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박물관열람실(72)

68. [송년 성서 말씀 명상]: 순례의 여행길

solomong 2025. 12. 27. 10:37

 

 

[송년 성서 말씀 명상]: 순례의 여행길

(시 84:1-12)

순례의 여행길이란 먼 종착역에 무한히 ‘가치'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험산 준령, 황야 및 깊고 급격히 흐르는 시내를 거쳐야 하는 고난의 길을 말합니다. 우리 인생의 삶을 흔히 순례의 여행길이라고 합니다. 그 길은 거개(擧皆)가 험악합니다. 그러기에 이 여로(旅路)에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행자가 가야 하는 그 길엔 또한 고독하고 외로운 나그네의 길입니다. 이 길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길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답답하고 험한 위기 때는 참된 친구가 도와주며, 실망과 좌절을 이끌어 주는 그런 길동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우리 마음의 태세를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순례의 여행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묵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84 시편은 시편 중에도 ‘진주’라고 하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 신앙의 중심은 예루살렘 Sion 산상에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서 살든지 국내는 물론 국외에 사는 사람이라도 일 년에 유월절이나, 장막절 같은 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Sion 산 성전에서 예배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절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멀리 Sion 산 성전을 향해서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좀 넉넉한 사람들은 나귀나, 약대를 타고, 어려운 분들, 대다수는 걸어서 갑니다.

 

성전을 사모(思慕)하는 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임재(臨齋) 해 계시는 그곳을 희망 속에, 피곤해도, 고생스러워도, 순례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한(恨) 많은 사연과 시비 곡절을 가지면서 특히 그간 코로나 전염병이 우리를 괴롭혔던 2022년도의 세월을 보내고, 새해를 맞을 한 주간도 채 안 되는 시공을 두고 있습니다. 이 시공 속에서 우리는 그 옛날처럼 순례의 여행길을 걸어가는 와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행길은 평탄한 길만은 아닙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눈물 골짜기로 통과할 때”라는 말씀처럼, Palestine은 산이 많습니다. 따라서 험한 골짜기도 많습니다.

 

더욱이 비가 적은 곳이므로 메마른 곳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고, 평탄한 순례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만, 그러나 인생길 역시 거개(擧皆)가 험악합니다. 사도 Paul의 순례의 길을 볼 것 같으면, 결코 평탄한 여로가 아니 이었습니다. 문자(文字) 그대로 눈물의 골짜기이었습니다. 거의 가는 곳곳마다 핍박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옥중 생활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의 골짜기가 은총의 장소이었고 삶을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 Harvard 대학교 교수인 G. W. Allport는 “산다는 것은 고통 하는 것이요, 생존한다는 것은 그 고통 가운데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To live is to suffer, to survive is to find the meaning in the suffering. ) ‘만약에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거기에는 고통 가운데 목적이 있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올 한해 걸어 온 우리 여행의 길이 웃음보다 눈물이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또 다가온 새해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자가 가는 길엔, 비록 눈물의 골짜기라도, 하나님의 생명 샘을 발견하고,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눈물의 골짜기를 아주 없애는 신앙의 여정이 아닙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삶의 감격을 알고, 기쁨을 맛보는 믿음의 삶입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받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체험입니다. 여행자 여러분! 골짜기를 지날 때, 실망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눈물의 골짜기도 다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존재하는 일입니다. 이런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우리는 힘을 얻고, 더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자신의 결단과 창조적 삶을 망각 하여도 안 됩니다. 내 가는 이순례의 길이 눈물의 골짜기일지, 평탄한 길일지는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있습니다.

 

하나님 섭리의 손길 가운데서 인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섭리의 손길은 우리 자신의 책임과 결단을 아주 무시하시는 그런 길은 아닙니다. (인간에게 自由意志를 부여) 미국 Union 신학교의 Sherrill 교수는 역사 속에서 여행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3가지로 비유해서 말했습니다. 첫 번째 형태의 생이란, ‘맷돌을 굴리는 사람’-구약의 눈먼 삼손이 완전히 자유를 앓고 운명의 채찍을 맞으면서 맷돌을 끌다가 죽는 것과 같은 생입니다.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남이 결단해 준 인생을 마지 못해 살다가 죽고 마는 생입니다. 일종의 체념적인 생입니다. 그냥 체념적인 삶이란 해롭습니다. 왜냐하면, 체념은 ‘증오심’을 은연중에 길러내기 때문에, 무책임한 행동을 유발하기에 그렇습니다.

