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약설교마당

68. 의인의 축복

solomong 2026. 3. 13. 10:06

68. 의인의 축복

(본문: 시 112:1~10)

 

1. 서론: 본문 시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자가 받는 복을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경외하며'라는 말은 '공경하고 복종하며 우러러보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곧 예배신앙을 말합니다. 또한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며'라는 말은 '생활 속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예배신앙으로 성령 충만하고, 삶 속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복을 누리면서 살게 되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2. 본론(Text): 서론적인 설명은 시편 111편과 같습니다. 내용은 1. 의인이 받 을 축복(1~9), 2. 악인의 소멸입니다. (10)

 

3. 본론 (Context): 시편 112편의 할렐루야(II) 시는 111편과는 대조가 되도록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언급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찬미입니 다. 사실 사람이 찬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성서의 교훈이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의 가치를 가장 높이시고 인간을 통하여 자기 의 행사를 놀랍게 행하십니다. 대체로 이스라엘 시인들은 자연, 인간, 역사, 이 셋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라고 보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의 위치를 가 장 귀하게 봅니다.

 

시편 8편의 시인이 “사람을 하나님보다는 낮게 만드셨지만, 영화와 존귀로 관 씌워주셨다”(시 8:4)라고 하셨습니다. 이 112편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렇 게 존귀하게 생각하시는 인간이 어떤 존재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설명해 주는 “인간의 시”입니다. 이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떠날 수 없는 존 재이지만, 그 자신의 모습은 일정한 윤리적 범주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여기 본문의 시인은 시편 전체에서 표준적인 인간으로서 “의인”을 내세우고 이 의인이 받을 축복과 그의 성격, 그의 자랑 등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을 말할 때는 반드시 “악인”에 대한 것도 시편 시인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본문 시인은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의인”이라고 강조하 고 믿기 때문인지, “악인”에 대한 것은 간단히 한 절로(10절) 처리해 버리 고, “의인”에 대한 말로써 전체 시를 엮어 나갔습니다. 본문의 시인이 보는 “의인”은 첫째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1절) 이미 111편에도 이 “경외사상”은 두 번 나왔습니다. (5, 10절) 이것은 이스라엘의 지혜의 근본 이지만(시 111:10),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무입니다. (미 6:8)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어냐에 대해서 이 본문 시인은“하 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계명”은 일차적으로 “십계명”을 가리키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알려주신 모든 바른길을 가리 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종교적 감정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 과 인간의 관계성입니다. 그 관계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른길이라고 알려준 “십계명”을 비롯하여 모든 명령과 지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 니다.

 

결코 바리새교인 같이, 율법 조문만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인간 의 삶 자체를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감을 말합니다. 그 “계명을 즐겁게 생각한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시편 111편 2절에서도 언급했 지만,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사는 삶은 기쁨을 떠날 수 없음을 자주 말하고 있습니다. (시 1:2 ; 40:8 : 119:35, 97 등)

 

둘째로 본문의 시인이 생각하는 “의인”에게는 여러 가지 축복과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축복의 첫째로서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다” 라고 했습니다. “강성하다”라는 말은 이해하기 곤란한데, 그 원어대로 풀이 한다면, “전쟁에 용감하다”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재물과 사회적 지위가 든 든함을 말합니다. 이 “원어”의 모음을 고쳐서 “용감한 전사들”이라 읽을 필 요는 없습니다.

 

의인의 자손들은 “걸식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시37:25)라는 의미와 같이 의인의 자손들은 재물로나 사회적 지위로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 현실에서는 의인의 자식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나,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의 자손들은 복을 받는다는 전통적인 응보 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상에 회의를 표시한 사람은 욥기 저자이지만, 대체로 이스라엘의 축복은 하나님의 계명 을 지키는 결과라는 사상은 신명기 저자가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 다. (신 28:1~6)

 

그래서 본문의 시인도 2절에 “복이 있을 것”을 말했습니다. 3절에는 의인 의 복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부(富)함과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여 기 “부(富)와 ”재물“은 같은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에서 오는 것이 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물질적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 했 습니다. (왕 상 3:13 ; 잠 3:9 이하, 16; 13:18 등) 특히 이 물질적인 축복 은 잠언 22장 4절에서도 발견됩니다. “겸손과 하나님을 경외함의 보답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3가지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본문 시인이 지혜 문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은 111편의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물과 부(富)가 있으면 그 사람과 그 집의 “의 로움”이 나타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체로 재물과 부(富)가 넉넉하면 불의 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재물과 부(富)를 축복으로 받는 사람은 항상 그의 공의(公義) 또는 정의가 햇빛처럼 밝게 빛나야 합니다. “그 의가 영원 히 있다.”라고 본문의 시인이 말함은 과장이 아니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이기 때문에 그의 의는 영원히 빛나야 합니다. 비록 부(富)와 재물이 없어져도 그의 의는 드러나야 합니다.

