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박물관열람실(72)

59. 몰트만의 저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solomong 2025. 10. 27. 10:57



59. 몰트만의 저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 죄를 속량했다'고 그렇게 성경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믿고 있다. 그런데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의 신학 저서의 책 제목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The Crucified God)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책 제목의 주제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설명해 보자. 그가 밝히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다.

 

십자가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또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셨던 하나님만이 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 준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은 거슬리는 것이요, 미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십자가 형틀은 당시의 중한 죄수들을 사형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기독교적 신앙과 신학의 중심적으로 삼는 현대에도 세상적 가치판단에서 볼 때도 어리석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시대적으로 적절치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사건과 기억만이 현대의 상황, 역사의 법칙, 그리고 모든 기미(억압)에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으며, 다시금 어둡지 않을 미래를 열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교회가 그리스도(하나님)의 교회가 되고자 하며, 신학이 그리스도교의 신학이 되고자 한다면,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하며, 그래서 이 세계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자유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서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학사적으로 볼 때, 십자가의 신학은 사도 바울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따라서 바울이 이 신학을 확립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 루터가 이 신학을 계승하여 이 십자가의 신학을 명확하게 신학적 개념으로써 표현하였던 것이다. 몰트만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란 주제의 개념도 바로 '십자가의 신학'을 주창키 위한 것이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실 때에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기도를 도외시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깨로부터 완전히 버림을(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 받은 것이었다. 정말 그리스도는 그 고통의 십자가를 고독히 지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진 것인가. Wiesel이란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유대인 집단 수용소이었던 아우츠빗츠(Auschwitz)에서 고생하다가 살아 나와서, 그 때의 경험 이야기를 쓴 책 이름이 <Night>라는 것인데, 이 책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몰트만이 인용하였다.

 

집단수용소를 탈주하다가 잡힌 2사람을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을 모아 놓고, 공개적으로 단두대에서 처형하게 되었다. 사형수 한 사람은 늙은이고, 다른 한 사람은 청년인데, 노인은 이내 숨졌지만, 청년은 30분쯤 단두대 올가미에 목매여 고통에서 몸부림쳤다. 이 참혹한 관경을 유대인들이 보는 중인데, 이 책 저자 Wiesel 뒷편의 군중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계시냐."(Where is God?), "Where is He?"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매달린 청년은 그냥 한참 동안 고통 하더라는 것이다. 또 들려오기를 "Where is God now?"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한다. "밤"(Night)이란 책의 저자 Wiesel은 자기 마음속으로, "He is Here!"(하나님은 여기에 계신다.), "He is hanging there on the gallows."(하나님은 저기 교수대 위에 목매여 달려 있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장면을 인용("The Crucifed God", 1974, Harper &Row, Publishers, New York, pp.273-274.)한 몰트만은 "God was in Christ."(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라고 했다. 몰트만은 하나님이 울 수도 없고, 고통할 수 도 없는 무감정한 하나님이라면, 이는 하나님이 될 수 없을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란 바로 삼위일체적인 의미에서도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것이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외면하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버리면서, "네나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해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고통과 고뇌에 대해서 같이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시란 것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고 하는 의미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고 한 것이다. 끝.