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수필사랑마당

“고독”(孤獨)

solomong 2026. 5. 12. 11:31

“고독”(孤獨)

고등학교 2학년 골치 아픈 수학수업시간에 잠간 앞산을 바라보며 한눈을 팔다가 선생님께 들켜서 심한 꾸중을 들은 기억이 지금도 이따금 생각이 난다. 하지만, 때는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봄날 바깥세상을 보면서, 젊은 가슴의 장래에 대한 심장이 고동치며,벅찬 환희와 희망에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본 회상이 세월은 흘러가지만, 나의 뇌리에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여기 한적한 시골 따스한 봄날에 이름 모를 들꽃 향기를 맡으며, 뭇 새소리가 들리는 산책 길은 왠지 즐겁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에 사무치는 고독감이 나를 엄습하고 있다.

조선조 고산(孤山)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시조에서,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동산에 달(月)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라고 읊조리었다. 고산은 당쟁에서 모함, 중상, 탄핵 사직 및 수차례 유배생활과 낙향하여 외롭게 사는 중에 이런 고산유고(孤山遺稿)가 나왔다. 그는 자기 벗이 수석, 송죽, 달이라고 했지만, 사실적으로 말해서 고독한 삶이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아호(雅號)를 고산(孤山)이라고 했겠는가.

그래! 나도 여기 유배를 왔다고 몇 번이나 다짐한 시공(時空)이었던가. 실존철학에서는 인간 자체가 고독한 실존(實存)이라고했다. 그래서 덴마크의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자기를 지칭해서 ‘거꾸로 서있는 한그루 소나무’라고 하면서 예외자(例外者), 단독자(單獨者) 인생을 논했다. 사람들은 이런 고독이 싫어서 어울려 보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더불어 담소하고, 같이 일하고, 춤도 추어보지만, 언젠가는 원점인 혼자에로 돌아와야 한다. 차라리 그럴바에는 그 고독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한 자세가 아닐까.

우리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늘 고독하시었다. 그리고 고독히 세상을 떠나셨다. 주님, 당신자신을 따라 오는 수천의 무리에게 “세상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 주님의 가슴은 지우(知遇)를 얻지 못한 서러움에 차 있었다. 골고다 석벽 위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남모르는 속죄의 대업을 몸소 이루시는 고초는 그 귀하신 몸이 찢어지는 아픔, 그것보다도 어제같이 당신을 환영하는 유대인의 이반(離反), 더구나 3년간 침식을 같이 해오던 제자들의 낙오, 부인 및 배신에 대한 고뇌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평생에 고독하시었다. 그리하여 누가복음에 70인의 문도(門徒)가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후,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기록한 것 외에는 복음서의 기자(記者)들은 한 번도 주님께서 기뻐하셨다고는 증언치 않았다. 오히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면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우셨다고 했다. 확실히 주님의 일생은 침묵, 엄격, 극기의 일생이었다.

오오! 주님을 따르는 오늘의 무리들이여! 더더구나 주님께서 남기신 성업(聖業)을 계승한 주님의 종들이여! 우리들에게도 ‘고독’이 있어야 하겠다. 수천의 대중 앞에서, 그냥 지날 수 없는 의로운 자리에서, 화려한 세상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고독의 천사를 환영할 준비와 각오를 갖추어야 하겠다. 왜냐하면 고독의 참 맛은 달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다 나를 떠날 때, 내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진실로 고독은 나에게, 나의 진상을 과장 없이 알려주고, 오직 하나님께만 하소연하게 해 준다. 오! 거룩한 고독이여! 실로 고독은 사람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끝.

2009. 5. 19.

山下연구원장: 양 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