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거역의 수치를 고백
(시 106:1~48)
1). 서론: "망은부정(罔恩負正)"이라는 중국 고대 문헌에 전하는 사자성어로, 은혜를 모르고(罔恩),도리를 저버리는(負正) 태도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표현입니다. 이 성어는 직접적인 고사(故事)에서 유래했다라기보다, 유교적 윤리관과 군신·부자 관계의 도리를 중시하는 사상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 도덕적 경구로 여겨집니다만, 우리들이 비슷한 뜻으로 자주 언급하지만, 하나님께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더 강한 뜻으로 '거역(拒逆)의 수치를 고백'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출애굽시키어 광야 40년의 삶을 먹이셨지만, 그들은 금세 원망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인자하심으로 붙드셨다는 겁니다. 본문의 시인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조상과 일체시(一體視)하여, 조상의 범죄를 자신들의 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1. 출애굽 때의 죄와 2. 가나안에서의 죄) 이런 사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생각하고, 오늘날 우리 자신들의 신앙적 삶을 반성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2). 본론(Text): 시편 105편에 연결되는 역사시로 같은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믿어 지고 있습니다. 105편은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은헤를 강조하나, 본편(106편)은 백성들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1. 서론적 찬미와 기도(1~15), 2. 출애굽 때의 죄(6~33), 3. 가나안에서의 죄(34~46), 4. 구원을 위한 기도입니다.
3). 본론(Context): 누구든지 조상의 영광을 말하기를 좋아하나, 그 수치를 들추기는 싫어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조 말엽에 탐관오리가 보편화 되었을 때, 조상들의 수치스러운 일도 금품(金品)으로 매몰시키고 벼슬을 샀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 106편의 시인은 105편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고 택함을 받은 백성의 역사에는 그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복종하여 얼마나 수치스러운 역사를 만들었는가를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조상들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빙자하여 축복과 특권을 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들의 선민 이스라엘 역사가 얼마나 죄악과 악행의 반역으로 점철되어 있는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106편 6절의 말씀과 시편 22편 4절의 말씀은 아주 대조적입니다. 6절은 106편 시의 본론으로서, 이스라엘의 과거의 죄를 고백함에, 첫째로 출애굽 때의 죄를 고백하면서 현재의 그들을 조상과 일체시하여 조상의 범죄를 자신들의 죄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22편 4절의 말씀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및 모세 등의 열조들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호소하여 구원을 받았고, 또한 주를 의지함으로 수치도 면하게 되었던바와 같이, 현재도 시인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여 주시며, 수치를 면케하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22편 시인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언급하였는데, 모테에서의 출생과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성장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출생과 성장한 것이기에 고난 중에 보호해 달라는 호소였다고 했습니다.(시 22:9)
하지만, 본문 106편의 시인은 과거를 욕심장이 선조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했다."(25절), 이스라엘 자손들은 저희 구원의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런 원망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출 15:24, 16:2,7, 민 4:2, 16:11, 41, 신1:27) 이러한 원망은 "하나님을 진노케했다."(29절)고 했습니다. 저희가 므리바 물에서도 여호와를 노하게 했습니다.
물이 없을 때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 대해서 심한 말로 공박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을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민 20:4)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그들과 그 짐승들을 먹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도 백성들의 원망에 그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반석을 2번 치고 말았습니다. 이는 모세가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야웨 하나님과 다투었으므로 므리바(다툼)의 물이라 했습니다.(민 20:12~13)
본문의 시인은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모세도 하나님 앞에서 망령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또한 이방 족속들과 결혼도 하며(삿 3: 5, 6), 이방신들을 섬기는 알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그 자녀들까지도 이방 풍속에 따라 제물들을 바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죄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난안 땅에 들어와서 정착을 한 다음 제 1 계명을 무시하고 이방 족속들의 신의 유혹을 받아 야웨 신앙에 불충한 죄를 말합니다.
