‘보헤미안’과 ‘집시’의 삶의 양상과 비슷하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집시에 대한 부정적 감정도 있었지만, 집시가 인류사회에 문화적으로 공헌했습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친 낭만주의(Romanticism)는 보헤미안 어린이들의 신화로 발전시켰고, 그들의 지속적인 방랑생활은 인류문화에 지대한 종적을 남겼습니다. 집시들의 유랑생활과 사고방식은 낭만주의의 비현실적인 사고방식과 생활태도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보헤미안 집시는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인류 역사에 문화적으로 낭만주의의 꽃을 피우게 했다면, 우리 ‘디아스포라’는 무엇을 남겨야 합니까? 21세기의 한국적 상황에서 디아스포라는 무엇을 남기고 고향으로 갈 것이냐 이 말입니다. 19세기 미국의 낭만주의 여류시인인 에밀리 딕킨슨은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달랠 수 있다면>라는 시(詩)에서,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또는 한 괴로움을 달래거나 또는 할딱거리는 ‘로빈새’ 한 마리 도와서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정녕코 헛되지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조선의 19세기 초 여명의 아침을 고(告)한 그 찬연한 빛이 다시 한번 이 민족 역사 앞에서 빛나야 합니다. 조국통일을 위한 ‘기독교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로 발돋움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민족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전위대(前衛隊)가 바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21세기를 사는 ‘디아스포라의 낭만주의’가 아닐까 합니다.

 

3). 결론: 역사적 정황은 다르지만, 베드로가 박해 하에 있는 성도들에게, “흩어져서…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And if you invoke as Father him who judges each one impartially according to his deed, conduct yourselves with fear throughout the time of RSV, Oxford 판)(1:17)고 합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행위(업적)에 따라서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 모시고 있으니, 방랑(exile) 생활을 하는 동안은 늘 두려움으로 지내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방랑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 각자가 어떤 일을 행했는지(업적)’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업적을 남기고 나그네의 삶을 마치겠는가를 이 사색의 계절에 심각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2007. 9. 27.

山下연구소장: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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