두 번째 생 ‘신화'(神話)에 나오는 영웅처럼 살다가 죽는 생입니다.-희랍 신화에 나오는 영웅은 다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심리학에서 Oedipus Complex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근친상간(近親相姦) 또는 자녀가 이성(異性)인 어버이에 대한 성적 관심을 가지는 시기인데, 남아는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아는 아버지가 거세(去勢)할까 해서 아버지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去勢 不安) 이런 말은 S. Freud의 이론적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희랍 신화의 작가는 Sophocles라는 자인데, Thebes 나라의 Laius 왕과 Jocosta 왕비 사이에서 Oedipus라는 왕자를 낳았는데, 소위 길흉화복을 점치는 점성가가 남아 왕자가 대왕에 큰 화를 가져올 운(運)이니, 일직이 죽여 없애는 것이 좋다고 進言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으로 그럴 수 없어서 먼 지방에 갔다가 버렸습니다. 이 어린 핏덩이가 강성하게 자라서, 그 후에 큰 나라를 이루어 아버지 나라를 침입(侵入)해서 아버지(왕)를 죽이고, 왕비(어머니)를 다시 정복자의 왕비(王妃)로 삼았습니다.

 

그 후에 자기 어머니란 것을 알고 불윤(不倫)의 잘못을 알고, 두 눈을 뽑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회오(悔悟)의 세월을 보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영웅의 생애는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는 종말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한때 화려했기에 그 종말은 오히려 더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짧은 자기 인생의 분수'를 한탄해서 한번 ‘큼직하게’ 살아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 종말은 거개가 비극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생순례자의 여행길이란 것입니다. 순례자는 이미 우리가 보아 온대로 먼 종착역에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미래를 향해 걷는 자입니다. 그의 눈은 언제나 미래의 소망에 있습니다. 때로는 맷돌을 굴리는 것과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치 않습니다. 한때는 공중을 나는 듯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내일의 가능성(可能性)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훨훨 털고 일어나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보다 내일을 더 중요시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나를 반성(아는, 이해)하는 데는 살아 온 뒤안길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오늘의 나를 바로 알지 못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나온 전력의 발자취가 오늘에 이르게 되는데, 논리적인 연관이 내일로 뻗는 것이라고는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내가 살아 온 날의 나의 생의 결산일지는 모르나, 내일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은 아닙니다. 오늘 나의 삶의 결단을 통해서 내일 새롭게 달라지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우리를 향해 속삭입니다. 새 창조의 가능성이 언제나 있으니, 믿고 결단하고 새 출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가능성을 궤 뚫고 미래와 대화(對話)하는 사람은 이 내일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우주의 가득 찬 찬가(讚歌)를 듣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없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마라의 쓴물'(출 15:22~23)을 ‘단물'로 요리해서 먹는 종교입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노래하는 신앙의 삶입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인생의 삶을 감사하게 여기고, 희열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받는 것이 우리 신앙의 체험입니다. 순례의 여행자 여러분! 눈물 골짜기 여행의 길을 지날 때, 낙심하지 맙시다! 눈물의 골짜기도 다 하나님의 섭리인 고로 염려가 없습니다. 이런 눈물의 골짜기를 통해서 우리는 용기를 얻고, 더 얻게 됩니다.

 

오늘은 비록 곤궁해도 내일이면, 좋아진다는 긍정적 가능성(可能性) 때문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추위와 고약한 질병에 떨면서 어서 봄이 오기를 고대합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막연한 기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구체적인 근면과 노력과 믿음을 가질 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했느냐.>가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여타는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매년! 그날이 그 날인 전진도! 발전도! 없는 삶과 갈수록 태산인 삶의 Style엔 반드시 원인(原因)이 있습니다. 2022년 끝자락에 서서 그 사연을 찾아서 정리합시다. 끝.

 

2022년 12월 26일

山下연구소장: 양 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