잡혼(雜婚), 인간 제물, 우상 숭배 등은 계약의 백성 이스라엘로서는 그 하나님께 대하여 가장 큰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이런한 종교적인 배신과 반역은 그들의 윤라적인 타락을 초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신은 윤리적 관삼이 없는 신앙을 요청하였지만 야웨 하나님은 항상 그들의 행동과 생활이 깨끗한 윤리적 생활을 밑받침한 신앙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6편 시인은 그들이 불행하게도 이러한 이중 삼중의 죄악을 범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38~39절) 이렇게 자기 선조들의 죄와 불충을 고발한 시인은 단순한 고발(告發) 시인만은 아닙니다. 여기에 그들의 죄를 많이 말함으로써 그들의 불의를 밝히기보다는 하나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 의 은총(恩寵)을 강조하고 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를 보여주고자 함이 본문 시(詩)의 목적인 것 같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총의 깊이와 이스라엘의 반역의 크기를 다음과 같이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43절) 이스라엘은 거듭거듭 반역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저들을 불쌍히 여겨서 건져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106편은 105편에 비하여 하나님의 구원사를 강조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반역사를 강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105편에서 말하는 구원사는 106편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반역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는 하나공의를 행하는 님의 은총사의 이면(裏面)입니다.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관용이 없이는 구원사가 불가능합니다. 죄를 지은대로 벌하시면 심판사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사는 아닙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이스라엘의 죄를 철저히 갚아버리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기보다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시편의 "우리는 빗나갔고, 우리는 죄를 지었고, 우리는 악을 행했다."는 고백은 하나님은 "그 많은 인자(사랑)를 따라 뜻을(벌하시려는) 돌이켜.....긍휼히여김을 받게 하셨다."(45절) 함이 본문 시의 감사와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본문 시는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절)로 시작하여 "우리로 주의 성호(聖號)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榮譽)를 찬양케 하소사" 하고 본문 시를 매듭짖고 있습니다.
본문의 48절은 본래이 시에 속한 귀절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시편 제4권(시73~106편)을 끝마치는 찬양의 말로 편집자의 첨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귀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그 인자를 찬양하는 적절한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는 인간을 죄악대로 갚으시지 아니하고 긍휼하심으로 용서하시고 그의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공의가 결코 무시당함은 아닙니다.
본문 시인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다."(3절)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 속에 하나님의 공의가 묻혀지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로서 구원을 받는 인간은 항상 공의를 행하는 생활을 해야 함을 알려는 것입니다.
* 이상과 같이 본문을 쉽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본문의 시인은 105편 시인과는 다르게, 그 크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고도 택함을 받은 선조들의 실제역사에는 이중 삼중으로 그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복종하여 얼마나 수치스러운 역사를 만들었는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조상들만이 아니라 시인이 살던 당대에도, "우리는 빗나갔고, 우리는 죄를 지었고, 우리는 악을 행했다."는 고백은 하나님은 "그 많은 인자(사랑)를 따라 뜻을(벌하시려는) 돌이켜.....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다."(45절)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기억과 망각 사이를 오가는 존재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쉽게 잊고, 잊어야 할 것은 오래 붙들며 살아갑니다.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기적은 금세 잊습니다. 그러나 내게 상처 준 말과 억울했던 일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겨둡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기도의 역사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와 아픔은 늘 마음을 짓누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받은 기적을 금세 잊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지만, 불평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니, 곧바로 원망과 불순종으로 넘어갔습니다. 사실 이것이 지금의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어제의 기도 응답을 오늘 잊어버리고, 새로운 문제 앞에서 절망합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인도하신 은혜를 금세 망각하고, 현재의 고난 속에서 원망합니다. 받은 은혜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아직 주어지지 않은 것 때문에 불평합니다.
그러나 본문 시편은 단순히 인간의 망각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진리를 선포합니다.“우리는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라고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여전히 우리를 붙드십니다. 한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아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아들아! 나를 몰라도 괜찮다.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는다.”라고 함과 같이 우리가 은혜를 잊어도 우리를 기억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설교의 주제는 분명합니다.우리는 쉽게 잊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며, 우리의 망각을 회개하고 은혜를 기억하면서 찬양하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며, 우리가 넘어져도, 하나님은 붙드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국 “할렐루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렇게 결단해야 합니다.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자.”라고 말입니다.
4). 결론: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수 많은 죄악을 범했습니다. 욕심을 부리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질투하고, 우상숭배와 그 제사 음식을 먹었습니다.(19, 28절) 그리고 기쁨의 땅을 멸시하였고(24절),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므로써 므리바 다툼의 물에서 심지어 모세 자신도 혈기를 부린 것(민 20:9-11) 등의 범죄 이야기 말입니다.
시편 기자가 고백한 이스라엘의 죄는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은혜를 잊으면 원망이 자리 잡습니다. 기적을 보아도 기억하지 않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은혜를 잊은 자리는 반드시 우상이 차지합니다. 불신앙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시편 기자처럼 고백해야 합니다.“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감사와 찬양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다 표현할 수 없지만, 부족한 찬양조차 기쁘게 받으십니다. 입술의 찬양은 반드시 정의와 의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은혜뿐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문제의 크기입니까, 아니면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시편 106편은 우리에게 경고인 동시에 가장 큰 위로를 줍니다. 우리는 실패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의지할 때, 우리는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구원을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견고함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끝.
2025. 11. 24.
山下연구원: 양 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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