 

4절에도 그가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는 빛이 되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케 할 수 있는 “어질고 자비함”을 그의 성품으로 함을 말했습니다. 의로운 자가 빛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 빛은 흑암을 밝혀 바르지 못한 것과 구부러진 것을 분명히 보게 합니다. 어느 것이 진리요 정의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빛을 찾아 서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을 알리는 사람은 의인입니다.

 

그의 삶- 특히 어질고 자비한 삶의 증거를 보여 줍니다. 이사야 58장 10절 에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통하고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하도록 해 주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한다”라고 했습니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은 어두운 사회를 밝혀 사람들에게 자비와 어진 마음씨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이 112편 시인은 이것을 다음 절에서 다시 확실히 말합니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된다.”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의인이 가진 “부(富)와 재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의로움” 때문입니다. 물질이 있으니 자비하고 남을 도와주고 보살핀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 나, 의인의 경우는 그의 의가 이런 자비스러운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정의는 괴로워하는 사람을 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밝히는 대 로 “저가 재물을 흩어서 빈궁한 자에게 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영원한 의”가 되었고 그 자랑과 영광이 나타난다고 했습니 다. 이렇게 세상의 소유를 나누어 줌으로 그 자신은 약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야웨를 의지하니 두려워할 것 없다.”라고 했으며 “오히려 원수들이 벌을 받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요동하지 아니하고 영 원히 기억된다.”(6절) 라고 했습니다. 본문 시에는 “영원히”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3, 6, 9절)

 

그리고 “의” “의인” “공의” “의로운 자” 등도 여러 차례 사용되었습니다. (3, 4, 6, 9절) 본문의 “할렐루야”의 내용은 인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을 위한 할렐루야입니다. 111편에서 노래하는, 하나님의 크신 행사와 그 은혜에 대한 할렐루야와 함께 인간이 영원히 외칠 할렐루야는 여기서 말하는 의인에 대한 시입니다.

 

*이상과 같이 본문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내용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묵상해 봅시다. 본문 시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자가 누리게 될 복이 무엇인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2절) 라고 하는 것과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 로다.”(3절)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후손의 복, 재물의 복을 누린다는 말씀 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복은 흔히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자판기식 복’은 아닙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음료수가 나오듯이, 예수를 믿으면 자동으로 복을 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이런 말씀을 근거로 ‘기복신앙’을 언급하는데, 그런 뜻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은 철저히 ‘관계 중심적인 복’입니다. 관계 중심적인 복이란 말은 달리 말하면 ‘언약 중심적인 복’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있는데, 그 둘 사이가 마치 부부관계처럼 하나로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복을 얻는다는 것입니 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복의 기초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문을 보십시오.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라!’ 여기서 정직한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도덕적으로 정직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정직하다는 뜻을 품을 수도 있 겠지만, 근본적으로 여기서 정직하다는 뜻은 철저히 관계적인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여기서 정직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 자신들이 과연 거짓됨과 정직함을 묻 는 것이지, 우리 자체의 도덕성을 따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집이든지 부와 재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하필 우리에게 있을까요? 우리가 열심히 일함과 좋은 직장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에서 부와 재물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는 곧 공의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의가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부와 재물을 쓰는 쓰임새가 참으로 공의롭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의가 있기에 우리는 결코 함부로 돈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공의가 있기에 우리는 주변에 있는 가난한 이웃을 결단코 방관하지 않습니다. 공의가 있다는 것은 이같이 우리 삶에 아주 구체적인 행동으로까지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바로 이처럼 우리 삶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변화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의의 실천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다 어디에서 출발하느냐고 하면, 바로‘관계’(Relation)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상관관계(相關關係)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관계성’이 우리 삶에 주어지는 복의 가장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나머지 부분을 보면 계속해서‘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일컬어‘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예를들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자비롭고 긍휼히 많으며 의로운 이’(4절) 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자비, 긍휼, 의는 모두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과 연합해 있으니, 자연히 이 사람도 역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자비롭고 긍휼함이 많으며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5절) 라고 하며, 또한 ‘그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6절) 라고 합니다. 이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 사람이 그만큼 여호와께 딱 붙어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복을 애써 끌어내는 자가 아니라, 말씀 그대로 여호와께 딱 붙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사실상 하나님과 연합한자 입니다. 하나님이 신랑이시고 그들은 신부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그들은 자녀입니다. 그러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어떤 부분이든지 하나님을 닮고자 합니다. 그들 마음의 가장 큰 소원은 오직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으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결단코 두려 움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4. 결론: 예배신앙으로 성령 충만하고 삶 속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생활의 2대 강령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후손이 잘되게 ‘대물림하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둘째로, 어려움을 당할 때 형통케 하십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의 삶을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빛을 주셨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괴롭힌 애굽에는 흑암 재앙을 주어 큰 고통을 주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큰 능력을 주십니다. 흉한 소 식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하셨습 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전심으로 믿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 성령님께서도 우리 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며,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전심으로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능력이 모자라서 안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이 우리안에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의롭게 살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

2026. 3. 13.

山下연구원: 양 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