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순종과 정조 있는 신앙
(시편 105:1~45)
1). 서론: 영국이 찰스 1세의 학정으로 고통에 처해 있을 때, 샛별처럼 나타나 영국을 구한 크롬웰에 관한 일화입니다. 크롬웰은 어려서부터 청교도의 가정에서 신앙 훈련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일과 성경 읽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크롬웰은 국왕을 반대하는 청교도들로 구성된 군대를 지휘하는 대장이 되었습니다. 크롬웰은 국왕의 군대와 맞서 전쟁을 하였습니다. 크롬웰은 전쟁터에서도 시간이 생기면 기도하였고 쉬는 시간에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싸움은 항상 치열했고 크롬웰은 언제나 선두에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갑자기 크롬웰이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적의 총탄을 맞은 것입니다. 말에서 떨어진 크롬웰은 '이제 마지막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별로 아픈 곳이 없었고 총을 맞은 가슴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참 이상한 일이군!' 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총탄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 둔 성경에 박혀 있었습니다. 총탄이 박힌 곳은 전도서 12장 1절이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절개있는 신앙의 정조(貞操)를 굳게 지키는 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받고, 고난의 역사의 자국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찬미소리였습니다. 우리들도 본문을 통해서 순종과 절개있는 신앙자가 더욱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본론(Text): 시편 105편과 106편은 연속시로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취급한 역사시 입니다. 포로기의 경험을 언급함으로 포로기 이후의 작품인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 시의 내용은 1. 서론적 찬미(1~7), 2. 아브라함의 역사(8~15), 3. 요셉의 역사(16~23), 4. 모세의 역사(24~36), 5. 출애급의 역사(37~45) 입니다.
3). 본론(Context): 시편에 있는 3개의 역사서(78, 105, 106) 중 하나인 이 시는 보통 "감사시"로 알려졌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역사 속에서 하신 여러가지 일들을 나열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사의 사건들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해 주신 일부터 시작하여 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가나안 땅을 주셔서 저희 백성들이 살 수 있게된 일까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본문 시의 성격에 대하여 모빙켈은 교육적인 시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민족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 하지만,링그렌 같은 사람은 제의시(祭儀詩)의 하나라고 봅니다. 본래 이런 역사시는 처음부터 시문학(詩文學) 형태로 된 것이 아니고 산문형태의 문학이었으나, 그들의 과거 역사를 예배의식 속에서 노래로 부르기 위하여 현재의 시형태로 개작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공동예배는 조상들의 역사를 노래함으로 조상들의 하나님이 곧 예배를 드리고 있는 오늘 후손들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05편의 내용 일부가(1~15절) 역대기 상 16장 8~22절까지에 반복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역대기 상에 수록된 찬송이 불려진 즈음의 예배 환경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옮기는 의식에서 부른 노래라고 했습니다.(대상 16:1~3)
이 시가 감사의 노래로 불리워지게 된 동기는 신년 축제 때라기보다 이스라엘의 시내산 계약을 축하하는 의식에서라 함에 학자들이 의견(意見)의 일치를 보게 됩니다. 이 계약 축제에서는 항상 야웨 하나님의 과거의 구원 행사가 복창되어 짐이 특징인데, 이 시에서도 6경(六經)에 나타난 부조들의 전승과 출애급 광야 전승, 그리고 가나안 땅에 정착한 전승이 빠짐없이 나와 있습니다.
폰 라드는 이 시가 이스라엘의 고대 신앙고백을 보여주는 시라고 했는데 이 고백의 초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역사상 큼직한 일들을 행하신 것을 이스라엘의 신앙의 근거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1절에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 장하신 일들을 만방에 알리라."(공동번역)함은 이스라엘의 예배의식에 필요한 찬송, 감사, 기도는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사를 명백하게 고백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고백의 클라이막스는 "그 성호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야웨 하나님의 이름을 만백성들에게 알리고 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자랑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사명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이 무엇을 했느냐 함이 과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자랑스럽게 되었느냐 수치스럽게 되었으냐 함이 본문의 시인의 관심임을 솔직히 알리고 있습니다.
