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구약설교마당

65. 할렐루야(I)

solomong 2026. 2. 27. 16:17

65. 할렐루야(I)

(시 l11:1~10)

 

1). 서론: 시편 111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며,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와 찬양의 노래입니다. 본문은 전체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가 행하신 일들을 회고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이들에게 지혜가 있음을 선포합니다. 시인은 개인적인 찬양이 아니라,'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에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하며 공동체적 신앙을 강조합니다. 찬양의 내용은 하나님의 위대한 행사, 불변하는 성품, 은혜와 긍휼, 언약의 신실함, 그리고 지혜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을 높이는데 핵심적인 주제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감사와 묵상, 신뢰와 순종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짐을 묵상해 봅시다.

 

2). 본론(Text): 시 111~118편은 귀환기의 작품들로 보이며, 대체로 할렐루야 시들입니다. 더구나 본편과 다음 편은 “쌍둥이”시라고 부르고, 동일 저자의 것으로 다 같이 할렐루야 시이며, 또 다 같이 알파벹 시입니다. 본 편은 여호와의 행사를, 다음 편은 의인의 축복을 각각 노래합니다. 본편의 내용은 여호와의 1. 행사를 찬미함(1~4), 2. 그 행사의 결과(5~9), 3. 결론적인 말(10)입니다.

 

3). 본론(Context): 본문 111편과 그다음에 나온 112, 113편은 모두 “할렐루야”란 말로써 시작합니다. 111편은 하나님을 중심 테마로 하여 “야웨를 찬양하라.”(할렐루야)는 것을 명령하고, 112편은 이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할렐루야를 명령하며, 113편은 이 인간들이 사는 세계를 중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111편과 112편은 그 문학 형식에 있어서 똑같이 히브리 알파벳 글자 순서로 시를 한 줄씩 지은 시인데 22개의 자모를 한 절에 둘씩 사용하여 (마지막 절만 셋씩 사용) 두 시가 다 10절씩이 됩니다. 이런 형식은 시의 내용 이해에 더 큰 의미를 둔다기보다 이 시를 가정에서나 회당에서 암송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 이 시들을 속으로 따로 외울 만큼 성도들의 순결 또는 맥박과 일치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111편은 첫머리 첫 글자가 “내가 감사하리라.”(오데)란 말로 시작하여, 전편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심정이 물결처럼 넘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시인 자신보다도 그의 감사의 대상인 하나님은 얼마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가를 시종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다분히 자기 개인 영혼의 감격을 노래한다기보다 자기의 노래가 그가 속한 전체 예배 공동체의 감격이 됨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나“라는 개인에 대한 언급은 첫마디 ”오데“에서 끝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예배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예배 공동체의 신앙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사인 듯 신도들에게 지혜를 권고하고 지각 있는 삶을 깨우치고 있는 듯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라는 10절 말씀은 잠언서 1장 7절에서 나온 “잠언서”의 총주제인 말씀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지혜라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매우 소중히 여기지만, 여기서는“율법이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아니하고,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인식과 그를 만나고 찾고 그의 하신 일을 기억하고 찬송하는 의무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도들에게 무엇을 하라는 명령형의 문제보다 야웨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 신도들과 어떻게 관련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서슬 문장이 이 시의 특색을 이르고 있습니다. “야웨는 어떠하신 분이냐?”라는 설명이 시 전체에 차고 넘칩니다. 이것을 하나씩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위대하시다. (2) 그의 행하시는 일은 존귀하고 엄위하시다.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행하신 일입니까? 6절에 있는 대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신 일입니다.

 

“존귀하고 엄위함”은 시편 96편 16절의 반복입니다. “존귀”는 영화로운 존재, 그리고 그 백성을 위해서 하시는 일로 말미암아, 그의 영광을 드러내고 또 그 행사는 그의 “권위”(시편 104:1에서는 이 말이 “권위”로 번역됨)를 나타내십니다. 아무도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하기에 6절에는 그 행사를 통하여 그의 “힘”, “능력”, 다시 말하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시인이 야웨를 찬양할 내용은 하나님의 큰 행사, 영광스러운 행사, 권위와 능력으로 행사하시는 일이라 합니다. 그러한 찬송 받을 행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5절에 이것을 간단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고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양식에 대한 것은 “날마다 일용할 양식”도 뜻하지만, 여기서는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만나”와 “메추라기”와 바위에서 샘물을 솟아나게 하셔서 주리고 목마른 그들을 먹고 아시게 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시인은 이것을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 함이 없다”(시34:10)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용한 “양식”이란 말 “테렢”은 사자의 밥이란 말도 되지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말합니다. (잠 31: 15).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의 공급자로서의 하나님을 말한 것과 본문 시인의 찬양에서 이미 말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하나님이 그들을 광야에서 먹이신 그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4절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도다.” 이 말은 이스라엘 신앙 역사 중 가장 오랜 찬양과 감사의 내용입니다. (출 34:6에서는 출애굽 사건으로 설명함). 이 신앙을 확대 설명한 103편 시인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성하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시 103:8) 죄인이 그 죄와 악의 용서를 구하는 길도 다만 하나님의 자비, 긍휼, 은혜, 인자(仁慈)에 있다는 것을 시편 51편 시인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51:1)

