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박물관열람실(72)

73. <성서 말씀 명상>: 두 번째 기회

solomong 2026. 3. 6. 11:56

73. <성서 말씀 명상>: 두 번째 기회

(요나서 3:1~10)

-첫 번째 실패의 쓴잔을 통해서, 두 번째 기회를 선용하자!-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 재혼을 하게 된다면,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더 심사숙고하게 됩니다. 사업에도 첫 번째는 모르고 엄벙덤벙 덤벼서 실패를 보았다면, 두 번째 사업을 시작할 때는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고 조심하게 됩니다. 재수생도 두 번째 시험을 치게 될 때, 많은 스트레스와 긴장이 오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만사가 두 번째 기회는 첫 번째보다 더 어렵고 대단히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3장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하신 이 말씀의 배경은 벌써 요나에게는 첫 번째의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외치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나는 그 첫 번째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니느웨성이 회개하여 축복을 받는 것보다 그대로 멸망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민족주의자였고, 이방 땅 니느웨가 차라리 멸망받기를 오히려 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던 방향을 바꾸어서 욥바 항구로 내려가서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배를 타고 그 배 밑창에 숨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사명을 도피해서 도망가려고 행선을 탔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배가 가는 도중에 큰 파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요나는 배 밑 층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심한 파도와 폭풍 때문에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선장을 비롯한 배에 탄 무리들이 분명히 배 안에 신의 뜻을 거역한 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그 사람을 바다에 던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제비에 요나가 뽑혔고, 배에 탄 사람들은 이 재앙이 요나 때문임을 믿고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곧 바다는 고요해지고 배는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던져진 요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 그는 큰 고기 뱃속으로 삼키움을 당합니다.

바로 그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을 듣게 됩니다. “요나야, 지금 너를 살려주면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느냐”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내가 처음 부탁한 그 부탁을 지금 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요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던 것입니다. 니느웨 모든 백성들이 다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 백성에게 임할 뻔했던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떠나게 됩니다.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회피하고 도망간 요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에게 두 번째의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위치와 축복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실패하고 범죄한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고, 두 번째의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는 교훈입니다.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요나의 경우처럼 교회 신앙의 기초라고 하는 베드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는 절대로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그는 세 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맹세코 모른다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자비에 넘치는 사랑의 눈길이 베드로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 그의 마음 문을 열어줍니다.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뛰어 나와서 벽을 부둥켜안고, 얼마나 통곡하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 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용기를 얻지 못하고 디베랴 바다로 고기 잡기 위해서 그물을 던지러 가버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베드로를 버리지 않고 다시 찾아오셔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하고, 그 다음에는 그의 눈을 뜨게 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어보십니다.

그리고는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실패한 베드로에게 또 한 번의 새로운 기회를 주셨고, 새로운 사명도 다시 주셨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천국 열쇠를 받아 모범적인 신앙의 반석이 되었고,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오순절 운동이 일어날 때에 한 번 말씀을 증거하면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고, 고넬료의 가정을 통해서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창조의 역사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도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바나바의 생질인 마가가 동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브로를 거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서 더베까지 함께 오던 마가 요한은 전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곧 귀향하여 되돌아 가버립니다. 이러므로 마가는 비겁한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는 마가 요한의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다투게 되었고, 결국 두 사람은 결렬합니다.

바나바는 “한 번 실수를 했더라도 마가를 데리고 가면 좋지 않으냐”고 하고, 바울은 “절대로 안 된다. 그렇게 비겁한 청년은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는 자기 예정을 바꾸어 육로로 소아시아, 즉 지금의 터어키 방면으로 가버립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좀 외롭지만 마가를 데리고 예정대로 해로로 떠납니다.