시편106편 시인이 자기들의 과거 역사의 어두운 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죄악에 대한 것을 말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혀진 것을 역사에서 보고 있다고 하면 시편 105편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장하고 훌륭한 일을 하셨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길이 찬양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하고 신비한 일들을 허셨는지 생각해 보라.(6절)함이 이런 찬양의 대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7절) 이 하나님이 이러한 장한 일을 하신 이유는 다만 그 선조 아브라함,이삭, 야곱 등에게 언약과 맹세를 해주신 하나님의 우선적인 행동 때문이라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그 백성들에게 주신 일(11절), 요셉의 고통을 통한 민족의 구원(17~23절), 이스라엘 백성이 나그네된 애굽 땅에서 번창한 것(24절), 바로의 완고한 마음을 열 가지 재앙으로 치신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일(25~37), 불과 구름기둥으로 저들의 광야 길을 인도하시고(39절), 메추라기 샘물을 솟아나게 해서 그들을 만족하게 하신 일 등(40~41절)은 다만 야웨 하나님의 장한 이름이 행할 수 있었던 기적적인 일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즐거워하여 노래하며 고역의 땅에서 해방받아 나왔다."고 합니다.(43절)
이런 자랑스런 일은 오직 야웨 하나님이 할 수 있었던 은총의 사건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는 대대로 그 이름이 찬양받아야 합니다. 본문의 시인은 특히 이 이름을 "거룩한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이외 다른 나라의 신과는 구별되는 신임을 말합니다. 이 이름은 "만민들에게 알게 할 이름이라." 이것을 루터는 "만민들에게 설교할 이름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설교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을 알린다는 것은 그 이름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그 신이 누구냐고 할 때, 무엇으로 대답할 것인가 하고 그 답을 하나님께 원했습니다. 야웨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자신을 분명히 알려주시기 위하여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출 3:14)
아무 것에게도 지음을 받은 우상이 아니라 스스로 생명과 능력을 가지시고 스스로 자기 뜻을 실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려 줍니다. 이 하나님은 모세에게 갑자기 나타난 신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출3:15) 신앙의 시작은 믿는 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자기가 믿는 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은 신앙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주변 세계에서는 각 민족마다 자기들의 고유한 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모든 신들 중에서도 야웨 하나님이 아무 신에도 비길 데가 없음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여 신들 중에 당신과 같은 신이 어디 있사옵니까? 당신이 행하신 일과 같은 일을 행하신 신이 없습니다."(시86:8) 이러한 자랑스런 야웨 이름에 대한 찬양은 포로시대에 활동한 제2 이사야에게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본문 시편의 연대를 포로시대 이후로 보기 때문에 제2 이사야의 신학의 영향이 본문 시에 반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야웨 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 강조에서 그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는 것은 곧 기쁨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3절) 주기도문에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라고 한 귀절은 본문 시편 시인의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고 한 사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 이상과 같이 본문을 쉽게 풀이 해 보았습니다. 본문 시는 아주 논리적으로 서론엔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본론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과 요셉의 고난속에서도 인종하는 신앙을 견지함과 그리고 모세 삶의 절개와 순결의 역사를 기술하고, 결론으로 출애급의 역사를 매듭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 중, 본론의 사건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교훈을 명상해 보고저 합니다.
1. 아브라함의 순종(順從, 8~15):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했습니다.(창12:1) 아브라함이 처음 부르심을 받았던 곳은 갈대아 우르,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우르는 거대한 신전과 잘 정비된 도시 시스템을 갖춘 매우 발달하고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아버지 데라와 함께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살아왔습니다. 부족할 것 없는 삶, 익숙한 문화와 사람들, 예측 가능한 미래가 보장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은 단호하고 구체적이었습니다.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 이것들은 고대 사회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과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울타리였습니다. 그것을 모두 '떠나라'는 것은, 세상적인 모든 안전장치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라는 요구였습니다.
또한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은 지금 안주하고 있는 삶의 터전입니다. 처음엔 그 인습의 자리를 떠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야할 목적지를 알려주지도 않고 하신 말씀입니다. 인습적인 과거, 안락한 현재를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서양철학적 사고에 의하면, '타자와의 만남'은 자아(自我)의 인식 안으로 환원되고, 자기도취적.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폐쇄적 인식, 자기중심적 삶을 깨어버리라는 요구이었습니다.