 

그러나 육체가 먹을 양식의 공급 때문에 은혜, 자비, 인자를 노래한다면, 본문 시인은 물질주의자요 자기의 육체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문 시인은 다음 구절에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신다”라고 하여, 그 계약하신 바를 인간은 변경하고 거역하는 일을 한 대도 하나님은 영원토록 지켜 주시는 진실을 갖고 계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Egypt에서 구원해 내심은 그 선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Exodus 2장 24절, 6장 5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인은 아브라함과 Egypt에 하신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했고,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다”(시105: 8, 10)라고 이처럼 “영원한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곧 진실한 하나님이며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에 매이지 않는 변덕스러운 이방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7절 이하에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입니다. 야웨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救贖)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웠으니 그 이름은 지존하고 거룩하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진실과 정의, 진실과 공의(公義)를 찬양하고 그의 거룩하고 지존하신 이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다 이 하나님을 만나고자 찾는다고 했습니다.

 

* 이상으로 본문 시를 좀 더 쉽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본문 시인의 말하는 ‘할렐루야’는 “1.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위대하시다. 2. 그의 행하시는 일은 존귀하고 엄위하시다.”라는 하나님의 행사가 주제입니다. 순수 우리말 사전의 뜻풀이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와 기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할렐루야’의 어원 분석을 먼저 해 보면, 히브리어로 보면 '할랄(Halal)','우(u)','야(Jah)'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할랄(Halal)'은 '찬양하다', '자랑하다', '칭송하다'라는 뜻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 열정적으로 높이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중간에 있는 '우(u)'는 문법적인 요소인데, 바로 '너희들'이라는 복수형 명령 어미입니다. 즉,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명령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답니다. 세 번째, 마지막 **'야(Jah)'**는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Yahweh)' 또는 '여호와'의 줄임말입니다.

 

(1). 성경 안의 할렐루야: 성경, 특히 구약성경의 '시편'을 보면 이 단어가 정말 자주 등장합니다. 시편 기자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이 단어를 사용하며 백성들에게 찬양을 촉구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구약에서는 '할렐루야'가 주로 문장의 시작이나 끝에 위치하며 찬양의 문을 열거나 닫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는 천상의 예배 장면에서 수많은 무리가 우렁차게 "할렐루야!"를 외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최후의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헨델의 메시아와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면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할렐루야 코러스'를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이 곡이 연주될 때 관객들이 모두 기립하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영국의 조지 2세 왕이 이 곡을 듣다가 너무나 벅찬 감동을 느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여러 설이 있겠지요!) 이처럼 할렐루야는 단순한 단어를 넘어, 예술 작품 속에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환희와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음악 속에서 반복되는 "Hallelujah"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벅찬 에너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3). 현대적 의미와 올바른 사용: 현대 사회에서 할렐루야는 종교를 넘어 "야호!", "대박!"과 같은 긍정의 아이콘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나, 시험에 합격했을 때 장난스럽게 쓰기도 하죠. 물론 언어는 변하기 마련이고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은 좋지만, 본래의 뜻이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거룩한 명령형이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 단어의 무게감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게 됩니다. 특히 교회 내에서는 '아멘(그렇게 될지어다)'과 '할렐루야'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멘'은 동의와 순종을, '할렐루야'는 선포와 찬양을 의미한다는 차이점을 명확히 알고 쓴다면 더욱 의미 있는 언어생활이 될 것입니다.

 

(4). 글로벌 언어로서의 가치: 할렐루야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거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사실, 알고 계셨지요! 히브리어 원음이 그대로 라틴어, 영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만국 공통어처럼 통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언어장벽을 넘어 기쁨과 찬양을 공유할 수 있는 마법 같은 단어인 것 같습니다.

 

4). 결론: 지금까지 본문 시의 주제는 하나님의 행사하시는 '할렐루야'의 깊은 뜻과 그리고 문화적 배경까지 다양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단순히 기쁠 때 지르는 소리인 줄 알았던 이 단어 속에 "너희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구체적인 대상과 명령이 담겨 있었다니 대단히 놀랍습니다. 어원을 알고 나니 헨델의 음악이, 그리고 누군가의 외침이 더 깊이 있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단어를 듣거나 말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안에 담긴 '함께 기뻐하고 찬양하자'라는 따뜻한 권유의 마음을 떠올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에도 할렐루야를 외칠 만큼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 가득 넘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2026. 2, 27.

山下연구소: 양 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