사실 바나바는 바울에게는 은인인 만큼 둘 사이는 서로를 존경하는 훌륭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마가의 엄청난 실수가 초대교회의 두 기둥을 분리하는 커다란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보통 실수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를 보면, 베드로는 나중에 “내 사랑하는 아들 마가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마가는 자기의 실수를 뼈가 깎여지는 듯한 고통으로 뉘우치고, 사도 베드로에게 가서 심부름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여 그를 받아들여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에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있을 때와는 엄청나게 다른 마가가 되어 새로운 제2의 사명을 가지고 출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3년 동안 베드로를 따라다니며 그를 통하여 예수님의 행적을 샅샅이 듣게 되고, 그로 인하여 마가는 신약성서의 복음서 가운데 제일 먼저 기록하는 위대한 업적을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을 통해서 누가복음이 나오고, 누가복음을 통해서 마태복음이 나오고, 이 세 복음을 통해서 요한복음이 나왔던 것입니다.

엄청나게 잘못된 실수자 마가를 새로운 마가로 만들어 수제자 베드로부터 아들의 인정을 받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그리고 디모데후서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딤후 4:11),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야, 일기가 추워졌는데 너 혼자 오지 말고 마가를 데리고 오너라, 마가는 주의 일을 하는데 절대로 필요한 청년이다”라고까지 인정해주었습니다.

물론 디모데후서는 옥중에 갇혀 있는 바울로서는 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옛날 마가일로 바나바와 다투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뉘우치는 노사도의 배려도 있었지만, 그간 베드로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산 것을 알고 바울이 인정해주는 장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변화된 모습입니까. 인간은 누구에게나 실수하는 때가 있고, 범죄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회개하면 주님은 그에게 제2의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 제2의 새로운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거룩한 자비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여 죄에 빠지게 해서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장로·권사·집사도 죄를 짓는다고 범죄 동료의식을 불어넣어 위로하는 척합니다. 하지만 일단 죄에 빠지면, 앞면을 몰수하고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습니다. “다 틀렸다. 이젠 끔찍한 죄를 지었기에 아무도 너를 믿지 않아, 이젠 틀렸다. 죽어라, 죽어”라고 이렇게 속삭여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주셔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처음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범죄하지 않도록 애를 씁니다. 또한 범죄하고 실수하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더 나가서 회개하도록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를 주시려고 새로운 차원에서 기회를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새로운 제2의 기회와 아울러 축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성령의 거룩한 역사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두 번째 기회를 부여잡아라

이번에 황우석 박사가 난자 채취에 있어서 윤리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그간 세계적인 학자로, 배아줄기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일인자로 거의 국민적 영웅으로, 노벨상 수상의 후보자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연구용 난자 채취 과정에서 비윤리적 문제로, 연구소장직을 던져버리고 백의종군 하겠다고 하면서, 지금 황 박사는 시골 어느 곳에서 피로한 정신을 달래며 쉬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황 박사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는 길에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그는 교만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국민들도 인간의 기본 가치와 윤리 분야를 반성해볼 수 없을 정도로 문화적 국민의 면모를 망각할 수 있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 실수의 과정이 황 박사로 하여금 자신의 걸어온 길을 반성케 하고, 두 번째 기회엔 재귀하여 더 겸허하고 인간이 인간에 대한 아픔을 절실히 느껴서, 더 그의 연구에 성실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인생살이 과정에서 누구나 이런 시련과 좌절에서 방황하며, 실패의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비록 우리들 가운데 첫 번째 기회를 놓치고 실망하는 분이 계신다면 다음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 기회를 어떻게 부여잡고 선용하느냐의 여하에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생의 삶에 있어서 성공자가 되느냐 못되느냐의 운명적인 길목에 서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시험에 빠지고, 실수와 실패의 늪에 좌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기회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 두 번째 기회를 여는 것은 우리 자신들을 반성하고 잘못에 대한 회개가 그 전제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날의 찢어진 모습, 그것을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두 번째 기회인 줄 알고 부여잡아야 합니다.

거듭 말합니다. 처음 받은 은혜와 기회에 만족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그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더 크고 놀라운 두 번째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기회를 놓치고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괴로워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고난과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번째 기회로 승리적인 인생길로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끝.

 

2005년 11월 26일

山下 연구소장: 양 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