더 막막한 것은 목적지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여 준' 땅이 아니라, 앞으로 보여주실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지도도 없이 오직 "가라"는 음성 하나만 믿고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직 <순종(順從)하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결단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부르실 때, 우리는 종종 눈앞의 현실과 잃어버릴 것들에 집중하며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포기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좋은 것을 약속으로 먼저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내가 잃는 것'에서 '하나님이 주실 것'으로 옮길 때, 비로소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발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2. 요셉의 고난를 통한 절개(節槪)16~23)의 승리: 요셉의 형들은 질투와 미움으로 요셉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한 의도마저 사용하셔서 애굽에 요셉을 보내셨고, 결국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인간의 악과 하나님의 선하심이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언제나 더 크고 선한 길을 이룹니다. 요셉은 과거의 고난을 단순히 “불행”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아픔을 구원의 역사로 해석했습니다. 믿음은 상처와 고난을 절망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서 바라보는 절개있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삶에서 고난이라는 개념을 빼버리고 싶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성서 말씀은 요셉의 삶이 고난의 연속으로 점철됨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일은 하나님의 간섭 속에서 가나안에 있는 온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그의 고난이 사용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앞으로 닥칠 극심한 흉년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질 다큐멘터리로 역사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게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마음이라도 충분히 움직여서 자기 백성을 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실에 잘 적응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꿈과 계획과 비전도 중요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만큼 자신이 위치한 그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은 대단히 부당하고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이처럼 비참한 삶으로 이끄신 것은 야곱 집안에 뿌리내린 살인과 간음과 흉악한 죄를 속죄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애굽 전역에 닥칠 무서운 흉년 시기에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에 속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낮아지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과 예표로 해석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낮아지고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은 단순한 고난의 차원을 넘어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준비 과정임을 인식하는 통찰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철저하게 밑바닥까지 낮추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서 그와 함께하시는 절개(節槪) 때문에 그는 힘차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내 속에 존귀한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기쁨으로 적응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3. 모세의 하나님께 대한 정조(貞操, 24~36)와 출애굽의 역사: 모세는 장성하면서 그의 가치관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11:25)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11:26). 이것이 모세의 하나님께 대한 정조(절개)였습니다.정조(貞操)란 여자의 곧은 절개나 순결을 뜻하는데, 정조는 여자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중요한 것인데, 그래서 모세의 정조란 신앙의 정조, 신앙의 순결과 절개를 뜻합니다.
세부적으로 말하면, 모세는 애굽에서 히브리인 노예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출애굽기 2:1-2). 당시 애굽 왕 바로(파라오)는 히브리인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모두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아들을 3개월 동안 숨겨 기르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띄워 보냈습니다(출애굽기 2:3).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로의 딸이 나일 강에서 모세를 발견하고 그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그는 애굽 궁정에서 왕족으로 성장하며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7:22). 그러나 자신의 히브리인 정체성(正體性)과 하나님께 대한 정조(貞操)를 깨닫게 된 후, 동족을 억압하는 애굽인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출애굽기 2:11-15). 그곳에서 그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고, 양을 치며 40년을 보내게 됩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과 출애굽: 모세가 미디안에서 양을 치던 중, 호렙산에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출애굽기 3:2-4).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사명자로 부르셨고, 그의 망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강권적으로 설득하셨습니다(출애굽기 3:10-12).
모세는 아론과 함께 바로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라고 요구하였으나, 바로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을 심판하시고 마침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게 하였습니다(출애굽기 7-12장). 이 과정에서 유월절이 제정되었으며, 이는 이후 이스라엘 민족에게 중요한 신앙적 기념일이 되었습니다(출애굽기 12:14-28).
(2). 홍해의 기적과 광야 생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홍해 앞에서 바로의 군대에 쫓기는 위기를 맞았으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출애굽기 14:21-22). 이후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하나님의 공급을 경험하였습니다(출애굽기 16:4-35).
시내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계명을 받았으며(출애굽기 20장),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율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자주 불평하고 불순종하였으며,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출애굽기 32장). 모세는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려 백성을 용서받게 하였습니다.
(3).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과 모세의 죽음: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며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을 12명을 보냈으나, 그 중 10명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하여 백성들이 두려움에 빠졌습니다(민수기 13-14장). 이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멸망하고, 그들의 자녀들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 입성을 눈앞에 두고, 백성들에게 신명기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었습니다(신명기 34:1-5). 그의 죽음 이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졌습니다.
(4). 결론: 모세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사역은 이스라엘 역사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도구로서 믿음과 정조(절개)를 통해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으며, 그의 삶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줍니다.
4). 결론: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순종과 절개있는 아브라함, 요셉, 그리고 모세가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과 지조를 견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뿐만 아니라, 그 민족 전체를 구하시고 높여 주셨습니다. 차제에 저마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그분의 말씀을 담대하게 따르고 있는가를 깊이 우리 모두가 자성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주님의 종이 되려면, 먼저 그분의 도우시는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은혜받는 주님의 종이 되려면, 하나님을 향한 절개있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만과 위선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쓰임받는 일꾼이 되며, 세상에서도 겸손함으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미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순종과 절개있는 성직자만이 능력있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역자 여러분! 세상을 향한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함으로 은혜받아 능력있는 성직자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다짐합시다. 끝.
2025. 10. 30.
山下연구소: 양 견 목사
'03. 구약설교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 55. <삶에 이르는 병> (신입 교인을 위한 설교) (2) | 2025.12.05 |
|---|---|
| 54. 거역의 수치를 고백 (1) | 2025.11.24 |
| 52. 주 날개 밑 (0) | 2025.10.25 |
| 51. 감미로운 묵상 (1) | 2025.10.09 |
| 50. <삶에 이르는 병> (신입 교인을 위한 설교) (2) | 2025.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