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설교평론: 설교학 교수가 실천설교에 벌벌 떠는 듯한 인상의 설교
1. 서론: 서울의 역사 깊은 경동교회 담임목사인 박종화 목사님의 설교가 내용면에서, 또한 설교에서 풍겨오는 하나님 은혜의 말씀에, 필자 혼자 평소에 듣기에는 아까워서, 우리 山下연구소 방문자님들에게도 들려주기 위해서 얼마 전부터 소개해 왔었다. 근래 박 목사님의 안식년 휴식을 맞아하여, 아마 경동교회는 대타로 외부 목사들을 초빙해서 매 주일마다 각각 다른 양상의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은혜를 받고 있는 중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도 이왕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님이 부재중이라도, 이분들의 말씀을 우리 연구소 메인(Main) 게시판에 포스팅(Posting, 배치) 해왔다.(*이 글은 7월에 평론해둔 것인데 버릴까하다가, 방문자님들께 도움이 될가하여 오늘 올려본다.)
2008. 7. 6.주일엔 신학대학의 실천신학 분야의 설교학을 가르치는 OOO 박사의 설교를 듣고, 소감이라고 할까, 설교평론이라고 할까, 어찌되었든 간에, 좀 쓴 소리를 해 볼까한다. OOO박사는 그의 저서인 설교학 책도 필자는 여러 번 읽은 적이 있다. 논리 정연하고 내용이 알차고 설교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지표를 제시하는 좋은 저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오늘 OOO박사의 설교에 대한 평론의 집약된 소감은 <설교학 교수가 실천설교에 벌벌 떠는 듯한 인상의 설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구체적으로 아래에 적어 본다.
2. 본론: 1). 설교의 이론보다 실제 설교하는 것이 어렵다.-학문의 원리와 그 원리에 따라서 행하기엔 어렵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여기엔 개인차가 있어서 구변이 좋고, 말에 어눌한 천성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모세나, 바울 같은 위대한 지도자나 학자라도 말에는 졸하다고 했으니 말이다. 속에 든 것도 별로 없으면서 청산유수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고, 속에 꽉차있는 이론을 맛있게 요리를 하지 못해서 싱겁고 짜고, 매운 요리 같을 수도 있다. 설교학 교수에게 이론과 실천이 꼭 구비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오늘 OOO 박사의 설교는 요리가 신통치가 않았다.
2). 원고에 집착된 설교-교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강의 하는 것도 강의록에 준해서 가르친다. 설교는 강의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이 OOO 박사이다. 그런데 일반 강의실에서 강의록(원고)에 의한 강의를 했으면 잘할 수도 있는데, 대상, 장소, 목적 등에 따른 일반교인들이라는, 주일예배라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선포하는 목적에는 많은 주의와 긴장 및 상황 등이 제대로 자연스럽게 행하여지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는 그 덫에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단 보다 강단에서 말씀 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OOO 박사는 청중을 바라보지 못하고 너무 원고에 집착된 것 같다.
3). 오늘 설교는 제목설교인데, 그 주제는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께, 예수님께 우리 각자의 신앙을 담보(보증)해 주시는 성령의 역할에 대한 말씀이다. 여기에 중요한 개념의 용어는 <담보(보증)>라는 낱말이다. <보증>의 헬라 원어는 <알라보나> 이다.(엡1:14, 고후1:22, 참조) 이 <알라보나>의 원어의 의미는 <선금(先金)>, 또는 <보증금>이라는 뜻이다. 물건을 사거나, 특히 집 매매를 할 때, 집 전체를 매매하여 양도받아 법원등기부에 내 재산 및 내 소유라는 것을 명기 할 것을 서로 담보로 확인하는 것이 선금 또는 보증금을 계약서에 쓰고 직접 새 집주인 될 사람이, 현재 집주인에게와 두자 사이의 중인이 되는 중계업자와 종국엔 국가기관인 법원 등기를 염두에 둔 선금을, 보증금이 입증하는 것이다.
4). 설교의 통일성과 논리적이지 못했다. OOO 박사는 위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설교하겠다고,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경동교회 교인들에게 말씀전하겠다고 미리 생각하고 원고를 작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론에서 “박종화 목사님의 빈자리를 오늘 제가 채우게 되어서 영광스럽다든지, 퍽 어려운 책임을 맡게 되었다든지, 잠시나마 여러분을 만나 볼 기회를 얻게 되어서 기쁘다.” 라는 말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우리 신앙의 담보>에 대한 설교의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설교학적으로도 정론이다.
그런데 서론에 예배의 성경사용, 특히 설교의 있어서 구약, 사도들의 편지, 복음서를 읽고 사용하는 신학적인 긴 군데기 말은 신학교 강단에서 필요한 것을 왜 옆길로 딴전을 피웠느냐가 OOO 박사의 신학교수 버릇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설교는 회중이 지루하지 않게 20-30분 내로 끝내야 하는 데 말이다. 그리고서는 담보에 대한 개념 설명을 하기에, “이제 본론으로 들어오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또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 설명으로 또 옆길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마가복음의 특성이라고 할까, 즉 저자가 “성질이 급하다.”는 좋은 새로운 말씀은 듣기는 되었어도, 에베소서 본문 성령의 역할에 대한 잠시 설명 후에 결론을 맺고 말았다. 비논리적인 설교였다. 교인들 생각으로는 목사님 오늘 설교의 주제와 목적이 이런 것이었고, 설교 요지는 이렇다는 것을 설명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슨 이야기 한 것인지 불분명했다. 교인들이 한 주간 메세지를 가슴에 담고 묵상할 문제꺼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3. 결론: 일반적인 설교자는 이런 제목의 설교를 한다면 대략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서 1). 담보(보증)에 대한 낱말 개념설명, 2).우리 각자(신자)를 위한, 즉 주인(主人, 집 매매 계약에서 집주인 된다는 등기부에 기록 하는 것) 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할인 우리의 신앙에 대한 것, 본문에서는 장차 받을 기업(상속물, 계승의 뜻)의 일부를 벌써 받게 하기 위하여, 미래에 완전히 받을 <선수금> 내지 <보증금>이 바로 ‘성령’이란 것으로 설명을 한다. 성령은 우리를 위로하고 믿음을 굳게 하도록 우리 속에 내재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들을 위한 선수금 역할로서의 성령의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는 구속(救贖, redemption)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의 해방시키기 위해서 그 대가(代價)인 십자가의 보혈로 하셨기에, 성령께서는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시고, 이 세상에서 잠정적으로 살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고, 장차 영원한 유업을 이어 받을 것을 보증(담보)한 성령이기에, 성령의 지도와 인도를 잘 받아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으로 요리 했을 것이라고 짐작 된다. 끝.
2008. 7. 9.(올리는 일자:2008. 9. 15.)
山下연구원장: 양 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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